아프리카에서 처음으로 울린 北 인권 개선 목소리

“이 자리가 단순한 회의로 끝나선 안 됩니다. 우리는 역사의 목격자가 아니라 창조자입니다.” 케냐 빈민 인권 단체 ‘은요다 이니셔티브’ 대표 줄리어스 오멘다(39)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북한 이탈 주민의 날이었던 14일 케냐 수도 나이로비 트레이드마크 호텔에서 열린 북한 인권 세미나에 참석한 오멘다씨는 정치범 수용소에서 당한 성폭행·낙태 경험을 털어놓은 탈북민 김보빈(44)의 사연을 들은 뒤 이같이 말했다. 김씨는 중국 공안에 체포돼 강제 북송되는 등 우여곡절 끝에 탈북에 성공했다.
이번 세미나는 개발도상국 여성들과 탈북민을 돕는 사단법인 한국문화국제교류협회와 탈북 청년 지원을 돕는 비영리 법인 통일마중이 주최했다. 1970~80년대 북한이 외교 거점으로 삼아 치열한 남북한 외교전이 펼쳐졌던 아프리카에서 북한 인권 관련 세미나가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냉전 시기 북한은 반제국주의·사회주의 노선을 내세워 아프리카 신생 독립국가들과 관계를 맺으며 외교적 입지를 넓혔다. 군사훈련과 인프라 지원, 무기 수출 등을 통해 유엔에서의 지지 확보를 꾀했고, 남한 역시 경제협력을 앞세워 외교적 대응에 나섰다.
특히 아프리카 54개국의 유엔 표가 남북한 동시 가입과 국제 무대에서의 입지 다툼에 핵심 변수로 작용했던 만큼, 아프리카는 남북한 모두에 외교적 전략 요충지였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세미나는 북한의 과거 외교 거점이었던 아프리카 대륙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조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토론자로 참석한 박흥국 한국문화국제교류협회 이사장(상명대 교수)은 “북한 인권은 서구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아프리카처럼 제3세계 국가들의 윤리적 목소리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탈북민 주일룡(29)씨는 “북한과 경제적 상황이 유사한 아프리카에서 인권 개선 촉구가 이어진다면 김정은 정권에 실질적 압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오멘다씨는 “북한에서는 8만명에서 많게는 12만명이 외부 정보 수신이나 체제 비판 등 사소한 이유로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돼 있다고 들었다”며 “북한 인권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 연대에서 아프리카연합(AU)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세미나에는 아프리카 시민사회 지도자와 탈북민 등 30여 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북한 주민의 자유와 존엄은 국제사회의 공동 책임”이라며 공동 결의문을 채택했다. 결의문에는 북한 주민이 세계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고, 국제적 연대가 필요하며, 탈북민 증언이 국제 정책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의견 등이 담겼다.

북한 인권 세미나는 18일 케냐에 이어 가나 수도 아크라 메리어트 호텔에서도 열렸다. 이날 세미나에서 북한 인권 유린에 대한 국제적 모니터링과 압박 지속, 아프리카 지역의 인권 담론 참여 확대, 탈북민 지원과 아프리카 내 인식 제고 활동 강화를 골자로 하는 결의문이 채택됐다.
주최 측은 “이번 세미나가 아프리카 국가들이 북한 인권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앞으로 아프리카 내 다른 국가에서도 세미나를 열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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