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보여준 가능성

우리 전통문화를 담아낸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연일 화제다. '넷플릭스'에 공개되어 단숨에 41개국 1위에 올랐다. 전통 놀이를 접목한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이어 올해 넷플릭스 최고 성공작으로 꼽힌다. 한·미·일 외교장관회의에도 언급될 만큼 파급효과가 크다.
이젠 K-영화, K-드라마에 이어 K-팝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이다. 우리에게 애니메이션의 성공은 낯설다. 그동안 애니메이션은 미국과 일본이 독점하고 있었다. 어린이들에게 꿈과 환상을 심어준 디즈니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가 대표적이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한국적 소재와 이미지를 입혀 일본 소니 픽처스가 제작하고 미국 헐리우드 거대 자본이 배급을 맡았다. 한·미·일 협업의 결과물이다.
서사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따랐으나 한국적 정서와 문화를 정밀하게 담았다. 김밥, 컵라면, 새우깡 등 먹거리를 자연스럽게 소개하고 우리에게 친숙한 목욕탕 문화를 상세하게 알려준다. 무속 신앙을 상징하는 굿, 혼문, 갓을 쓴 저승사자가 이질감 없이 다가오고 북촌한옥마을, 남산타워, 서울올림픽주경기장의 배경이 반갑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장소를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극 이야기는 단순하다. 한국 걸그룹 헌트릭스가 본업 외에 비밀 업무를 수행 중인데 인간의 혼을 빼앗아 힘을 키우는 귀마에 맞서 노래로 세상을 구한다는 내용이다. 주인공 루미는 악귀와 헌터 사이에 태어나 몸에 악귀 문양을 감추고 있다. 존재 자체가 실수라고 여기며 황금혼문을 완성하여 자신의 결점을 없애려 한다.
애니메이션 서사가 그렇듯 악을 물리치는 헌트릭스 멤버들은 완전무결하지 않다. 주인공은 자신의 정체를 들킬까 늘 두려움 속에서 끊임없이 내적 갈등을 일으킨다.
사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제목만 들었을 때 어떤 이야기인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뻔하지 않은 재미와 감동을 준 것은 한국적 감성과 케이팝의 팬덤 문화가 촘촘하게 엮여 흥분과 호기심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케이팝 팬이 되어 호응하도록 유도하는 장치가 곳곳에 숨어 있다.
캐릭터와 함께 OST 열풍도 대단하다. 발표된 8곡이 미국 빌보드 차트를 휩쓸었다. BTS의 군입대로 주춤해진 케이팝 무대를 극 중 아이돌그룹이 부활시키고 있다. 주인공 헌트릭스가 부른 '골든'은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6위에 올랐고 사자 보이즈의 '소다 팝'도 순위가 오르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자 보이즈' 메인 보컬 진우와 함께 등장한 까치 호랑이는 국립중앙박물관의 배지가 품절될 만큼 인기몰이 중이다. 갓의 반응도 심상치 않다. 인천 공항은 전통 문양 노리개 체험을 진행 중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는 말은 새삼스럽지 않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한국적인 것만 찾다가 보편적 감성을 놓쳐 버리는 실수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감독 중 한 명인 메기 강은 한국계 미국인이다. 우리 문화를 깊이 이해하되 매몰되지 않은 시각을 가진 것이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성공은 우리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세계인이 주목하는 이때, 한순간의 인기에 그치지 않고 우리 문화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 기술로 전통 소재를 발굴하고 세계인이 좋아할 작품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남겨진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