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낸 한철] 죽변등대

강현국 시인·시와반시 주간 2025. 7. 22.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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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국 시인·시와반시 주간

등대는 외롭다. 외딴곳에, 혼자, 서 있어서, 등대는 외롭다. 등대가 빛으로 어둠을 밝히고, 소리로 안갯속에 길을 내어 항구를 알리는 것은 외딴곳에 혼자 서 있는 등대의 외로움, 외로움의 힘에 의해 가능한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항구를 알리는 등대의 빛과 소리는 외로움의 꿈, 외로움의 육체이다. 등대의 외로움은 먼바다를 항해하는 어부들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이열치열의 외로움이다. 아무리 망망대해 난바다라 하더라도 돌아올 항구가 여기 있다고 등대는 깜박인다. 요컨대 거친 바다로 출항한 어부들이 만선의 꿈을 싣고 무사 안전하게 귀항할 수 있는 것은 등대의 외로움, 외로움의 힘이 등촉을 밝힌 빛과 소리로 말미암은 것이다.

한낱 감상이나 감정의 소모적인 부산물이기 십상인 외로움이 어떻게 어부들의 무사귀환과 단란한 식탁의 평화를 담보하는 빛과 소리, 그 숭고의 에너지로 승화될 수 있는 것일까.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 위에 지고/한 겨울의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이 노랫말에서 보듯, 그것은 한겨울의 거센 파도를 잠재워 작은 섬을 지키려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가진 등대지기가 있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등대지기의 부재, 혹은 작은 섬을 지키려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이 소실된 상태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2019년 7월 어느 날 죽변등대를 찾았었다. 독도 상공에서 한국, 중국, 러시아 일본 공군기가 뒤얽혀 일촉즉발의 대치상황이 벌어진 날이었다. 머리맡이 하루 종일 웅웅거렸다. 갈매기만 저만치 갯바위를 떠돌 뿐 주차장은 텅 비었고, 죽변등대 사무실 출입문은 잠겨있었다. 등대는 자동시스템의 작동으로 제 할 일을 하겠지만, '출장 중입니다.' 안내 표지는 등대지기의 부재를 알리는 것처럼 곤혹하게 느껴졌다. 작은 섬을 내 나라로, 등대지기를 나라의 책임자로 바꾸어 놓고 보라. 등대의 외로움은 고립무원에 처한 내 나라의 외로움이고, 등대가 쏘아 올리는 빛과 소리는 위기에 처한 내 나라의 딱한 처지를 알리는 외마디 절규가 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에 의하면, 죽변(竹邊)은 대나무가 많이 자생한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 등대 주변에는 키 작은 대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대나무 군락 사이로 난 산책로가 용소(龍沼) 해안까지 닿아 있었다. 이곳 용추곳은 왜구의 침범과 노략질을 방비하기 위해 신라시대 진흥왕 10년 보루성을 구축하고 화랑을 상주시켰던 곳이었다. 두 눈 부릅뜨고 왜구의 침략을 지키던 화랑들의 그 길을 천천히 걸었다. 바닷바람에 이따금 대숲이 일렁였다. 용이 승천하였던 곳이라는 용소가 출렁거렸다. 승천하는 용의 푸른 기상은 어디로 갔을까. 하얀 등대가 외로움의 까치발을 하고 망망대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대가 진정한 등대지기라면 죽창가를 부르자 외쳐서는 안 된다. 고뇌가 필요한 시대이다. 분노는 주먹이 앞서서 눈앞을 흐린다. 국제관계란 정글 논리여서 힘없는 아이를 착하다는 이유만으로 지켜주지 않는다. 해가 지면 죽변등대는 등명기(燈明機)를 밝히고 안개 짙은 날에는 사이렌을 울릴 것이다. 그것은 등대지기를 부르는 외로운 마음의 표현일 터, 백마를 타고 오는 초인을 기다리는 애타는 파수꾼의 몸짓일 것이다. 초인은 어떻게 오는가. 거북선 횟집에서 천만년 기다려도 죽은 이순신은 살아오지 않는다. 우리가 기다리는 초인은 민족과 역사의 푸른 기상 속에서 비로소 형성되는 고뇌의 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