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우리 가족은…리딩방 사기에 무너진 지영이네

이수민 기자(lee.sumin2@mk.co.kr) 2025. 7. 22.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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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소득 있다고 구제도 못받아
지옥 같은 하루…지영이 보며 버텨
“나 없이도 아이가 살아갈만한 세상 오기를”
이상원 씨가 자녀들과 함께 가족여행 때 찍은 추억을 AI로 재가공한 사진.
“아직도 그때가 생각이 나요. 아들의 마지막 모습과 의식 없이 축 늘어져 있던 딸의 모습이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지옥이에요.”

2024년 1월 14일 아침. 거실에서 아침을 맞은 이상원 씨(49)는 등골이 서늘했다. 평소와 다를 것이 없던 집이 어딘가 낯설게 느껴졌던 건, 일요일 아침을 분주하게 맞던 아내와 두 아이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아서였다. 그의 불길한 예상은 닫혀있던 방 문을 열자 현실이 됐다. 이씨는 쓰러진 세 가족을 다급히 끌어안았지만 이 중 아들의 몸은 이미 차갑게 식어있었다. 그들의 옆에는 “미안하다. 아이들을 두고 갈 수 없다”는 아내의 편지만이 남아 있었다.

이씨는 최근 매일경제와 만나 인터뷰하면서 당시를 회상하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이 때의 사고로 지영이는 심각한 뇌 손상을 입고 강원 원주의 한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아내는 살해 및 상해죄로 징역 7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행복했던 그들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린 날이었다.

이씨와 그의 아내는 평범한 맞벌이 부부로 가정을 지켜왔다. 다만 직장 위치가 달라 아내와 두 아이를 충남 아산에 두고 이씨는 홀로 충북 진천에서 떨어져 살아야 했다. 그럼에도 쉬는 날이면 함께 여행을 다니면서 맛집을 찾아다니던 소박하고도 단란한 가정을 지켰다.

이씨는 귀가할 때마다 그를 맞아주던 아이들의 한껏 들뜬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아들은 게임과 먹는 것을 좋아하는 열두 살 소년이었고, 딸은 친구들과 노는 걸 즐기던 활발한 아홉 살 소녀였다.

“돈만 넣으면 된다”…욕망 파고든 리딩방 사기
가족의 비극은 리딩방 사기로부터 시작됐다. 2023년 12월, 아내는 지인을 통해 투자 정보를 공유한다는 리딩방에 들어갔다. 보이스피싱이 사람들의 ‘공포’를 자극한다면, 그 진화형인 리딩방은 사람들의 ‘욕망’을 건드린다. 전문 투자자처럼 행세하는 사기범들은 조작된 수익 화면과 가짜 홈페이지를 활용해 피해자들을 속이고 심리적 압박을 가한다.

사기범들은 ‘추가적으로 돈을 투자하면 100~300%까지 수익을 볼 수 있다’며 더 큰 금액을 요구했다. 아내는 수익을 보기 위해 남편과 지인에게서 투자금을 요청했다. 이씨는 “힘들게 일해온 아내가 원한다면 도와주고 싶었다”며 1억원을 대출해 건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는 지인들에게도 돈을 빌리기 시작했고, 이를 이상하게 여긴 지인이 이씨에게 연락하며 사기 사실이 드러났다.

결국 아내는 총 2억5000만원이라는 거금을 잃었다. 해당 리딩방에 있던 30명가량도 대부분 가짜 인물이었다. 사기 사실을 깨달은 아내가 돈을 돌려달라며 사기범에게 연락했지만, 돌아온 건 “그 돈을 정말 돌려받을 수 있을 것 같냐”는 조롱뿐이었다.

모든 것을 잃은 아내는 절망 끝에 극단적인 선택을 결심했다. 사건이 벌어진 날은 아이들과 함께 스키캠프를 가기로 한 전날이었다. 지영이는 밤늦게까지 이씨와 영상통화를 하며 “곧 만나자”고 말하며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한순간 무너진 일상...남겨진 사람은 지옥
이씨의 시간은 여전히 그날에 멈춰 있다. 4일 일하고 2일 쉬는 생산직 근로자인 그는 휴일이면 오전에는 아들의 납골당에 한참을 있다가, 오후에는 병원에 있는 딸을 찾아간다.

이씨는 “딸만 신경쓰는 것 같아 아들에게 미안하다”며 죄책감을 털어놓았다. 운전할 때면 옆자리에서 조잘거리던 딸과 뒷자리에서 게임을 하던 아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는 지금도 아이들이 옆에 있는 것처럼 혼잣말을 하며 운전대를 잡는다.

병원에서 딸을 돌보다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간다. 집에 돌아와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소주 한 병으로 잠을 청한다. 하지만 좀처럼 잠들 수 없다. 눈을 감아도 떠오르는 건 그날의 기억, 그리고 화목했던 가족의 일상이다.

한순간에 삶이 송두리째 무너졌지만, 제도적 지원은 받을 수 없었다. 입원비와 간병비, 대출 이자와 생활비까지 감당해야 하지만 고정 소득이 있다는 이유로 정부 지원 대상에 들지 않는다. “현재로서는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않으니, 카드값을 6개월 연체하고 오라”는 말까지 들었다. 이씨는 “당장 아이 병원비와 생활비 등을 지출해야 하는데, 제도에 맞추기 위해 일부러 연체하라는 것이 말이 되는지 모르겠다”며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속고 싶어서 속은 것도 아니다. 어디 하소연할 곳도, 기댈 제도도 없다. 현재는 범죄피해자지원센터 등 후원단체의 도움으로 병원비와 간병비 일부를 지원받고 있지만, 그가 버는 돈 대부분은 병원비와 빚 상환에 쓰인다. 겉으론 소득이 기준보다 높아 보일지 몰라도, 실질적으로 남는 건 거의 없다.

이씨는 “은행 빚이 조금이라도 탕감된다면 살아갈 희망이라도 생기겠지만, 소득 수준이나 차상위 계층, 영세민 같은 기준만 기계적으로 적용되니 저 같은 사람은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다”며 “이대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고통 속 유일한 희망, 지영이
이상원 씨가 딸 지영이와 병원에서 함께 찍은 사진. [이상원 씨 제공]
고통스러운 나날 속에서 유일한 버팀목은 딸 지영이다. 아직도 혼수상태였던 지영이가 처음 눈을 떴을 때, 초점 없던 지영이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을 때, ‘아빠’라고 불렀을 때가 생생하다. 그 순간 이씨는 “호전된 아이의 상태에 행복하면서도, 아이의 상태가 여기서 멈추면 어떡하나 두려운 감정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지영이와의 하루를 기록하기 위해 유튜브 채널 ‘아빠와 지영이의 병원일기’를 운영 중이다. 쉬는 날이면 병원을 찾아 지영이의 변화와 일상을 영상으로 담는다. 지영이를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해 시작한 채널이지만, 응원과 위로를 보내주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아버지에게는 다시 일어설 동력이 되기도 한다.

지영이는 아직 말하고 움직이는 데에 제약이 있지만, 표정과 몸짓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언제냐”고 묻자 지영이는 조용히 웃으며 이씨를 껴안았다. “가장 하고 싶은 게 뭐냐”는 질문에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다리를 만졌다. 걷고 싶다는 뜻이었다.

이씨의 간절한 바람은 하나다. “제가 없는 세상에서도, 이 아이가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빚은 평생 갚을 수 있습니다.”

이씨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고,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원주 이수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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