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마 휩쓴 가평, 폭우 속 집집 돌며 주민들 십수 명 대피시킨 마을 이장···“이장이라는 책임감 때문에”

지난 19일 밤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경기 가평군은 ‘물폭탄’을 맞았다. 22일 기준으로 가평군에서만 4명이 사망했고 4명이 실종됐다.
가평군 조종면 주민들은 비가 그친 뒤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새벽 시간 기습적으로 불어난 물에 더 큰 화를 입을 뻔했는데 대보1리 이장 윤태훈씨(60)가 신속하게 주민들을 대피시킨 덕에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가평군 조종면과 상면 사이를 흐르는 조종천의 수위는 지난 20일 새벽 급격히 높아졌다. 전날부터 이곳 일대에는 190㎜ 넘는 비가 퍼부었다. 윤씨는 심상치 않은 빗줄기에 잠을 설치던 터였다. 윤씨는 이날 새벽 조종면과 상면을 잇는 대보교에 홍수 경보가 발령됐다는 재난문자를 보고 집을 나섰다. 윤씨는 지난 21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마을 관할구역에 있는 다리라 상황을 확인해야겠단 마음이었다”고 했다.
윤씨가 트럭을 몰아 다리 앞에 도착한 것은 새벽 3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과거에도 호우로 조종천 물이 불어난 적은 있었지만 이번 홍수는 이전과 달랐다. 불과 20여분만에 물이 마을까지 덮칠 기세로 불어나자 윤씨는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한다”고 생각해 트럭을 바로 앞 민가로 돌렸다. 집집마다 돌며 주민들을 깨워 인근 마을회관으로 향하게 했다. 물이 불어나며 사이렌이 울리고 대피방송이 나왔지만 정작 조종천과 인접한 저지대 쪽에는 방송이 들리지 않아 자칫 주민들이 영문도 모르고 변을 당할 수 있던 상황이었다.
윤씨는 “물살이 거세 할머니들을 부축하며 움직이는데 컨테이너 두 개가 눈앞에 떠다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인근을 다니며 전화를 돌리고 주민들을 대피시키는 사이 불어난 물은 민가 바로 앞까지 들이닥쳤다. 윤씨는 주민들을 피신시킨 마을회관도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해 다시 고지대에 있는 비닐하우스로 옮기라고 연락했다. 그러고 나서 윤씨도 차를 몰아 몸을 피했다. 윤씨는 물이 불어 1t 트럭 중간까지 잠길 정도가 되자 “물살 때문에 차 속력이 나질 않았다”며 “나도 간신히 빠져나왔다”고 했다.

마을 주민들을 피신시키고 나자 윤씨는 대보리 윗마을에 있는 펜션이 떠올랐다. 당시 인근 펜션에도 10여명이 머무르고 있었다. 다시 차를 몰아 펜션으로 향한 윤씨는 이들도 대피시켰다. 그렇게 윤씨가 피신시킨 주민과 펜션 투숙객 등은 20명 가까이 됐다. 윤씨는 무릎과 발이 모두 까졌지만 다친 줄도 모르고 뛰어다녔다. 그는 “대피 과정에서 주민 1명이 불어난 물에 휩쓸려 아직도 찾지 못했다”며 “실종된 한 분이 제일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수해현장에서 만난 박기병씨(67)는 “밤에 상황을 전혀 모르다 이장님 전화를 받고 집에서 나왔다”며 “그 덕에 다행히 잘 피했다”고 말했다. 박씨가 몸을 피한 뒤 집 일부는 물에 잠겼다.
이 마을에서만 40년을 넘게 산 윤씨는 2022년부터 이장을 맡았다. 윤씨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며 “이장이라는 책임감으로 한 일일 뿐, 같은 상황이면 언제든 다시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김태욱 기자 woo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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