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도건축기행- 한국지방신문협회 공동기획] (39) 국립김해박물관
1998년 구지봉 자락에 지어진 원형 건축물
외관 감싼 검은색 벽돌, 철광석·숯 형상화
천년고도 가야국의 제철기술 상징성 부각
녹 생기는 철판, 제련되는 쇠 변화 보여줘
빛 품은 중심 공간 시간 잇는 매개체 활용
과거 유물과 현재의 시간 공존 개념 구현

김해시 구지봉 자락에 자리한 국립김해박물관 외관. ‘철의 왕국’ 가야의 문화유산을 다루는 박물관답게 쇠를 녹이는 용광로와 닮아 있다./국립김해박물관/

철광석과 숯을 형상화한 검은색 벽돌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녹의 옷을 입는 철판은 제련되는 쇠의 변화를 보여준다./성승건 기자/
◇‘철의 왕국’, 땅과 대화를 시작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녹의 옷을 입는 철판은 제련되는 쇠의 변화를 보여준다./성승건 기자/

철광석과 숯을 형상화한 검은색 벽돌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녹의 옷을 입는 철판은 제련되는 쇠의 변화를 보여준다./성승건 기자/
장세양 건축의 큰 특성 중 하나는 ‘명확한 경계에 의한 공간 구성’이다. 그는 스승 김수근이 건축과 자연의 경계를 허물려 했던 것과는 반대로 강력한 외벽을 세워 건축의 영역을 명확히 설정했다. 그리고 그 견고한 경계 안으로 ‘또 다른 자연’을 끌어들이는 방식을 취했다. 마치 양파껍질처럼 겹겹이 공간이 연속되는 구조다. 국립박물관의 단단하고 폐쇄적인 외관은 바로 이 특징이 두드러진 것이다.
하지만 건축가의 언어는 땅의 오랜 이야기와 만나 예기치 못한 논쟁을 일으켰다. 박물관이 자리한 곳은 구지봉이라는 거북이가 해반천으로 내려가는 길목. 이 신성한 길을 육중한 검은 건물이 가로막고 초입에 세운 지주는 마치 거북의 앞길에 박아 넣은 말뚝처럼 보인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이 대목에서 ‘경남의 현대건축’에 실린 한 구절은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거북이가 해반천을 향해 가는데 하필 그곳에 높다란 말뚝을 박아 방해하느냐, 검은색 벽돌이 너무 어둡고 기분 나쁘다’라는 항의에 ‘철의 나라를 표현한 것’이라 설명해 봉변을 면했다는 대목이다. 이를 두고 건축물의 상징성이란 건축가의 순수한 의도였을까, 혹은 예상치 못한 반발에 대한 임시방편 설명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실없는 웃음이 나온다.

박물관 중심부에 자리한 정사각형 형태의 빛으로 가득 차는 공간./성승건 기자/
◇움직임, 빛 그리고 공간 교차
장세양 건축가의 두 번째 특징은 ‘중심 공간에 의한 공간 구성’이다. 장세양은 박물관 건축에서 ‘빛’을 품은 중정이나 아트리움을 통해 과거의 유물과 현재의 시간이 공존하는 개념을 구현했다고 한다. 건물 외부에서는 극도로 절제됐던 창이 내부로 들어서면 천창과 틈새를 통해 빛의 향연을 펼친다. 빛을 단순한 조명이 아닌 유물과 관람객, 그리고 시간을 잇는 매개체로 활용한 것이다. 박물관 심장부에는 정사각형 형태의 빛으로 가득 차는 공간이 자리해 내부 분위기를 형성한다. 천창에는 축제, 환영의 의미가 담긴 전통의 오방색을 채웠다. 이 중심 공간이 건축의 모든 이야기를 묶어내는 듯하다.

지표면 아래에 위치해 개방감을 제공하고 관람객에게 외부와의 새로운 시각적 연결을 제공하는 ‘선큰 가든’./성승건 기자/
박물관은 ‘이너 코트’와 ‘선큰 가든’ 등 다양한 형태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너 코트’는 건물 내부의 안뜰로서 차분한 분위기를 제공하며 ‘선큰 가든’은 지표면 아래에 위치해 개방감을 제공하고 관람객에게 외부와의 새로운 시각적 연결을 제공한다. 다만 ‘선큰 가든’은 건축적 의미로는 뛰어났지만 현실에서는 벤치와 에어컨 실외기가 자리 잡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지표면 아래에 위치해 개방감을 제공하고 관람객에게 외부와의 새로운 시각적 연결을 제공하는 ‘선큰 가든’./성승건 기자/
‘경남의 현대건축’에 따르면 본래 의도한 동선이 관람객에게는 복잡한 미로로 받아들여졌고 결국 박물관 측이 개관 후 설계 의도와는 반대로 출입구를 맞바꾸는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저자는 이를 두고 “건축가의 심오한 뜻이 관람객의 직관적인 발걸음과 온전히 만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평하며 “건축가의 아름다운 독단이 평범한 관람객이 ‘문을 찾는’ 오랜 관습의 힘을 넘어서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을 던진다.

국립김해박물관 전시실./국립김해박물관/

국립김해박물관 전시실./국립김해박물관/

국립김해박물관 전시실./국립김해박물관/

국립김해박물관 전시실./국립김해박물관/
◇새로운 심장 3723점 유물로 펼치는 가야사
논쟁과 타협의 역사를 온몸에 새긴 건축물은 이제 유네스코가 인정한 ‘세계유산 가야’의 가치를 품는 그릇이 됐다. 전면 리모델링을 마친 내부는 장벽 없는(barrier free) 동선으로 현실적 편의성을 더했고 함안 말이산 말갑옷(보물) 등 3723점의 유물은 최신 면진 진열장 안에서 역사의 빛을 발한다.
박준영 기자 bk6041@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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