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골목 34년 지킨 김인화 팀장 정년퇴직…“단속보다 중요한 건 사람”

이봉한 기자 2025. 7. 22.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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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주정차 단속 외길 인생…“질서도 품격도 결국 사람에서 시작”
암 투병 상인·붕어빵 장수·민원…골목마다 남은 한 공직자의 시간
김인화 구미시 교통정책과 팀장.

34년간 구미시 골목길을 지켜온 '밤의 보안관'이 마침내 현장을 떠난다. 오는 31일 정년퇴직을 앞둔 김인화 구미시 교통정책과 팀장은 1992년 첫 발을 내디딘 이후 줄곧 불법 주정차 단속이라는 한 길만을 걸어왔다.

경남대학교 사회체육과를 졸업한 김 팀장은 구미시 입직과 동시에 교통지도 업무에 투입됐다. 초창기에는 24시간 대기근무가 기본이었으며, 민원 전화 한 통이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현장으로 달려가야 했다고 그는 회상했다.

"민원은 제각각이었다"며 "중요한 건 옳고 그름보다 중심을 잃지 않는 태도였다"고 김 팀장은 말했다.

제복을 입고 현장에 나섰던 시절, 욕설과 위협은 일상이었다. 동료가 위협당한 현장에서는 주저 없이 앞장섰고, 10원짜리 동전으로 과태료를 내겠다는 시민에게도 끝까지 품위를 지켰다고 그는 전했다. "단속은 질서이자 품격"이라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다.

수많은 현장 경험 중에서도 김 팀장이 가장 오래 기억하는 것은 '사람'과의 만남이었다. 한겨울 암 투병 중 생계를 이어가던 상인이 단속에 걸렸을 때, 그는 말없이 과태료를 대신 냈다. 며칠 후 그 상인은 과일 바구니를 들고 감사 인사를 전하러 찾아왔다.

"'정말 고맙습니다'라는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며 "그때 알았다. 단속보다 더 중요한 건 마음이라는 것을"이라고 김 팀장은 회고했다.

IMF 시절 붕어빵 장수와의 갈등과 화해, 단속 후 "고맙다"고 인사한 시민들까지, 그는 그 모든 순간을 단속이 아닌 삶으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세월이 흐르며 현장 환경도 크게 변화했다. 공익요원들과 골목을 누비던 시절에서 이제는 시민이 앱으로 직접 신고하는 시대가 됐다. 하지만 김 팀장은 "현장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공무원은 여전히 욕을 먹고, 민원인은 모두 억울하다고 말한다"며 "그럴수록 우리가 지켜야 할 건 중심"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김 팀장은 후배들에게 마지막 당부로 "누구의 편도 들지 말고, 시민을 품되 원칙에서 흔들리지 말라"며 "무엇보다 단속보다 더 중요한 건 사람"이라고 조언했다.
 
김인화의 시 '백기'.

퇴장을 앞둔 그는 "후회라고 쓸까요, 자유라고 쓸까요, 통일이라고 쓸까요. 백기에는 할 말이 없다"며 한 편의 시처럼 지난 시간을 담담히 갈무리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꺼내든 '백기'는 항복이 아닌 담담한 퇴장의 기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