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신문은 지난 10개월간 도내 18개 시군에서 고향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22명의 귀향청년을 만났습니다.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떠났던 이들은 왜 다시 고향을 선택했을까요. 누군가는 농사를 짓고, 누군가는 빵을 굽고, 또 누군가는 조선소에서 땀을 흘립니다. 이들의 귀향은 단순히 ‘돌아옴’에 그치지 않습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고향에 다시금 뿌리를 내려 ‘지역에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새로운 답을 써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이번 기획을 마무리하며, 청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다시 한번 담았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이들의 귀향이 이어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전문가의 제언을 통해 살펴봤습니다.
타지서 돌아온 경남 청년 22명 농부·디자이너·사진작가·요리사 용접사·양식업·농산물 브랜딩… 각자의 방식으로 희망의 미래 꿈꿔
◇고향에 뿌리내린 22명의 귀향청년= 의령에서 연잎 농사와 청년마을 사업 ‘홍의별곡’을 운영 중인 안시내(30)씨는 “한때 외교관을 꿈꾸며 고향을 떠났지만, 소멸 위기에 놓인 의령을 지키고 싶어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도 청년과 지역이 함께하는 의령의 내일을 그려가고 있다.
의령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다도 수업을 하고 있는 안시내 홍의별곡 대표.
의령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다도 수업을 하고 있는 안시내 홍의별곡 대표.
산청에서 딸기농사를 짓는 이종혁(40)씨는 “서울에서 농민단체 활동을 하며 농업의 현실을 체감했고, 결국 뿌리인 산청에서 직접 농사짓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일군 딸기밭에서 고향과 가족, 농업의 가치를 되새기고 있다.
산청 경호강 앞에서 카페 ‘리버노트’를 운영하는 박진상씨.
산청 경호강 앞에서 카페 ‘리버노트’를 운영하는 박진상씨.
산청 경호강 앞에서 카페 ‘리버노트’를 운영하는 박진상(38)씨는 “도시의 치열한 삶보다 풍경과 시간이 주는 여유에 끌려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산과 강이 내려다보이는 고장에서 자신만의 속도로 커피와 빵을 굽고 있다.
지역언론인이자 청년활동가인 최학수씨가 주간함양 사무실에서 PPT를 만들고 있다./성승건 기자/
지역언론인이자 청년활동가인 최학수씨가 주간함양 사무실에서 PPT를 만들고 있다./성승건 기자/
함양에서 지역신문 기자로 활동하는 최학수(29)씨는 “지역의 삶을 가까이서 기록하며 고향을 새롭게 바라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지역 청년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다.
남해군 미조면에서 한식당 ‘힙한식’을 운영하는 이정서씨가 요리 준비를 하고 있다.
남해군 미조면에서 한식당 ‘힙한식’을 운영하는 이정서씨가 요리 준비를 하고 있다.
남해 미조면에서 한식당 ‘힙한식’을 운영하는 요리사 이정서(31)씨는 “해외에서 향수병을 겪던 중, 고향 식재료로 새로운 음식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 돌아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부부 요리사로서 남해의 일상을 즐기며, 마음을 치유하는 레스토랑을 꿈꾸고 있다.
남해군 남해읍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양희수씨가 귀향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남해군 남해읍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양희수씨가 귀향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남해읍에서 ‘마파람사진관’을 운영하는 양희수(35)씨는 “서울에서의 삶은 기대만큼 행복하지 않았고, 결국 가장 숨 쉬기 좋은 곳은 고향 남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줄어드는 인구를 사진으로 기록하며, 사람과 삶을 담는 따뜻한 작가로 거듭나고 있다.
합천에서 사과 과수원을 운영하는 권광현(45)씨는 “어릴 적 농부의 삶이 싫어 고향을 떠났지만, 치열한 도시 생활 끝에 결국 농사가 천직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지역 농산물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법인 설립을 꿈꾸고 있다.
㈜다른파도 이강희 대표(왼쪽)와 권경민 이사가 사무실에서 자체 상품으로 개발 중인 배로 만든 술의 맛을 테스트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다른파도 이강희 대표(왼쪽)와 권경민 이사가 사무실에서 자체 상품으로 개발 중인 배로 만든 술의 맛을 테스트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하동 농산물 브랜딩·유통회사 ‘㈜다른파도’의 이강희(30) 대표와 권경민(28) 이사는 “도시에서는 원하는 일을 찾기 어려웠고, 새로운 도전을 고민하던 끝에 자연스레 고향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청년이 떠나지 않아도 되는 지역을 만들기 위해 지역의 자원과 전문성을 결합한 다양한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고성군 거류면에서 시골 체험 숙박공간인 ‘풀빛고성’을 운영 중인 황정호씨가 유리창을 닦고 있다./성승건 기자/
고성군 거류면에서 시골 체험 숙박공간인 ‘풀빛고성’을 운영 중인 황정호씨가 유리창을 닦고 있다./성승건 기자/
고성 거류면에서 청년 로컬공간 ‘풀빛고성’을 운영하는 황정호(36)씨는 “도시의 삶에 지쳐 쉼이 필요하던 순간, 고성의 느린 시간이 큰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언젠가 쇠락한 고성을 ‘쇄락’의 땅으로 바꾸겠다는 믿음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성군 삼산면에서 가리비 양식업을 하고 있는 심창성씨가 수조에 있는 가리비를 뜰채로 옮기고 있다./성승건 기자/
고성군 삼산면에서 가리비 양식업을 하고 있는 심창성씨가 수조에 있는 가리비를 뜰채로 옮기고 있다./성승건 기자/
고성 삼산면에서 가리비 양식업을 하는 심창성(40)씨는 “어느 순간 도시의 삶보다 고향 바다가 그리워졌고, 다시 시작한 뱃일은 자부심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매일 바다를 마주하며 고성 가리비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싶다는 꿈을 키워가고 있다.
창녕에서 마늘 농사를 짓는 이정윤(40)씨는 “직장생활을 할 땐 여유가 없어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 못했지만, 지금은 계절의 흐름에 따라 일하고 쉬며 고향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땀 흘리고 웃을 수 있는 이곳이야말로 그가 꿈꾸던 진정한 삶의 방향이다.
차미나 대표가 협력 업체 연구실에서 할머니의 씨된장 종균을 분리하고 있다./본인 제공/
차미나 대표가 협력 업체 연구실에서 할머니의 씨된장 종균을 분리하고 있다./본인 제공/
함안의 전통 장류 브랜드 ‘아라두레’ 대표 차미나(40)씨는 “된장에 사계절을 담아야 제 맛이 난다는 할머니의 말이 마음에 깊이 남아, 그날 이후 고향에서 장을 담그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시간에 쫓기던 삶을 뒤로하고, 전통장을 통해 함안을 세계와 잇고 있다.
거창군 거창읍에서 로컬푸드 가게인 ‘거창담다’에서 물류팀장으로 일하는 신행재씨가 상품을 정리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거창군 거창읍에서 로컬푸드 가게인 ‘거창담다’에서 물류팀장으로 일하는 신행재씨가 상품을 정리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거창에서 로컬푸드 매장 ‘거창담다’ 물류팀장으로 일하는 신행재(34)씨는 “요리사로 지친 도시생활을 접고, 고향에서 건강한 먹거리와 소비자를 잇는 일을 하며 사람 냄새나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식재료의 본질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오늘도 고향의 밥상을 풍요롭게 채우고 있다.
경남도립거창대학 창업보육센터에서 ‘덕유산고라니들’의 대표를 맡고 있는 박영민씨가 지속가능한 농업 모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경남도립거창대학 창업보육센터에서 ‘덕유산고라니들’의 대표를 맡고 있는 박영민씨가 지속가능한 농업 모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거창에서 청년 농부이자 귀농·귀촌 청년단체 ‘덕유산고라니들’ 대표인 박영민(37)씨는 “도시의 빠른 속도와 집 없는 서러움을 뒤로하고, 자급자족의 삶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지속가능한 농업 모델을 연구하며 청년과 지역이 함께 살아갈 길을 모색하고 있다.
밀양시 소통협력센터에서 만난 황선연씨가 노트북으로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밀양시 소통협력센터에서 만난 황선연씨가 노트북으로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밀양에서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황선연(35)씨는 “나를 먼저 기억해 준 곳은 고향 밀양이었고, 이제는 이곳에서 오래 머물고 싶다”고 말했다. 생계를 위한 일이 아닌, 삶을 나눌 사람들을 만나며, 고향은 비로소 그에게 진짜 안식처가 됐다.
(앞줄 오른쪽부터 시계방향)김보경 삼천포블루스 대표와 오혜민 밍뜰리에 대표, 정유진 삼천포작업실 대표, 양소윤 삼천포블루스 이사가 청년문화에비뉴에서 함께 점심을 먹으며 젊은이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젊심’ 시간을 갖기로 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전강용 기자/
(앞줄 오른쪽부터 시계방향)김보경 삼천포블루스 대표와 오혜민 밍뜰리에 대표, 정유진 삼천포작업실 대표, 양소윤 삼천포블루스 이사가 청년문화에비뉴에서 함께 점심을 먹으며 젊은이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젊심’ 시간을 갖기로 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전강용 기자/
사천에서 지역 문화 콘텐츠 회사 ‘삼천포블루스’를 운영 중인 김보경(40)씨는 “도시의 삶을 내려놓고 돌아왔을 때, 고향이 단지 익숙한 곳이 아니라 가능성을 그릴 수 있는 도화지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의 이야기를 콘텐츠로 풀어내며 고향의 가치를 다시 써 내려가고 있다.
통영 고양이회관 김소미 대표가 환하게 웃고 있다./성승건 기자/
통영 고양이회관 김소미 대표가 환하게 웃고 있다./성승건 기자/
통영에서 독립서점 ‘고양이 회관’을 운영하는 김소미(30)씨는 “승무원을 꿈꾸며 도시의 삶을 좇았지만, 길고양이를 만난 뒤 고향에서 내가 원하는 공간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고양이와 책이 공존하는 공간에서 그는 생명과 사람이 함께 머무는 따뜻한 고향을 그려가고 있다.
한화오션 신입사원 장민씨가 조선소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한화오션 신입사원 장민씨가 조선소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거제 한화오션에서 LNG선 화물창 용접을 맡고 있는 장민(30)씨는 “조선업이 어려워 타지로 떠났지만, 결국 고향에서 내 기술을 펼치기 위해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고향의 바다에서 다시 미래를 향한 항해를 이어가고 있다.
진주에서 친환경 애호박을 기르는 김기태(42)씨는 “퇴직 후 삶을 고민하다 진주의 흙냄새가 떠올랐고, 자연 속에서 새 삶을 설계하고 싶다는 바람이 나를 고향으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가장의 책임감으로 돈을 벌기 위해 떠났던 고향에서, 그는 이제 주체적으로 삶을 일구며 인생 제2막을 써 내려가고 있다.
양창민 앤티앤스프레즐 양산물금점 대표가 양산시 물금읍의 매장에서 프레즐을 만들고 있다./김승권 기자/
양창민 앤티앤스프레즐 양산물금점 대표가 양산시 물금읍의 매장에서 프레즐을 만들고 있다./김승권 기자/
양산에서 프레즐 전문점을 운영하는 양창민(33)씨는 “타지에서 자동차 배터리 라인을 구축하는 회사에 다녔지만, 익숙한 거리와 사람들, 가족이 그리워 귀향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따뜻한 반죽 위에 정성과 웃음을 얹는 그의 하루는 고향에서의 새로운 시작으로 달콤하게 익어가고 있다.
전민수씨가 지난 2023년 김해에서 열린 ‘김해 뮤직페스티벌 연어’ 본무대서 MC를 맡아 진행을 하고 있다./본인 제공/
전민수씨가 지난 2023년 김해에서 열린 ‘김해 뮤직페스티벌 연어’ 본무대서 MC를 맡아 진행을 하고 있다./본인 제공/
김해에서 지역 축제 MC로 활동하는 전민수(37)씨는 “결혼식 사회자로 무대를 시작하며 한계를 느꼈지만, 타지에서의 경험을 통해 결국 내가 설 무대는 고향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 축제와 청년 정책을 기획하며 자신만의 무대에서 김해의 내일을 만들어가고 있다.
박예일 대표가 공방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박예일 대표가 공방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창원에서 ‘자작나무공방’을 운영하는 박예일(30)씨는 “서울에서 음악을 하다 방황하던 시절, 아버지의 공방을 돕던 일이 삶의 방향을 바꿨다”고 말했다. 나무와 사람을 잇는 공간을 만들어 가는 그는 고향에서 목공이라는 새로운 꿈을 정성스레 깎아가고 있다.
[전문가 제언] 권희경 창원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일·삶 균형 중요한 청년들 지역 뿌리내리려면 좋은 일자리·주거정책 필요, 교육의 질 높여야
권희경 창원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권희경 창원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Q. 청년 유출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일부 청년들은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들의 귀향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나.
A. 수도권은 지역과 비교했을 때 집값과 생활비 등이 너무 높아 삶의 질 자체가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을 청년들이 깨닫고 있는 것 같다. 한 평에 1억원을 넘기도 하는 서울 집값은 청년이 스스로 돈을 모아 사기에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 사회는 수도권 중심주의가 워낙 강하다 보니 교육과 취업을 위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으로 이주했다가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깨닫고, 안정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는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Q. 귀향한 청년들이 지역에 정착하고 뿌리내리는 데 여러 어려움이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적·사회적 지원은 어떻게 개선돼야 하나.
A.지역이 청년이 살기 좋은 곳이 되면 자연스럽게 귀향이 늘어날 것으로 본다. 특히 좋은 일자리와 주거가 핵심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특별히 귀향 청년만을 위한 지원을 따로 하게 되면 지역을 지켜온 청년이 상대적으로 역차별이라고 느낄 수 있으므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귀향 청년이 창업을 한다거나 집을 구할 때 대출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보증보험 가입 시 일부 지자체 보조해주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또한 사회가 점차 온라인 쪽으로 많이 기우는 경향이 있어, 지자체가 귀향 청년들이 활동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Q. 더 많은 청년들이 돌아오고, 떠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지역사회와 지자체, 정부 등에서 장기적으로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하나.
A. 오히려 청년들이 일정 기간 동안 다른 지역에 가서 교육을 받고 생활해 보는 것은 지역의 폐쇄성을 극복하기 위해 좋다고 생각한다.
특히 지역은 교육으로 인한 청년 유출 인구가 많다. 이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지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역 대학으로 진학하는 학생들을 지원하거나, 대학을 지원해서 교육의 질을 높이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 미국 주립대학에서는 이미 이런 제도가 활성화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