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불호 나뉠 '전독시', 즐겁거나 당혹스럽거나
아이즈 ize 정수진(칼럼니스트)

어느 날 갑자기 세계가 멸망한다. 크리처들이 나타나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죽이고, 그 와중 등장한 도깨비는 사람들에게 기이한 '시나리오'를 미션으로 내며 살아남을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이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있다. 사실 이 상황은 10년 동안 연재된 웹소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이하 멸살법)'이 갑자기 현실이 된 것. 그리고 김독자(안효섭)는 지난 몇 년간 그 소설의 유일한 독자였다. 그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난 이 게임을 해 봤어요!"를 외치던 '오징어 게임'의 성기훈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김독자는 10년간 연재되던 '멸살법'의 완결편이 올라온 날 작가에게 항의의 메시지를 남긴다. 이 소설은 최악이라고. 그런데 작가에게 답장이 온다. 그렇게 결말이 마음에 안 드시면 직접 써보라는 의아한 말과 함께. 작가가 말한 '유료판'이 시작된다는 오후 7시 정각, 김독자가 타고 있던 서울지하철 3호선이 멈추면서 소설이 현실에 구현된다. 이 소설의 진짜 주인공은 유중혁(이민호)이지만 김독자는 모두가 죽고 유중혁 혼자만 살아남는 결말에 항의를 보냈던 만큼, 유중혁을 도와 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나는 것이 목표다.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의 기본 설정은 이렇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전지적 독자 시점'은 글로벌 누적 조회수 3억뷰를 넘긴 싱숑 작가의 동명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소설 속 세계관 자체가 방대한 데다, 세계가 멸망하며 크리처들이 날뛰는 판타지이자 아포칼립스물이니 영상으로 구현하는 것 자체가 거대한 도전임이 분명했다. 100만 관객 모으기도 쉽지 않은 이 시점에 제작비 300억 규모의 블록버스터 영화의 개봉 자체도 도전이다. 무려 관객 600만 명을 모아야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다. 그런데 벌써부터 원작 강성 팬덤의 눈초리는 매섭기 짝이 없다. 주인공 김독자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 것처럼, 영화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고백하자면, '전지적 독자 시점'의 원작 소설을 보지 않았다. 원작이 있는 영화를 볼 때 '원작을 봤느냐 안 봤느냐'는 큰 갈림길이 되곤 한다. 미리 원작을 접하지 않은 건, 여름 시장을 겨냥하는 블록버스터 상업영화에서 원작을 보지 않은 관객을 고려하지 않았을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 최소 600만 명을 목표로 하는 영화라면 원작 팬의 만족도 이상으로 신규 관객을 얼마나 매혹시키는지가 관건이다. 영화는 신규 관객의 진입장벽이 아주 높은 편은 아니라는 점에서 점수를 줄 수 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김독자의 내레이션만 들어도 이 세계관의 방대함을 가늠할 수 있는데, 비록 몇몇 장면에서 전달력이 떨어질 때도 있지만 이 세계가 어떤 규칙으로 작동하는지 빠르게 습득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또 한 번 갈림길이 나뉜다. 영화 속 세계가 전반적으로 RPG게임(역할수행게임)의 분위기와 비슷한지라 게임 문법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겐 허들이 된다. 중장년층 이상에겐 쉽지 않을 수 있다.

반면 원작을 보지 않았어도 게임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게임처럼 몰입되는 효과가 크다. 김독자가 회사 동료 유상아(채수빈)와 소설 속 캐릭터인 이현성(신승호), 정희원(나나), 이지혜(지수) 그리고 어린이 이길영(권은성)과 함께 각종 퀘스트를 깨고 생존에 필요한 코인을 얻어 스탯(능력치)을 올리면서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다가온다. 끊어진 동호대교를 무사히 건너야 하고, 어룡의 뱃속에서 탈출해야 하며, 욕망과 생존이 범벅된 아귀 같은 사람들 틈바구니를 헤치고 한 명이라도 더 살려야 한다. 옥수역부터 소설 속에서 유중혁이 한 번 죽게 되는 하이라이트 신의 충무로역까지, 실재하는 지하철 3호선을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느낌의 현실감도 나쁘지 않다.
영화의 장르가 판타지 액션물이라 VFX와 CG 활용이 대부분이다. 자연히, 눈에 보이지 않는 크리처들에 맞서는 등 연기의 상당부분을 블루스크린 앞에서 펼쳤을 배우들의 고군분투가 절절하게 보이는 영화다. 특히 평범한 독자이면서도 과거의 트라우마를 딛고 성장해가야 하는 김독자 역의 안효섭의 노력은 인정할 만하다. 비중은 크지 않지만 소설 속 주인공인 만큼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온몸으로 발현해야 하는 유중혁을 맡은 이민호의 고유한 아우라도 수긍할 수밖에 없다. 이현성과 정희원 역의 신승호와 나나의 피지컬과 비주얼이 표현하는 액션에도 엄지를 들고 싶다. 유상아 역의 채수빈은 의외의 코믹함이 눈에 띈다. 영화 상영 중 쿡쿡 웃은 코미디의 대부분이 채수빈에게서 비롯됐다. 곳곳에 산재한 빌런 역할의 뒷받침도 좋다. 박호산, 정성일, 최영준의 쓰임이 적절하다. 다시 말하지만, 원작을 보지 않았기에 '싱크로율'을 따져가며 화를 낼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화가 나는 포인트는, 이지혜에 분한 지수의 '발연기'. 드라마 '뉴토피아'를 통해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존재감이 상당할 것이라 추측되는 캐릭터인데, 블랙핑크 지수라는 이름으로도 안 되는 건 안 되나 보다.

배우들과 함께 존재감이 상당해야 할 크리처들에겐 의문이 남는다. 도깨비, 거대 사마귀, 어룡, 화룡 같은 이들의 퀄리티 정도는 둘째치고, 캐릭터 자체가 영화를 보고 난 후 기억에 남지 않는다. 후반부로 갈수록 크리처들과 벌이는 액션신이 화려해지는데, 점점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성 싶다. 캐릭터 디자인이 그리 좋지 않았단 소리다.
세계관이 방대한 만큼 후속편을 염두에 둔 것은 알겠다. 그럼에도, 갑자기 뚝 끊기는 듯한 마무리는 당혹스럽다. 쿠키 영상으로 후속편을 암시하지만, 어느 정도의 완결성을 담보했어야 하지 않나 싶다. 원작 팬들이야 다음 이야기를 알고 있지만, 신규 관객은 어쩌라고. 원작으로 유입을 꾀하는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영화 자체의 만족도를 높이고 후속편을 기다리게 할 정도의 후킹한 마무리인지는 의문이 든다. 그렇지 않아도 게임 CF 같은 느낌인데, 117분짜리 게임 CF를 본 것만 같다.

'전지적 독자 시점'은 '더 테러 라이브'로 숨막히는 몰입을 잘 보여준 김병우 감독이 연출을, '신과함께' 시리즈의 리얼라이즈픽쳐스가 제작을 맡았다. '더 테러 라이브'와 '신과함께' 시리즈는 흥행과 평가에서 모두 좋은 성적을 거뒀는데, '전지적 독자 시점'도 그런 해피엔딩을 얻고, 후속편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개봉은 7월 23일. 같은 주 개봉하는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 이후에도 조정석의 코미디 '좀비딸'과 '존 윅'의 스핀오프 '발레리나' 같은 센 영화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정수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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