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과, 과즙 많은 ‘갈라’·아삭한 ‘엔비’ 등 품종 수백종… 국산 사과는 고당도·충주산·영주산 등 당도와 산지 중심[정주영이 만난 ‘세상의 식탁’]

2025. 7. 22.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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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은 아는데, '사과'는 모른다.

외국 소녀들의 이름 같지만, 미국 마트에서 만난 사과 품종들이다.

다행히 최근에 국산 신품종 개발이 활발해지고, 다양한 모양과 맛을 지닌 사과를 직접 재배하는 농가도 하나둘 늘고 있다.

농부 시장, 유기농 매장, 사과 축제장 등에서 이 독특한 품종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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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주영이 만난 ‘세상의 식탁’ - 색·모양·맛·용도 다양한 ‘애플’
다양한 품종의 사과가 전시돼 있는 미국의 한 마트 과일코너. 정혜정 촬영

‘애플’은 아는데, ‘사과’는 모른다.

‘핑크 레이디’ ‘허니 크리스프’ ‘그라니 스미스’ ‘갈라’ ‘엠파이어’ ‘엔비’….

외국 소녀들의 이름 같지만, 미국 마트에서 만난 사과 품종들이다. 진열대에는 모형이라 해도 믿을 만큼 다채로운 색의 사과로 가득했다. 탐스러운 새빨간 사과, 배처럼 둥글고 노란 사과, ‘아삭’하는 소리가 연상되는 연둣빛 사과에 이르기까지 이름만큼이나 색과 모양, 맛과 용도도 다양했다.

한참을 고르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친구는 “갈라는 즙이 많아 주스에 좋고, 엔비는 그냥 베어 먹을 때 좋아”라며 사과별 용도를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어떻게 품종마다 특색을 다 아느냐고 물었더니 “매일 먹으니까”라는 단순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제야 깨달았다. 매일 마주하는 익숙한 과일이지만, 아는 사과 이름은 ‘부사’와 ‘홍로’가 전부였다는 사실을.

한국에 돌아와 마트를 찾았을 때 풍경은 사뭇 달랐다. ‘고당도 사과’ ‘실속 사과’ ‘못난이 사과’ ‘충주 사과’ ‘영주 사과’ 등. 눈에 띄는 건 ‘품종’이 아니라 ‘산지’와 ‘당도’다. 우리는 사과를 왜 이렇게 소개할까?

물론 농산물은 계절 따라 가격 변동 폭이 크니, 가성비를 강조하는 건 자연스럽다. 산지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다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왜 외국은 산지가 아니라 품종을 중심으로 사과를 고를까?

한국은 산업화 이후 유통과 생산의 효율성을 우선하며, 몇몇 경쟁력 있는 품종에 집중해 왔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국산 사과 품종은 현재 40여 종에 이르지만, 그중 70% 이상은 일본산 ‘부사(富士, fuji)’다. 선택지가 적으니 자연스레 ‘당도’나 ‘지역’으로 차별점을 만들 수밖에.

문제는 이렇게 효율성만 따지다 보니 소비자는 선택의 즐거움을 잃었고, 농업 생태계는 취약한 구조에 놓이게 됐다는 점이다. 하지만 품종의 다양성은 단순히 미각의 취향 문제가 아니다. 산미가 두드러지는 품종, 저장성이 좋은 품종, 식감이 독특한 품종 등 각기 쓰임새가 다르고, 기능도 다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생존력’이다. 하나의 품종에만 의존하면 병충해나 기후 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다양한 품종이 공존하면 피해가 분산된다. 마치 투자에서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구성하듯, 생태계에서는 유전적 다양성을 중시하듯, 농업에서도 다양성은 일종의 보험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마트에선 수십에서 수백 종의 사과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 배경에는 오랜 시간 축적된 재배 기술과 유전 자원, 소비자의 호기심이 자리한다. 반면 한국은 1970년대까지도 전통 품종의 연구와 육성이 미미했다. 이후 일본 품종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국내 품종 개발은 한동안 뒷전으로 밀렸다.

다행히 최근에 국산 신품종 개발이 활발해지고, 다양한 모양과 맛을 지닌 사과를 직접 재배하는 농가도 하나둘 늘고 있다. 소규모 직거래 장터나 파머스 마켓을 중심으로 이름도, 생김새도 낯선 새 품종이 등장하고, 소비자들도 점차 그 차이를 인식하고 반응하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사과를 들여오는 일’이 아니라, ‘우리 땅에서 자란 더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사과’다. 새로운 얼굴, 다양한 맛의 사과를 위해 필요한 건 품종 혁신과 소비자 관심이다.

우리는 지금도 하루 종일 사과를 마주한다. 손목 위 애플워치, 귀 안의 에어팟, 손바닥 위의 아이폰. 이 익숙한 사과에 대한 기능과 버전은 줄줄 꿰고 있지만, 정작 식탁 위의 사과는 얼마나 단조로운지 모르는 게 아닐까?

서울대 웰니스융합센터 책임연구원

■ 한 스푼 더 ‘에어룸(Heirloom)’이란… 고유의 품종 뜻해

에어룸은 대를 이어 물려주는 물건, 기억, 품종을 뜻한다. 수십, 수백 년 전부터 전해 내려온 고유 품종으로 대량생산이나 유전 개량의 흐름에서 벗어나 살아남은 ‘살아 있는 유산’이다. 각기 다른 맛과 향, 크기와 색을 지니며, 표준화되지 않은 개성이 특징이다. 최근 건강, 로컬 푸드, 슬로 푸드 트렌드와 함께, 잊힌 전통 품종을 복원하려는 움직임도 늘고 있다. 농부 시장, 유기농 매장, 사과 축제장 등에서 이 독특한 품종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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