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는 해고되지 않는다” 동일방직의 50년 [기자의 추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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앳된 여자아이가 하얀 솜먼지가 폴폴 날리는 기계 사이를 오간다.
그랬던 동일방직은 1970년대부터 2025년 현재까지 50년간 복직을 위한 '긴 투쟁'을 해온 유일무이한 사업장이 됐다.
중앙정보부와 섬유노조가 한 몸처럼 민주노조를 탄압하던 시절,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은 제 손으로 뽑은 노조 집행부를 지키기 위해 수없이 결단하고 연대하며 '귀한 삶'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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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돌규·정경원 지음 동일방직해고자복직 추진위원회 기획
한내 펴냄

앳된 여자아이가 하얀 솜먼지가 폴폴 날리는 기계 사이를 오간다. 실을 만들고(방적), 그 실로 천을 만드는(직포) 방직공장에서 일을 하고 나면 하얀 솜이 머리 위에 내려앉아 누구나 할머니가 됐다. 한 사람이 기계 28대를 담당했다. 기계에 연결된 실이 엉키지 않게 살피고, 끊긴 실이 있으면 재빨리 다시 잇는다. 1분에 140보씩 움직여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밥 먹을 시간도,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8시간을 일했다. ‘오빠와 가족들을 위해’ 대도시로 올라온 여성들은 ‘꿈의 직장’이라 불리던 동일방직주식회사(동일방직)의 현실을 취업 후에야 마주했다.
그랬던 동일방직은 1970년대부터 2025년 현재까지 50년간 복직을 위한 ‘긴 투쟁’을 해온 유일무이한 사업장이 됐다. 중앙정보부와 섬유노조가 한 몸처럼 민주노조를 탄압하던 시절,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은 제 손으로 뽑은 노조 집행부를 지키기 위해 수없이 결단하고 연대하며 ‘귀한 삶’을 선택했다.
1978년 2월21일, 똥물 사건은 대표적인 노조 탄압 사건이다. 민주노조 후보였던 이총각 현 지부장과 사용자 측의 지지를 받던 박복례 후보 중 3년간 노조를 이끌 지부장을 선출하는 대의원 선거일이었다. 새벽 6시, 야근조가 퇴근하며 투표를 하는 시간에 맞춰 박복례와 남성 조합원들이 ‘똥바께쓰’를 들고 와 “닥치는 대로 조합원들의 얼굴과 온몸에 바르고 뿌리고 먹였으며, 달아나는 여성 조합원들을 쫓아다니며 가슴에 똥을 집어넣는가 하면 통째로 뒤집어씌우기도 했다”. “아무리 가난하게 살았어도 똥을 먹고 살지는 않았다!” 처절한 외침에도 현장에 있던 경찰들은 욕을 하며 비웃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섬유노조는 동일방직노조를 ‘사고지부’로 결정하고 민주노조 간부들을 제명했다.
회사 내 노조 활동이 불가능해졌지만 조합원들은 사태를 알리기 위해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노동절 행사에 유인물을 뿌리며 기습 시위를 벌이고, 서울 명동성당에서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하기도 했다. 회사 측과 중앙정보부는 단식을 중단시키기 위해 협상을 벌였지만 결국 협잡이었다. 투쟁한 조합원 124명에게 내려진 처분은 해고였다.
이후 긴 세월, 블랙리스트로 관리된 조합원들은 취업도 하지 못한 채 쫓겨 다니고, 다시 싸우고, 수감된 동지를 위해 옥바라지를 하며 삶을 일궜다. 부평초처럼 떠돌던 이들이지만 마음속에는 양심과 명예가 있었다. “노동자는 해고한다고 해서 해고되는 게 아니다, 나이가 들어도 끝까지 투쟁하는 게 노동자라는 걸 보여주고(김용자)” 싶었다. 동일방직 투쟁은 대한민국 노동운동사와 민주화운동사라는 거대한 물줄기를 잇는다. ‘노동자로서의 깡다구’가 무엇인지 삶으로 보여준 용맹한 여성들은 아직도 분분히 현재에 말을 건다. 시간에 패배하지 않은 50년의 투쟁사를 통사로 정리한 이 책에는 용기와 기개, 눈물과 우정 같은 고귀한 것이 가득하다.
김다은 기자 midnightblu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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