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곡·악단·음반사까지 꼭 닮은 ‘콩쿠르 퀸’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36)는 ‘다 계획이 있는’ 연주자다. 작곡가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베토벤·브람스·멘델스존과 더불어 독일 바이올린 협주곡의 대표곡으로 꼽힌다. 세계적 음반사 도이치그라모폰(DG)을 통해서 이 곡을 녹음할 기회가 생겼지만, 김봄소리는 2~3년간 오히려 기다렸다. 함께 녹음하고 싶은 악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 남부의 명문 밤베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였다.
밤베르크 심포니는 1946년 체코에서 추방당한 독일계 단원들이 창단한 악단이다. 김봄소리는 18일 인터뷰에서 “밝은 음악을 하는데도 슬픈 느낌을 안기는 체코 작곡가 드보르자크의 작품처럼 깊고 복합적인 보헤미아(체코 서부)적 정서를 간직한 악단”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스승인 김영욱(77) 서울대 음대 특임 교수가 1972년 같은 음반사에서 같은 협주곡을 녹음했던 악단이 밤베르크 심포니였다. 김영욱은 정경화와 더불어 해외 진출 1세대로 꼽히는 바이올리니스트. 지휘자 카라얀·번스타인과도 협연했으며, 특히 첼리스트 요요 마·피아니스트 이매뉴얼 액스와 함께 결성했던 ‘액스 김 마(Ax-Kim-Ma) 3중주단’으로 유명하다. 스승의 음반사에서 스승이 녹음했던 협주곡을 스승이 협연했던 악단과 녹음한 것이다. 김봄소리는 “어릴 적부터 음반이 닳도록 들었던 곡이기 때문에 꿈이 이뤄진 것만 같았다”고 했다.

김봄소리는 고교 때 마스터 클래스(공개 강좌)에서 스승을 처음 만났다. 하지만 그는 “벨기에 작곡가 비외탕의 협주곡을 준비해 갔는데, 경험이 없어서 무반주로 혼자 연주했다가 처음부터 엄청 혼났다”고 했다. 협주곡은 독주자(獨奏者)와 악단의 호흡이 생명인데 아무런 반주 없이 홀로 연주했으니 처음부터 ‘절반의 연주’에 그쳤던 셈이었다. 김봄소리는 “당연히 혼날 만했다”며 웃었다.
서울대 음대에서 사제(師弟) 관계가 됐지만, 정작 첫 학기에는 새로운 곡은 배우지 않고 스승 앞에서 바이올린 활을 켜는 법만 연습했다. 활의 움직임을 의미하는 보잉(bowing)이나 운궁법(運弓法)은 야구 선수의 방망이나 골프 선수의 채처럼 올바른 자세가 필수적이다. 김봄소리는 “활을 쓰면서 무의식적으로 생겼던 나쁜 습관이나 불필요한 힘을 모두 빼기 위해서 한 학기 내내 활을 앞뒤로 긋는 동작만 반복했다”고 했다. 심지어 당시 학교에서는 ‘콩쿠르에 빨리 나가고 싶으면 김영욱 선생님께 배우면 안 된다’는 괴담도 나돌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당시엔 레슨받고서 많이 울었지만 돌아보면 그 시간이 무척 고맙다”고 했다. 왜일까. “그 과정이 없었다면 제가 지금 가지고 있는 소리와는 전혀 다른 소리가 났을 것”이라고 했다.
2010년 일본 센다이 콩쿠르에서 4위 입상한 뒤 7년간 11개 대회에서 입상했다. 이 때문에 ‘콩쿠르 퀸(Queen)’이나 ‘콩쿠르 사냥꾼’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그는 “경험이 없던 젊은 시절 단기간에 많은 곡을 익히고 연주할 수 있는 집중 훈련의 기회가 됐다”고 했다. 마지막 대회였던 2016년 폴란드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에서 준우승하면서 국제 무대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피아노·플루트는 물론, 발레·바둑까지 배웠던 ‘취미 부자’다. 이 가운데 바둑은 대학 시절 한일(韓日) 교류전에도 참가했다. 스승 조훈현과 제자 이창호의 숙명적 대결을 그린 영화 ‘승부’도 물론 보았다. 그는 “끝까지 이기고 있는지 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막판 뒷심으로 반집 차이로 승리를 거두는 이창호처럼 연주하고 싶다”고 했다. 스승을 따라잡고자 하는 제자의 무서운 야심이 천진난만한 미소 사이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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