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대] 물폭탄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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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난리, 즉 큰 수해가 발생하면, 비교 대상이 되는 과거가 있다.
2002년에 영동지역을 초토화한 태풍 '루사' 수해이다.
지난주 전국 곳곳을 쑥대밭으로 만든 '극한 호우' 뉴스에서도 태풍 루사는 마치 기준 임계점처럼 심심치 않게 소환됐다.
루사는 그해 8월 30∼31일, 영동권을 강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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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난리, 즉 큰 수해가 발생하면, 비교 대상이 되는 과거가 있다. 2002년에 영동지역을 초토화한 태풍 ‘루사’ 수해이다. 지난주 전국 곳곳을 쑥대밭으로 만든 ‘극한 호우’ 뉴스에서도 태풍 루사는 마치 기준 임계점처럼 심심치 않게 소환됐다.
루사는 그해 8월 30∼31일, 영동권을 강타했다. 관측 이래 모든 기록을 갈아치웠다. 당시 강릉에는 시간당 최고 100.5㎜, 하루 최고 870.5㎜의 물폭탄이 쏟아졌다. 이는 여전히 우리나라 역대 일 강수량 최곳값이다. 인명 피해도 막심했다. 영동지역을 중심으로 강원도내에서만 128명이 사망하고, 15명이 실종됐다. 신문은 역대 최악의 피해를 유발한 괴물이라고 했다. 괴물은 태풍 이름에서는 영구 제명됐지만, 사람들의 기억에는 영원히 악몽의 이름으로 남았다. 그때 취재기자로 현장을 목도했던 필자는 장현·동막저수지가 맥없이 붕괴되고, 시내 전역이 거대한 진흙 뻘밭으로 변했던 아비규환 참상이 지금도 생생하다.
강릉 주민들이 치를 떠는 수해는 또 있다. 일제강점기인 1936년에 발생한 ‘병자년 포락(浦落)’이다. 포락은 농경지가 물에 휩쓸려 절단나는 물난리를 일컫는 옛 용어이다. 부동산 용어로 수몰지를 ‘포락지’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뜻에 연유한다. 영동권을 덮친 병자년 포락 때는 강릉시내에서만 사망·실종자가 800∼1000명에 달했다는 기록도 있다. 당시 참상을 기록으로 남긴 강릉시 연곡면 삼산리 주민 강영선 씨(1961년 별세)는 ‘인명피해가 속출하고, 사람이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러 그 참상을 입으로 말하기 어려울 정도(口不可形言)’라고 썼다.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하면서 전국이 환호하던 때, 강원도 수해지 주민들은 가누기 힘든 상심과 슬픔을 감내해야 했으니, 더 무거운 수해의 아픔이 한 세기를 넘어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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