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91] 낮과 밤의 공존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2025. 7. 21.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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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 1953~1954년, 캔버스에 유채, 195.4 x 131.2 cm. / 베네치아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1898~1967)의 ‘빛의 제국’에는 낮과 밤이 공존한다. 거리는 창백한 가로등 하나를 빼고는 온통 어둠에 잠겼다. 굳게 닫힌 건물에서 노르스름한 불빛을 밝힌 창이 둘 보인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환한 낮이다.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둥실둥실 떠다닌다. 마그리트는 ‘빛의 제국’을 유화로만 17점 그렸을 정도로 이 주제에 매료됐다. 더 정확히 말해서 그는 밤과 낮이라는 두 상반된 상태를 모두 좋아했다. 둘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 없었다고 했다.

마그리트는 이처럼 익숙한 현실의 사물을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맥락에 배치해서 일상을 낯설거나 충격적으로 만들었다. 이 기법을 ‘데페이즈망’이라고 불렀다. 글자 그대로는 ‘고향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다. 비현실적 상황에 놓이면 마치 ‘고향을 떠난 듯’ 이상하고 불안한 정서를 느끼는 것과 같다. 하지만 고향을 떠났다고 모두가 항상 불안하기만 한 건 아니다. 낯선 풍경은 오히려 신선하고,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면 삶에 활기가 생기며, 멀리 떨어져 봐야 고향의 실체도 바로 보인다.

‘빛의 제국’은 보기에 신비롭고 아름다울 뿐 아니라 마음에 안식을 주기도 한다. 어둠 속에 갇힌 이들에게는 저 너머에 빛이 있으리라는 믿음을 준다. 눈부신 대낮이 버거운 이들에게는 안락한 그림자에 머물 용기를 준다. 마그리트는 이렇게 낮과 밤, 이성과 감성, 현실과 환상의 세계를 함께 보는 능력을 ‘시(詩)’라고 불렀다. 그의 시는 낮과 밤, 빛과 어둠이 처음부터 그렇게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둘 사이의 경계는 애초에 흐릿했고, 우리는 그 틈에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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