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인천경제사와 강화도

인천상공회의소(인천상의)가 올해로 창립 140주년을 맞았다. 인천상의는 1885년 결성된 인천객주회를 효시로 한다. 1884년 만들어진 한성상업회의소를 기원으로 하는 대한상공회의소에 이어 그야말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인천상의는 이를 기념해 그동안의 이력뿐만 아니라 최신 인천 경제계 동향까지 담아낸 ‘인천상공회의소사’를 펴냈다. 1883년의 제물포 개항은 수도 서울의 문을 여는 것이었으니 그때부터 시작된 인천경제사는 우리나라 전체 경제사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인천상공회의소사’는 ‘140년 인천경제사’라고 할 수 있는데, 인천상의의 경제사 정리는 1979년의 ‘인천상공회의소 90년사’가 시작이었다. 당시 집필진은 일본 도쿄, 요코하마, 오사카상공회의소 보관 자료까지 뒤져가며 개항 이후 인천의 초기 상공업계 상황을 기록했다. 그 뒤로도 10년마다 출간해 이번이 여섯 번째다. 이번 ‘인천상공회의소사’는 챗GPT를 활용하는 등 기존 인천상공회의소사 서술에 비해 눈에 띄는 부분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대목이 있다. 이제껏 인천경제사 서술에서 강화도 부분이 소외돼 왔다는 점이다. 이번 역시 강화산업단지 조성 과정이 살짝 다루어졌을 뿐이다.
강화도는 인천 지도 전체를 놓고 볼 때 그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크다. 인천에서의 면적이 넓은 만큼 경제계에서 차지하는 역할도 남달랐다. 남북 분단으로 한강의 물길이 막히기 전까지는 서울과 전국을 바닷길로 잇는 주상(舟商)들의 집합처였다. 이는 황석영의 대하소설 ‘장길산’에서도 여실히 그려진다. 강화도는 1960~197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 최대 섬유산업단지였다. 강화도 인삼 재배인들은 강원도에까지 나아가 인삼밭을 개척하기도 했다. 특히, 일제강점기 강화를 중심으로 한 해운회사 삼신기선은 노선 경쟁에서 일본 자본에 맞서 싸워 승리하는 기개를 떨치기도 했다.
그동안에 비해 한껏 격을 높인 이번 ‘인천상공회의소사’에서는, 10년 뒤에는 150년 인천상공업계의 모든 활동 기록을 담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런 것처럼 인천 경제의 틀을 인천항 주변으로 오그라트려서는 그 나이테와 고갱이를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강화군이 행정구역상 인천으로 편입된 지 벌써 30년이다. 그 사이, 강화는 인천이었던가.
/정진오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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