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가은읍 왕릉리 이름 속에 숨겨진 역사와 전설

경북도민일보 2025. 7. 21.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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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에 있는 왕릉리는 그 이름만으로도 범상치 않은 역사의 흔적을 품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왕릉(王陵)'이라는 지명은 왕의 무덤, 즉 왕릉이 존재했거나 존재한다고 믿어졌던 곳에 붙여졌다고 이름으로 알 수가 있다. 흥미로운 점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왕릉리'라는 행정 지명은 문경 가은읍 왕릉리가 유일하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특별한 이름을 가진 왕릉리에는 과연 어떤 역사적 사실과 전설이 깃들어 있을까? 이곳은 단순히 왕릉이라는 이름만 가진 것이 아니라, 후삼국 시대의 영웅 견훤왕의 탄생 설화와 조선시대 연산군 아들 인수의 태실(胎室)이라는 두 왕실 관련 역사를 품고 있어 더욱 신비롭고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왕릉리'라는 지명으로 보아 경주, 공주, 부여, 서울 등 수많은 역사 도시에 충분히 있을 법한 이름인데도 불구하고 그 이름은 유일하게 문경 가은읍밖에 없다. 대부분의 왕릉은 능(陵)이나 원(園), 묘(墓) 등의 이름으로 불리며, 그 주변 지역은 특정 왕릉의 이름을 따거나 인근 지형지물을 활용한 이름을 갖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경 가은읍의 '왕릉리'는 그 자체로 특별한 존재감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지명은 단순히 공간을 지칭하는 것을 넘어,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압축적으로 담고 있는 그릇과 같다. 왕릉리라는 이름이 어떻게 유래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역사적 기록은 부족하지만, 크게 두 가지 가능성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실제로 왕과 관련된 무덤이나 유적지가 있었을 가능성이다. 그리고 둘째는 왕의 기운이 서린 명당이거나, 왕이 될 인물이 태어났다는 전설과 관련된 지명일 가능성도 있다. 문경 가은읍 왕릉리의 경우, 후술할 견훤왕의 탄생 설화와 연산군 아들 인수의 태실이라는 두 가지 왕실 관련 이야기가 모두 존재한다는 점에서 후자의 가능성에 더욱 무게가 실린다.

왕릉리가 왕실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가장 명확한 역사적 사실은 바로 조선시대 연산군(燕山君)의 넷째 아들인 인수(仁壽) 대군의 태실이 이곳에 처음 조성되었다는 점이다. 태실(胎室)은 왕실에서 아기가 태어나면 그 태(胎, 태반과 탯줄) 을 봉안하여 좋은 땅에 묻음으로써 아기의 건강과 장수, 그리고 왕실의 번영을 기원했던 조선 왕실의 독특한 문화유산이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인수 대군은 1501년(연산군 7) 5월 14일에 태어났으며, 같은 해 9월 12일에 그의 태가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왕릉2리 새터 뒷산에 안치되었다. 이는 당시 왕실이 이곳을 길지(吉地), 즉 좋은 기운이 서린 명당으로 여겼음을 보여준다. 태실은 단순히 태를 묻는 것을 넘어, 태실비와 석물(石物) 등을 갖추어 조성되었으며, 태봉(胎封)이라 불리는 작은 봉우리를 이루기도 했다. 지금도 왕릉2리 새터 뒷산 이름을 태봉이라 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인 1930년, 조선 왕실의 많은 태실이 훼손되거나 한곳으로 모이는 과정에서 인수 대군의 태실 역시 원래의 왕릉리 자리에서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서삼릉(西三陵) 내 집단 태실지로 옮겨졌다. 비록 태실의 실제 유물은 현재 서삼릉에 안치되어 있고, 인수 대군의 태지석(胎誌石)과 태항아리 일습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지만, 왕릉리는 여전히 인수 대군 태실의 '초안지(初安地)', 즉 태가 처음 안치되었던 유서 깊은 장소로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심현용 박사와 같은 태실 연구 권위자들의 조사와 연구를 통해 이러한 사실이 명확히 밝혀지면서, 왕릉리는 조선 왕실의 숨겨진 역사를 간직한 곳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왕릉리가 품고 있는 또 다른 왕실 관련 이야기는 바로 후삼국 시대의 영웅, 후백제 견훤(甄萱)왕의 탄생 설화이다. 비록 견훤왕의 탄생 설화가 왕릉리 자체에 직접적으로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문경시 가은읍 일대가 견훤왕의 출생지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왕릉리는 가은읍의 한 부분으로서 이 역사적 배경을 공유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 주요 문헌에 따르면 견훤은 상주 가은현(현 문경시 가은읍)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특히 가은읍 갈전2리(아차마을)에는 견훤왕의 탄생과 관련된 흥미로운 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이 설화에 따르면, 한 부잣집 처녀의 방에 밤마다 준수한 외모의 멋진 청년이 찾아와 동침하였고, 처녀가 임신하자 부모가 실을 꿰맨 바늘을 청년의 옷에 몰래 꽂아두었다. 다음 날 실을 따라가 보니 청년은 커다란 지렁이로 변해 금하굴(金霞窟)이라는 굴속에 있었다고 한다. 이 지렁이가 바로 견훤왕의 아버지 아자개였으며, 처녀가 낳은 아이가 견훤왕이라는 이야기다. 이 외에도 가은읍과 인근에는 견훤왕이 소년 시절 서당에서 공부했다는 가절마을, 용마(龍馬)를 얻었다는 '말바위', 견훤이 살았던 '궁터' 등 견훤왕과 관련된 다양한 유적지와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문경시는 견훤왕의 출생지로서 이러한 역사적, 설화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있으며, 견훤 유적지 성역화 사업 등을 통해 이를 보존하고 알리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비록 견훤왕의 탄생 설화가 가은읍 갈전리에 집중되어 있지만, 가은읍 전체가 견훤왕의 역사적 배경이 되는 공간이며, 왕릉리 역시 이러한 후삼국 시대의 중요한 역사적 흐름 속에 함께 자리하고 있다. 이는 왕릉리라는 지명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왕실 관련 이야기와 깊은 연관이 있음을 시사한다.

문경 가은읍 왕릉리는 '왕릉'이라는 특별하고 거의 유일한 지명 속에 후삼국 시대의 견훤왕 탄생 설화와 조선시대 연산군 아들 인수 대군의 태실이라는 두 겹의 왕실 관련 역사를 품고 있는 매우 흥미로운 곳이다. 비록 현재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농촌 마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이름과 숨겨진 이야기들은 이곳이 과거 왕실의 중요한 공간이었음을, 그리고 왕의 기운이 서려 있다고 믿어졌던 특별한 장소였음을 끊임없이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왕릉리는 단순히 과거의 유적지가 아니라, 전설과 역사가 어우러져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은 이름 속에 담긴 천년의 시간을 상상하며, 후삼국 시대의 혼란 속에서 새로운 나라를 꿈꿨던 견훤왕의 기상과 조선 왕실의 태실 문화가 지녔던 염원, 그리고 그 모든 역사의 흔적을 간직한 왕릉리의 특별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문경 가은읍 왕릉리는 향후 학술 조사도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잘 연구되어 우리 역사의 숨겨진 보물 같은 장소로, 앞으로도 그 가치가 더욱 빛이 발하게 되기를 바란다.

엄원식 문경시 가은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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