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정인영 사진가 2025. 7. 21.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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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소꿉장난하듯 가정을 꾸려 살아온지 사십여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그 세월동안 기쁘고 즐거운 일도 있었겠지만, 힘들고 괴로웠던 때가 참 많았다.   

가진 것 하나 변변치 못해 신혼의 단꿈은 애초부터 꿀 처지도 못했을 뿐더러 긴긴 세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앞이 캄캄하기만 했던 그 시절이 아득하기만 할 뿐이다.

오후의 가을빛이 아직은 따스한 기운을 머금고 있을 십일월초에 아내를 처음 만났다.   

그후 오후 서너시에서 밤 늦게까지 길을 걷고 또 걸으면서 사랑을 키워간지 육개월여가 지난 초여름에 결혼식을 올리고, 부모님이 사시는 집이웃에 살림을 차렸다.   
단칸방이었지만 그런대로 젊은 남녀의 사랑은 익어갔고, 큰 불편함을 모르면서 나름대로의 행복한 날들을 이어가, 딸과 아들이 태어나자 그 기쁨이 한층 더 했다.

없는 살림이어도 늘 웃는 얼굴의 아내는 얼마 안되는 생활비에도 아랑곳없이 단란한 가정을 더욱 재미있는 집으로 만들어가면서 남편은 물론 아들 딸의 얼굴에 그늘이 지지 않게 힘써 주었다.

살면서 가족들의 푼돈을 함께 모아 식탁과 의자등 소소한 살림살이를 마련하여 생활의 만족을 느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정의 어려움은 어느날 소리없이 날아들었다.   

나이 마흔한살에 실직하여 허망한 남편이 되면서 하루 아침에 먹구름에 휩싸인 가정이 한심스러워졌으니....

급기야 아내가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길고 긴 날들을 힘들게 살아가야 했으니 참으로 아픈 세월의 소용돌이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아내는 이 모두의 불행이 가장인 남편에게 있음에도 닥친 현실에 원망 한마디 없었다.

대책없는 남편에,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아들 딸을 보노라면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   

무어라도 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하고, 집에서 빈둥거리다가 취미로 하고 있던 사진에 관심을 두면서 새로운 직업을 갖고자 했다.   

몇푼 안되는 퇴직금도 바닥을 드러내고, 이젠 모두 아내만 바라다볼 처지에서 별 뾰족한 수도 없었다.

사진찍는 직업에 들어섰지만 돈버는 기술로는 한참 모자라는 것을 알게 되어 광고, 모델등 사진찍는 기술을 배우느라 자리를 비우는가 하면, 작품을 찍는답시고 허구헌날 돌아다니느라 이것도 저것도 되는 일없이 늘 쪼들리는 신세일 때 아내가 가정을 이끌어가면서 살았다.

나이 오십대 중반이 되도록 남편은 그날이 그날인 듯 했지만 아내는 온 힘을 다해 일하면서 아들과 딸을 대학까지 마치게 하는 열정을 기울였다.

대학을 졸업한 딸이 결혼하던 해에 아빠로서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고, 엄마가 모두를 갖춰주어 그런대로 체면을 세워 주었다.   

이때도 아내는 별 이야기없이, 딸이 성실해 보이는 사람과의 혼사가 잘 이루어지는 것에 모든 보람을 느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고통스러웠던 날들이 서서히 사그라져가고 , 작으나마 가정의 평안을 이루어 살아가면서 아내도 이십년의 직장생활을 끝내고 가정으로 돌아왔다.

이제 딸이 남편과 아들 세식구가 되어 잘 살고 있으며, 아들도 회사에서 맡은바 일을 잘 해내는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근심걱정없는 부부로 세월을 즐기고 있으면서 아내에게 숨겨온 잘못이 있었다.   

십칠년동안 쌓여온 카드빛이 일천만원이 되었으니 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에게도 말못하고 끙끙 앓아온 것이다. 더이상 빛이 늘어나면 안되겠다 싶지만 도무지 갚을 길이 없어 결국 아내에게 모두 털어 놓았다.

당연히 혼이 날 일이었다.   

아내는 모두 듣고 난 다음 말없이 그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아내에게 진 죄가 많다. 그 모두를 다 말할 수 없을 정도여서 남은 세월 아내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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