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산청의 눈물
지난 16일부터 쏟아진 극한 호우로 전국이 쑥대밭이 됐다. 산 높고 물 맑은 지리산 자락에 자리 잡은 경남 산청군의 산사태 피해가 유독 컸다.
산청은 지난봄 대형 산불이 발생했던 곳이다. 나무가 불에 타 죽으면서 뿌리가 흙을 잡아두지 못해 지반이 약해졌다. 산불 피해 지역은 일반 산림 지역보다 산사태 발생 가능성이 최대 200배 높다고 한다. 그런 땅에 5일 새 793.5㎜의 비가 퍼부었다. 지난해 산청에 내린 전체 강수량 1513㎜의 절반을 넘는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렇게 애타게 기다릴 땐 비 한 방울 없었다. 산청은 지난 3월 극심한 봄 가뭄과 돌풍에 장장 213시간 동안 산불이 이어져 진화대원·인솔 공무원 등 4명이 숨지고 수백억원의 재산 피해를 보았다.
인재도 겹쳤다. 웬일인지 산청군엔 산사태 위기경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인력 부족으로 미리 모든 산림을 점검하지도 못했다. 사망자가 발생한 곳은 산사태 취약지역도, 안전점검 대상도 아니었다. 그러다 19일 오전 9시~낮 12시 산청지역에 시간당 60㎜ 이상의 물폭탄이 떨어지면서 곳곳에서 산사태가 속출했고, 말 그대로 집이 흘러내렸다. 산청군은 당시 전 군민(3만3000명)에 긴급 대피령까지 발령했지만 21일 현재 10명이 죽고 4명이 실종됐다.
200년에 한 번 있을 강도의 이번 폭우는 북태평양 고기압의 뜨거운 공기와 북쪽의 찬 공기가 한반도 상공에서 부딪치면서 발생했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강해진 것은 한반도 남쪽 바다가 뜨거워진 탓이다. 통상 이맘때 북쪽에 있어야 할 찬 공기 덩어리가 일부 남하해 이달 초부터 때 이르게 한반도를 강타한 폭염과 만났고, 결국 지구 온난화와 해수면 온도 상승이 ‘괴물 폭우’를 일으킨 셈이다.
폭우가 그치자 다시 찜통 더위다. 1970년대와 2020년대를 비교해보면 폭염 일수는 2배 이상, 열대야 일수는 3배 이상 늘었다. 이제 기존 기상 통계는 의미가 없다. 사계절이 뚜렷하면서도 온화한 한반도의 기상 공식은 깨졌다. 여름은 더 길어졌고, 폭염과 폭우로 날씨는 난폭해졌다. 산청은 죄가 없다. 이번엔 산청이었지만 다음엔 또 어느 곳이 눈물을 흘릴지 모른다. 기후 예측과 재난 대응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오창민 논설위원 risk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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