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즈루 앞바다에 잠긴 진실, 이제는 인양해야 [왜냐면]

한겨레 2025. 7. 21.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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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마이즈루의 한여름은 무덥고 적막했다.

1901년에 일본 해군진수부가 설치되었던 마이즈루는 바다의 교토라고 불린다.

마이즈루시와 교토부가 세운 조촐한 위령비 외에, 일본 정부 차원의 사과나 책임 표명은 없었다.

일본 외무성, 방위성, 마이즈루 해상자위대, 한국 외교부 등이 함께 공동조사위원회를 구성해, 기존 해군 문서와 사고 관련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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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 등을 태우고 교토 앞바다에서 폭침한 일본 해군 수송선 우키시마호. 한겨레 자료사진

박명섭 | 성균관대 경영대학 명예교수

일본 마이즈루의 한여름은 무덥고 적막했다. 1901년에 일본 해군진수부가 설치되었던 마이즈루는 바다의 교토라고 불린다. 숙소가 있는 니시마이즈루에서 기차를 타고 히가시마이즈루로 이동했다. 80년 전 역사의 현장에 가까이 가고 싶었다.

1945년 8월22일,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조선인 피징용자와 그 가족 수천명이 아오모리현 오미나토항에서 부산항으로 향하는 일본 해군수송선 우키시마호(浮島丸·우키시마마루)에 올랐다. 그러나 이틀 뒤, 이 배는 갑작스러운 폭발로 마이즈루만에서 침몰했다. 한국인이 승선한 일본 국적 선박이 일본 앞바다에서 폭발해 침몰한 것이다. 500~1000명이 희생됐고, 사건의 진실도 함께 바다에 잠겼다.

당시 일본 정부는 “기뢰에 의한 사고”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후 발견된 일본 해군 문서에는, 우키시마호에 폭약이 실려 있어 출항 전 바다에 투하하거나 육상에서 처리하라는 명령이 있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이 문서가 사실이라면 우키시마호 폭침은 단순한 기뢰 사고가 아닌 인재일 가능성을 보여준다.

최근 일본 정부는 모든 승선자 명부를 우리에게 제공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진상규명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행정안전부 산하 ‘강제동원 피해조사위원회’가 조사를 시도하고 있으나, 일본 정부는 관련 군 문서를 충분히 공개하지 않고 있다. 마이즈루시와 교토부가 세운 조촐한 위령비 외에, 일본 정부 차원의 사과나 책임 표명은 없었다.

이 사건은 한일 양국이 보다 진지하고 성의 있게 함께 다루어 나가야 할 사안이다. 일본 외무성, 방위성, 마이즈루 해상자위대, 한국 외교부 등이 함께 공동조사위원회를 구성해, 기존 해군 문서와 사고 관련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유엔 인권기구 등 국제기구의 협조도 고려해야 한다.

우키시마호는 단지 한척의 배가 아니다. 그 배에 오른 이들은 살아 돌아갈 수 있으리란 희망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그 희망은 왜 산산이 부서졌는가? 그 질문에 지금까지 아무도 제대로 답하지 않았다. 배의 침몰 원인은 폭발이다. 그러면 폭발의 원인은 무엇인가.

진실은 시간이 지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외면한 시간이 길수록 책임의 무게는 더 커질 뿐이다. 마이즈루 앞바다에 잠긴 진실, 이제는 인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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