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세력 폭격' 강의 30분 전, 중학교 인권 교육 취소···강사는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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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학부모와 종교단체의 비상식적인 방해로, 전교생 동의를 얻어 몇 달 전부터 예정됐던 중학교 인권 특강이 수업 30분을 남기고 취소되는 일이 벌어졌다.
혐오세력이 각 학교의 인권·성교육 일정을 공유하며, 조직적으로 항의 전화를 걸어 학교 행정을 마비시키는 사례들이 발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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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채윤 활동가, 중학교 성평등 특강 초빙
전교생 동의 얻고, 교사들도 대부분 찬성
"걱정하는 학부모 다 참관하시라" 했지만
'민원 폭탄' 던지는 이들 탓 당일 강의 취소
"혐오세력, 대화방서 항의문구까지 공유"

일부 학부모와 종교단체의 비상식적인 방해로, 전교생 동의를 얻어 몇 달 전부터 예정됐던 중학교 인권 특강이 수업 30분을 남기고 취소되는 일이 벌어졌다. 혐오세력이 각 학교의 인권·성교육 일정을 공유하며, 조직적으로 항의 전화를 걸어 학교 행정을 마비시키는 사례들이 발생하고 있다.
한채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는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 학교에서 진행하려던 특강이 이날 취소된 일을 소개했다. 한 활동가에 따르면 그는 몇 달 전 충청권의 한 중학교로부터 '작가와의 만남'이라는 특강을 해달라고 요청받았다. 그는 2021년 인권 활동가와 연구자, 기자 등과 함께 낸 책 '잠깐, 이게 다 인권 문제라구요?'에서 젠더 분야 집필을 맡아 역차별과 성소수자 혐오, 성적자기결정권 등에 대해 다뤘다.

한 활동가는 "특강을 처음 기획한 선생님은 학생들이 여전히 남자만 군대에 가는 게 역차별이라거나 성차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있기에 이를 다루는 자리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며 "중학생들을 직접 만날 수 있다니 설레는 기회라 '가겠다'고 했다"고 적었다. 다만, 몇 해 전에도 다른 중학교에서 비슷한 강의를 부탁받았으나 목사 한 명이 조직적으로 반대해 무산된 적이 있어 걱정은 됐다고 한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학교 측은 전체 교사를 대상으로 특강 진행 여부를 묻는 투표를 했는데 한 명을 빼고 모두 찬성했고, 학생들도 반대 의견이 없었지만 일부 학부모 등이 특강 내용을 두고 우려했다고 한다. 이에 한 활동가는 "걱정하시는 학부모들은 특강에 다 참관하시라"고 했다. 학교 측도 반대 교사 한 명을 설득하는 등 특강 진행을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한 활동가는 강의 당일인 21일 학교에 도착해 "특강이 취소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몇몇 학부모가 교장실로 몰려왔고, 교장의 휴대전화로는 자신을 목사라고 밝히는 이들이 쉴 새 없이 전화했다고 한다. "강사가 문제가 있다"며 강의를 하지 말라는 주장이었다. 언쟁 끝에 담당 교사를 고소하겠다며 협박한 사람도 있었다.
학교장과 교사들은 강의를 진행하기 위해 애썼으나 끝내 취소됐다는 게 한 활동가의 설명이다. 그는 "강의는 취소됐지만 이를 기획하고 혐오 민원을 겪으면서도 30분 전까지 취소 결정을 미룬 학교 측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 활동가는 본보와 통화에서 "(학내 성평등 강의를 반대한다며 학교에 전화를 거는 사람 중) 고령의 노인도 있는데 '우리 아이가 그 학교에 다닌다'고 주장한다. 뻔한 거짓말"이라며 "혐오세력이 모인 모바일 단체대화방에 잠입해서 지켜본 적이 있는데 항의 전화를 할 때 말해야 할 문장까지 공유했다"고 전했다.
학교 측 "갈등 조장할까 봐 소수 민원 받아주기도"
성평등 교육을 하는 활동가나 강사가 현장에서 혐오를 마주하는 일은 낯설지 않다. 2023년에는 서울시교육청이 김지학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이사장(당시 한국다양성연구소장)을 강사로 초빙해 학부모 대상 성교육을 하려다 "동성애를 옹호하는 인물"이라는 국민신문고 민원을 근거로 강의를 취소해 논란이 됐다. 반대로 일부 학교에서는 학부모회장이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보수 기독교 측 강사를 초빙해 강의를 진행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도권에서 근무하는 한 교장 출신 장학관은 "교회 등이 성교육 강사를 문제 삼으며 민원을 넣었는데 받아주지 않으면 항의방문을 하는 등 갈등을 조장할 가능성이 있다"며 "학교로서는 이를 피하기 위해 소수의 민원이라도 그냥 받아주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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