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욱의 따따부따] 무엇이 우선적 가치인가

개구리 꽁무니에 바람을 불어넣고 놀이로 삼던 시절이 있었다. 하물며 모판을 망치며까지 잡은 개구리 뒷다리를 구워 먹기도 했다. 부모님 몰래 싸 온 왕소금 한 줌은 그 맛을 한층 더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의 치기 어린 장난으로만 생각할 수 없는 시절이었다. 먹고사는 문제였고 일상의 한 부분을 차지했다. 지역적 차이는 다소 있을지라도 흔한 모습이었으리라 짐작한다. 50년도 지나지 않은 우리의 현실이었다.
4가구 가운데 1가구 이상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반려인 1500만의 시대다. 1인 가구의 증가와 가족의 해체를 겪으면서 반려동물은 어느새 가족의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토리'와 엄마, 아빠가 함께하는 모습은 따뜻한 어느 가정의 미담으로 자리한다. 반려견^반려묘의 먹거리를 찾아 온라인을 떠도는 행동은 '당연한' 부모의 모습이 되었다. 사람의 역할을 대신하는 동물권의 신장은 사회적 이슈로까지 대두한다. 산책길에서 어린아이를 문 반려견의 문제는 '두 아기' 엄마의 싸움으로 번지는 아이러니함이 되었다.
시대의 변화와 삶의 환경이 변화면서 가치는 이렇게 극단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배고픔을 채우고 놀이의 대상이던 동물은 보호와 감정 교류의 대상이 되었다. 인간의 '사회적 동물'이라는 본성은 언어적 기능을 이해하지 못하는 동물을 인간화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러한 극단적 예로 프랑스 배우 브리지트 바르도를 들기도 한다. 야생보호 운동가인 그녀는 아들보다 동물을 더 사랑했다고 알려지기도 한다. 아들에게 자신을 괴롭히는 '종기'라고 표현해 수많은 비난과 아들 본인에게 고소를 당한 이야기는 이를 잘 드러내고 있다. 특히 2001년 "한국인은 개고기를 먹으니 야만스럽다"라는 말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분명 문화상대주의라는 관점을 도외시한 발언이었으며 시대와 사회적 환경에 매몰된 서구 중심적 사고였다.
인간이 가지는 가치는 개인의 심리적 특성과 사회적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무엇을 '우선적 가치로 둘 것이냐'라는 물음 앞에 현대사회의 병폐는 여실하게 노출된다. 개인주의의 극단적 성향은 개인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나'라는 존재의 중요성을 우선적 가치로 두게 된다. 주변인들의 의견이나 행동은 차순위의 배려 대상일 뿐 우선적 가치는 아니다. 사회 규범에 대한 인식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사회 규범을 자신의 안위와 행복을 보장하는 주변적 장치일 뿐 사회라는 공동체의 근본적 가치로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 동물의 정의적 개념인 '사회적 규범에 따라 자신의 태도를 조정하고 행동을 변화시키는 경향'을 상실하고 있다. 의사소통의 부재와 왜곡된 방식은 인간관계의 본질적 속성을 파괴하고 있다.
개인 간의 갈등이 확장될 때 그것은 사회문제로 확장된다. 소통을 통한 타협과 조정으로 갈등을 해소하고 발전적 요소로 나아가는 것이 올바른 사회적 상호작용임에도 이러한 과정은 무시되고 있다. 정치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는 우리 현실이기에 새롭지 않아 보인다. 백성의 안위와 행복을 최우선적 가치로 삼은 '민본 정치'가 우리 선조들의 정치적 이념이었다. 특히나 당시 사회적 약자를 위한 구휼제도는 '민본'의 구체적 실현이었다. 시대와 정치체제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현대 민주주의와 다름없는 '가치 실현'이라 할 수 있다.
먹고사는 문제의 간절함은 가족 같은 동물을 잡아먹어야 했다. 생존이라는 근본적 문제였기에 그것은 허용될 수 있었다. 더불어 사회적 환경에 기인한 불가피한 문화로서 항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의식주를 대표하는 물질 풍요의 시대에 우리는 또다시 '가치 갈등'에 마주하고 있다.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위화감 넘치는 부의 편중과 최고급 보행기 위에 '다른' 아기가 타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무엇이 우선적 가치인가'라는 의문에 빠지게 된다. '전 국민'에게 주어지는 '민생회복 지원금'의 의미를 곱씹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