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빌리 엘리어트' 배경 된 광부파업 강경진압 진상조사

임화섭 2025. 7. 2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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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노동당 정부가 보수당 마거릿 대처 정권 의 1984년 광부 파업 강경진압에 대해 진상조사를 벌이기로 했다고 로이터통신이 21일(현지시간) 전했다.

강력한 민영화 드라이브를 걸던 대처 정권의 탄광 폐쇄 방침에 맞서 싸우다가 노동자 측 패배로 끝난 1984∼1985년 영국 광부 파업을 상징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당시 조치에 반발해 영국의 광부 18만7천명 중 4분의 3이 넘는 수가 파업에 참여했으나, 결국 탄광 폐쇄를 막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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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처 정권 시절 광부·경찰 대규모 충돌…41년만에 조사 결정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 (런던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1986년 4월 15일 영국 하원에서 열릴 대정부질의에 출석하기 위해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가 다우닝가 10 총리관저에서 출발하는 모습. (REUTERS/Roy Letkey) 2025.7.21.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영국 노동당 정부가 보수당 마거릿 대처 정권 의 1984년 광부 파업 강경진압에 대해 진상조사를 벌이기로 했다고 로이터통신이 21일(현지시간) 전했다.

'오그리브 전투'(Battle of Orgreave)로 불리는 이 사건은 영국 역사상 가장 격렬한 노사분규 충돌 중 하나로 꼽힌다.

강력한 민영화 드라이브를 걸던 대처 정권의 탄광 폐쇄 방침에 맞서 싸우다가 노동자 측 패배로 끝난 1984∼1985년 영국 광부 파업을 상징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1984년 6월 18일 영국 곳곳에서 모여든 파업 참여 광산노동자 5천여명이 영국 곳곳에서 차출돼 투입된 비슷한 수의 진압경찰관들과 잉글랜드 북부 사우스요크셔주 로더햄 근방의 오그리브 마을 소재 코크스 공장에서 거세게 충돌했다.

진압 과정에서 120여명이 부상했고 파업 참여 광산노동자 95명이 폭동 혐의로 구속돼 기소됐다.

이들의 형사재판은 나중에 수사당국이 내세운 현장 경찰관 진술 등이 조작됐다는 이유 등으로 증거능력이 불인정되면서 공소취소로 종결됐다.

시위 진압 작전 당시 현장 경찰이 대규모로 동원돼 잔혹하고 폭력적인 수법을 썼으며 이는 우발적인 일이 아니라 상부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의혹이 그간 제기돼 왔다.

로이터에 따르면 당시 TV 카메라로 촬영된 화면에는 기마 경찰관들이 돌격하는 모습과 한 광부의 머리를 곤봉으로 계속 내려치는 모습 등이 기록돼 있다.

이베트 쿠퍼 내무장관은 영국 성공회 셰필드 주교인 피트 윌콕스 상원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조사위원회가 이 사건 자체와 그 후 상황에 대해 진상조사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베트 장관은 "40년이 넘도록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면서 당시 폭력 사태와 진압, 그리고 광부들에 대한 사법처리 추진 등의 경위를 위원회가 조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1984∼1985년 영국 광부 파업은 1984년 3월 영국 전역의 탄광을 관리하던 공기업이 수익성이 없는 20개 탄광을 폐쇄하면서 2만여명의 일자리가 사라지게 된 것을 계기로 시작됐다

당시 조치에 반발해 영국의 광부 18만7천명 중 4분의 3이 넘는 수가 파업에 참여했으나, 결국 탄광 폐쇄를 막지는 못했다.

이 파업은 2000년 개봉된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시대적 배경이 되기도 했다.

solatid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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