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특사단원’ 노재헌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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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각료 회의가 서울에서 열렸다.
APEC은 정치와 무관한 경제 협력 기구인 만큼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은 물론 중화민국(대만), 그리고 당시 영국령이던 홍콩도 회원으로 참여했다.
서울 회의를 앞두고 중국은 우리 외교부에 "대만과 홍콩은 중국의 일부"라고 강조했다.
그 시절 한국은 중국과는 국교가 없고 대만과 수교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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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각료 회의가 서울에서 열렸다. APEC은 정치와 무관한 경제 협력 기구인 만큼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은 물론 중화민국(대만), 그리고 당시 영국령이던 홍콩도 회원으로 참여했다. 서울 회의를 앞두고 중국은 우리 외교부에 “대만과 홍콩은 중국의 일부”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만 대표단이 ‘중화민국’이란 국호를 내걸고 참석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단 ‘중화대만’(Chinese Taipei)이란 명칭은 양해가 가능하다”고 요청했다. 그 시절 한국은 중국과는 국교가 없고 대만과 수교한 상태였다. 대만은 강하게 반발했으나 약자의 입장에서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듬해인 1992년 8월 마침내 한·중 수교가 이뤄졌다. 자연히 대만과는 단교(斷交)할 수밖에 없었다. 옛 친구를 잃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나 한국인들은 크게 흥분했다. 당시 중국 인구는 11억명을 훌쩍 넘긴 상태였다. 이런 거대한 시장이 한국 기업들 앞에 활짝 열렸으니 우리 수출 증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감이 고조됐다. 그간 북한하고만 가까웠던 중국이 한국과 친구가 되며 남북관계 개선은 물론 장차 통일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 줄을 이었다. 수교 후 1개월 만인 1992년 9월 노태우 대통령은 우리 국가원수로는 처음 중국을 방문해 3박4일간 중국 측 인사들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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