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그에겐 ‘동맹’ 아닌 ‘운명’이었다”.. 83살 타계한 퓰너, 한미동맹의 그림자 전략가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미국 보수 진영의 설계자이자 '한미동맹의 숨은 주춧돌'로 불렸던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재단(The Heritage Foundation) 창립자가 18일(현지시간) 향년 83살 나이로 타계했습니다.
40여 년간 미국의 외교 노선과 전략 구상에 막후로 관여한 그는, 한국에겐 단지 우방의 전략가가 아니라 결정적 순간마다 방향을 제시한 '안내자'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0회 방한한 美 보수 설계자 “한국의 친구가 떠났다”

미국 보수 진영의 설계자이자 ‘한미동맹의 숨은 주춧돌’로 불렸던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재단(The Heritage Foundation) 창립자가 18일(현지시간) 향년 83살 나이로 타계했습니다.
40여 년간 미국의 외교 노선과 전략 구상에 막후로 관여한 그는, 한국에겐 단지 우방의 전략가가 아니라 결정적 순간마다 방향을 제시한 ‘안내자’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 헤리티지 재단 창립자, 美 보수의 브레인
에드윈 퓰너는 1941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나 펜실베이니아대 MBA, 영국 에든버러대 정치학 박사 학위를 거쳐, 1973년 보수 싱크탱크 헤리티지 재단을 설립했습니다.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의 국정 지침서로 불리는 ‘Mandate for Leadership’을 집필해 백악관 정책에 깊이 관여했고, 도널드 트럼프 1기 인수위에도 참여했습니다.
미국 보수 진영의 외교·안보 전략과 국정 방향 설정에 있어 사실상 ‘청사진’을 그린 설계자였습니다.
■ 한국만 200회 방한.. “한국은 성공한 동맹국”
고인은 미국 내 손꼽히는 친한파였습니다. 1980년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망명 중일 당시 워싱턴에서 만나 형제처럼 지냈고, 군사정권의 사형 위협에 놓인 김 전 대통령을 위해 백악관에 직접 구명 요청을 넣기도 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그런 그의 헌신을 인정해 2002년 수교훈장 광화장을 수여했습니다.
헤리티지 재단의 마크가 새겨진 넥타이를 지인에게 선물하며 “‘자유의 종’은 한국에도 울려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한국을 미국 외교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았습니다.

특히 정권 교체기마다 한미 갈등의 조짐이 보이면 직접 나서 조율에 나섰고, “미국은 한국을 단지 동맹이 아니라 최우방국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혀왔습니다.
■ IMF 외환위기 때 ‘물밑 설득’.. “그는 단비였다”
21일 장성민 전 국민의힘 의원(전 대통령실 미래전략기획관)은 고인과의 첫 만남을 1998년 김대중 당선자 자택에서 이뤄졌던 일화로 회고했습니다.
당시 한국은 IMF 외환위기로 국가 부도 직전이었고, 미국 내 정치·관료 집단을 상대로 지원을 설득하던 시기였습니다.
장 전 의원은 “퓰너 회장이 미국 정가에 한국의 상황을 알리는 데 앞장섰고, 백악관과 재무부의 인식을 바꾸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면서, 이를 두고 “폭우에 휩쓸리는 논바닥을 적셔주는 단비 같았다”고 표현했습니다.
■ ‘정책가·외교가·친구’.. 누구도 대체할 수 없었던 사람
고인은 삼성 이재용 회장, 한화 김승연 회장, 고 정주영 회장 등과도 폭넓은 교분을 나눴습니다.
정몽준 아산정책연구원 명예이사장과 개인적 관계로도 깊은 인연을 유지했고, 고 노무현·전두환 전 대통령을 비롯해 역대 대통령들과도 재임 중 직접 만나 한미관계 현안을 논의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그의 타계를 전하며 “보수주의라는 도시의 판테온 신전 같은 존재”라 평가했습니다.
헤리티지의 현 이사장 케빈 로버츠는 “그는 리더를 넘은 비전가이자 건설자였다”고 애도했습니다.
■ 보수의 철학 넘어, 동맹의 의미를 설계한 이
에드윈 퓰너는 단지 미국 보수주의를 이끈 정책가가 아니었습니다. 한미동맹의 실루엣을 수십 년간 그려온 실무자이자, 어떤 외교관보다 깊이 한국을 이해한 전략가였습니다.
그가 남긴 유산은 정책 문서보다 깊고, 정권의 수명보다 길었습니다.
이제 한국과 미국 사이를 잇던 조율자의 빈자리를 누가 메울 수 있을지는 여전히 안개 속입니다.
그의 부재를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이어지는 이유입니다.
장성민 전 의원은 “지금과 같이 한미관계에 이상 기류가 형성될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 마치 피아노 건반 조율사처럼 양국의 불협화음을 맞춰줬던 그의 역할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그를 대신할 새로운 친구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걱정된다”고 말했습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Copyright © JIB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