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임금 과도하게 깎은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는 무효”

박태우 기자 2025. 7. 2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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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한 업무 감경조치가 마련되지 않은 임금피크제는 부당”
게티이미지뱅크

정년 연장과 함께 임금을 과도하게 삭감하고, 적정한 업무 감경조치가 마련되지 않은 임금피크제는 부당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정년 60살 법제화’ 시행을 앞두고 도입된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 관련 소송에서 대부분 정당하다는 판결이 나온 가운데, 임금 삭감 수준과 대상 조치(업무변경·근무시간 변경 등 보상 조치)의 적정성을 엄밀히 따져 임금피크제를 무효로 본 판결이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민사1부(재판장 박대산)는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다 2024~2025년 정년퇴직한 아이엠라이프생명보험(옛 DGB생명보험) 노동자 3명이 회사를 상대로 임금피크제로 인해 덜 받은 임금을 청구한 소송에서 지난 15일 원고 승소 판결했다.

회사는 2016년 정년을 60살로 정한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 시행을 앞두고, 58살이던 정년을 60살로 2년 연장하면서 56살부터 60살까지 임금을 감액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이에 노동자들은 56살 때 원래 받던 고정급여의 75%를 받는 것을 시작으로 해마다 10%씩 감액해 60살에는 35%만 받게 됐다. 아울러 회사는 임금피크제 적용시점부터 이들에게 기존 업무와 무관한 민원업무를 맡겼다.

2022년 대법원이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가 ‘합리적 이유없는 연령차별’로 볼 수 있는 판단 기준을 제시한 이후, 법정 정년 연장에 즈음해 이뤄진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는 유효하다는 판결이 대부분이었다. 고령자고용법이 정년연장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 의무를 노·사 모두에게 부여했을 뿐만 아니라, 임금이 일정부분 삭감되더라도 더 오래 일할 수 있게 됐고, 업무 경감 등의 대상조치가 이뤄졌다면 문제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번 재판부가 아이엠라이프생명보험의 임금피크제가 무효라고 본 건 우선 임금을 과도하게 삭감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 노동자들이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는 56살부터 60살까지 5년 동안 받을 수 있는 임금은 기존 한 해 연봉의 275%에 그친다. 정년 연장 전 56살부터 58살 퇴직 때까지 3년 동안 받을 수 있는 임금총액 300%에도 못미쳤다. 연장된 정년만큼 더 일하게 됐지만 임금총액은 오히려 준 셈이다.

재판부는 임금피크제가 적용된 노동자에게 민원업무를 맡긴 행위도 ‘임금 삭감에 따른 대상조치’라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임금을 줄이는 대신 업무 부담을 줄여주는 보상 조처가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재판부는 “보험회사의 민원업무는 상당한 스트레스와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고, 노동자들은 업무 경력·근무적성과 무관하게 민원업무를 배정받아 업무를 습득하고 처리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임금피크제 시행으로 감액되는 임금에 비례해 업무를 감경하거나 업무 내용을 변경하는 등 적절한 대상조치를 취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정년 연장이 노동자에게 이익이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연장된 근무기간 동안 추가적으로 급여를 수령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정년연장과 함께 시행되는 임금피크제의 임금조정률이 과도하고 대상조치도 충분하게 도입되지 않았다면, 연장된 근무기간 중 실질적으로 무임금으로 일하는 것과 다름 없고, 이러한 정년연장은 노동자의 노동력만 착취하는 것일 뿐 노동자에게 어떠한 이익을 가져다 준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시했다.

재판부의 이러한 판단은 새 정부가 추진하는 정년연장의 핵심 쟁점인 ‘임금체계 개편’과 ‘대상조치 도입’ 방안 논의에도 시사점을 준다. 노동자들을 대리한 권두섭 변호사(법무법인 여는)는 21일 한겨레에 “회사가 임금피크제 적용 노동자에게 민원업무를 맡긴 것은 사실상 퇴직을 유도할 목적이었는데, 재판부가 이를 임금삭감에 따른 대상조치로 받아들이지 않은 점이 의미가 있다”며 “정년연장에 따라 임금체계를 개편하더라도 임금을 지나치게 감액해선 안되고, 감액하더라도 줄어든 업무량에 비례하는 수준에 그쳐야 한다”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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