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던 황촌에 ‘한옥’ 숨결… 年1200만명 찾는 ‘경주 핫플’로[지역을 살리는 사람들]

박천학 기자 2025. 7. 21.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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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을 살리는 사람들 - (4) ‘황리단길’ 설계 최무현 교수
문화유산보호구역 묶인 탓
개발 제한… 점차 슬럼화돼
신경주大 교수로 부임하며
“천년고도 되살려야” 책임감
특별법 제정·보조금 지원덕
‘한옥마을 부활’ 추진에 속도
2018년 점포 속속 열고 홍보
SNS서 폭발적 반응 일으켜
불국사보다 관광객 더 몰려
‘천년고도’ 경북 경주에 즐비한 세계유산보다 많은 관광객이 찾는 황리단길을 설계한 최무현 신경주대 특임교수가 이 길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동훈 기자

경주=박천학 기자

“대부분 가옥이 불법 개조되거나 증축돼 한옥인지 양옥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의 마을이었지요. 경관이 갈수록 불량해지면서 결국 경주시 내에서 가장 낙후해 소멸돼 가고 있었어요. 속살을 파헤쳐 치부를 도려내니 국내외 관광객으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됐습니다.”

경북 경주시 황남(皇南)동. 주민들 사이에서 ‘황촌’으로 불리는 이곳은 말 그대로 ‘임금이 살았던 마을’이다. 하지만 신라시대 고분군인 대릉원을 끼고 있어 수십 년 동안 개발되지 못했다. 문화유산보호구역으로 묶인 탓이다. 집은 낡아지고 허물어져도 수리조차 하지 못했다. 이같이 퇴락하자 집들은 점집, 철학관, 주점, 철물점 등으로 이용됐다. 이러던 지역이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한옥마을로 부활했다.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리는 ‘황리단길’이다. 연간 1200만 명의 인파가 몰리는 ‘핫 플레이스’로 명성을 떨치며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황리단길 이름은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에서 따왔다.

이렇게 변신하려면 당연히 누군가 마스터플랜을 짜고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내야 한다. 최무현(66) 신경주대 특임교수 겸 경주고도육성포럼 회장. 그가 바로 황리단길 설계자다. 최 교수는 지역 회생에 대한 열정으로 한옥에 독특한 식당, 카페, 숙박 등을 입혀 전통이 살아 숨 쉬게 탈바꿈시켰다. 황리단길이 유명세를 치르면서 경주에 즐비한 세계유산보다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 됐다. 최근 황리단길에서 만난 최 교수는 자부심이 넘쳐났다.

◇행위제한에 가장 낙후한 황리단길= 최 교수가 황리단길에 관심을 둔 것은 1998년 신경주대(옛 경주대) 건축학과 교수로 부임하던 시절이다. 그는 대구에서 태어나 고교 시절을 보내고 고려대에서 건축학 학사와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원 시절 현대건축을 전공했다. 그는 신경주대에서 교수로 첫발을 내딛자마자 전통건축에 눈을 돌렸다. ‘천년 고도 경주’라는 이미지를 보면 어쩌면 자연스러웠다. 그는 경주의 도시·건축 분야에 관심을 갖고 천년 고도를 살리는 데 앞장섰다. 우선 과제는 황리단길로 불리는 황남동 일원의 한옥마을 활성화였다. 그는 “교육·연구·봉사가 교수의 역할이며 이 가운데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는 교수로서의 책임 중 하나”라며 황리단길 설계에 뛰어들었다.

황리단길은 경주 도심 대릉원과 동부사적지를 포함하며 내남네거리에서 옛 황남초교 네거리까지 남북으로 이어지는 약 720m의 ‘포석로’ 가로구역이다. 최 교수는 “이 일대가 낙후된 것은 오래전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문화재보호법’ 등 단골로 쏟아진 각종 행위제한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했다. 문화재 위주의 정책 때문에 시민들이 핍박받고 도시발전이 저해되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후 2004년 ‘고도 보존 및 육성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지역과 주민들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그는 이 시기부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골목 살리기에 박차를 가했다. “한옥 분포 현황과 유형 파악이 중요했어요. 학생 20여 명과 4∼5명이 한 조를 이뤄 한옥 600여 채를 전수 조사하며 당시 양옥처럼 변한 이 일대의 속살을 도려내기 시작했어요.”

정비계획을 세울 당시 수많은 우여곡절도 겪었다. 최 교수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설명회와 세미나 등에서 일부 주민들이 엄청나게 반발했다. 그는 “세미나 행사를 물리적으로 방해하고 난장판을 만드는 일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고도를 ‘육성’하기로 하면서 문화재보호법처럼 또 다른 규제를 만드는 게 아니냐는 의심 때문이었다.

당연히 주민 설득이 최대 과제였다. 최 교수는 한옥의 골격을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건축규제 완화와 보행환경 개선안을 제시했다. 또 문화유산보호구역으로 묶여 개발이 제한됐던 이 지역 한옥의 신·증·개축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현대적 감각의 상권 조성을 끈질기게 유도했다. “가이드라인은 최대한 한옥답게 개조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외벽체, 창호, 난간, 담장 등은 지역 특성에 맞는 설계기준을 마련하는 겁니다. 특히 담장의 경우 높이를 최대 1.5m 이하로 유지시켜 본채 건물과 조화를 이루는 등 옛 선조들이 살던 한옥처럼 바꾸는 게 중요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담장 밖에서 봤을 때 집 안채의 지붕 아랫부분을 가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지요.”

또 한옥은 2층까지 허용을 하되, 이 경우 안에서 장사를 해도 외관은 한옥 형태를 유지하도록 했다. “사실 집은 자기 입맛대로 지으려고 하잖아요. 그러면 국적불명의 집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요. 간판도 한옥에 어울릴 수 있도록 하는 등 옛 모습을 되찾는 게 주목적이지요.”

경북 경주시 황리단길 조성 전 모습. 최무현 신경주대 특임교수 제공

◇‘고도 이미지 찾기’ 사업, ‘봉사’에 절호의 기회= 2015년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이 ‘고도 이미지 찾기’ 사업을 추진하면서 그의 ‘봉사’에도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이 일대에 대해 ‘고도’라는 이미지에 부적합한 건축물을 정비하고 한옥을 신축할 경우 최대 1억 원(현재 1억5000만 원)까지 지원하는 것은 물론 도로·공원 등 공공시설 개선에 보조금 지원이 가능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 시기 그는 경주고도육성포럼 회장에 경주고도보존육성지역심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이러한 골목 살리기에 꼭 필요한 제안을 했다. 주민들을 대상으로 고도 사업 이해를 돕기 위한 교육 및 홍보활동에도 더욱 주력했다. 반발했던 주민들도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고도 이미지 찾기’ 사업 추진 후 3년이 지난 2018년, 대릉원 뒤편 포석로 한쪽에 매력을 느낀 몇몇 상인들이 외관은 한옥 모습을 유지한 채 젊은 층이 좋아할 만한 개성 넘치는 점포를 열자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이어 이 길이 ‘황리단길’이라는 명칭으로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를 통해 홍보되면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이 결실로 경주고도육성포럼은 2020년 고도보존육성 정책 우수 유공단체로, 최 교수는 2022년 우수 유공자로 국가유산청 표창을 받았다.

황리단길이 ‘핫플’이 되자 경주시도 이 일대 한옥 550여 채의 담장과 대문을 비롯해 가로경관 331건을 정비했다. 복잡한 도로는 일방통행으로 바꾸고 통합 환승 주차장을 조성했다. 관광 환경도 개선하고, 디지털 공공서비스를 도입했다. 이러한 성과로 이 일대는 한옥의 기본 틀 안에서 청년창업 중심이자 복합문화공간으로 번성했다. 신라의 수도 ‘서라벌’의 역사유적과 조화롭고 균형 있게 보존·발전하는 전국적 명소가 됐다. 메인 도로 일대뿐만 아니라 인근 대릉원과 동부사적지 등 방치된 골목 사이로 확장하면서 지난 6월 기준 한옥 형태의 점포는 670여 개로 늘어났다.

◇임금이 살던 찬란했던 위용 되살아나= 사람들의 발길조차 없었던 이 일대에 2018년 관광객이 550만 명 찾아오더니 2023년엔 835만 명, 지난해에는 1260만 명으로 급증했다. 주말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비는데, 수도권 등 외지 방문객이 대부분이다. 특히 수많은 문화유산을 제치고 황리단길이 경주에서 가장 많이 찾는 곳이 됐다. 지난해 9월 경주시가 한국관광공사 한국관광 데이터랩을 분석한 결과가 증명하고 있다. 당시 조사한 2023년 한 해 동안 내비게이션 목적지로 황리단길을 검색한 것이 11만8370건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석굴암(9만8351건), 동궁과 월지(1만7899건), 월정교(1만2220건) 등 경주 주요 관광지보다 많은 수치였다.

경주시가 올 설 연휴 기간(1월 25∼30일) 주요 관광지 방문객 수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총 53만9008명 중 황리단길이 34만9131명으로 전체의 64.7%를 차지했다. 이어 불국사 9만7621명, 대릉원 5만3881명, 첨성대 2만6953명 순이었다. 최 교수는 “황리단길을 많이 찾는 것은 단순히 상점을 들르는 것이 아니라 잘 조성된 한옥을 통한 관광자원으로 탈바꿈한 현장을 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되자 주민들도 반색하는 일이 벌어졌다. 국가유산청 조사에서 2015년 황리단길 주요지역 지가는 3.3㎡당 100만∼200만 원이었다. 하지만 올해 초엔 주요 도로변은 3000만∼4000만 원, 골목은 1000만 원 수준으로 급등했다. 경주 최고 요지로 떠오른 것이다.

황리단길이 번성하면서 붙어 있는 대릉원 돌담길을 배경으로 매년 4월 축제가 개최된다. 이 일대 벚꽃 아래에서 음악과 조명이 어우러지는 ‘벚꽃 라이트쇼’가 펼쳐진다. 또 같은 달 이 일대 상권 활성화를 위한 플리마켓도 열린다. 올해엔 4월 12일부터 27일까지 매주 토·일요일 오픈했으며 무려 11만 명이 찾았다. 여기에선 소상공인과 청년창업자들이 직접 제작한 수공예품과 특산품을 판매했다.

최 교수는 올 초 정년퇴직하고 특임교수가 됐지만 황리단길 활성화에는 더욱 열정적이다. 그는 오는 10월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황리단길이 전통과 현대 감성이 어우러지고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한옥마을임을 전 세계에 알려지길 기대하며 ‘열일’하고 있다.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고위직들의 동선은 노출이 안 될 겁니다. 하지만 이들이 황리단길을 방문한다면 분위기에 반할 것입니다. 인근에 대릉원, 월정교, 첨성대, 동궁과 월지 등 문화유산이 즐비해 투어 코스로도 제격입니다. 꼭 방문해주길 기대합니다.”

고도육성포럼 회장·市총괄건축가 ‘1인 다역’… “경주 문화자원 발굴 최선”
■ 최무현 교수는

최무현 신경주대 특임교수는 경북 경주의 전통과 현대 건축물 조성을 책임지고 있는 전문가다. 그는 현재 경주고도육성포럼 회장, 경주고도보존육성지역심의위원회 위원장, 경주시 총괄건축가 등을 맡고 있다.

경주고도육성포럼은 신라 천년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취지로 2010년 10월 창립했다. 최 교수는 2015년부터 10년째 회장을 맡고 있다. 회원은 동국대 WISE캠퍼스, 신경주대, 위덕대 등 지역 대학교수 및 향토학자 40명이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고도육성 소식지 ‘셔블의 창’을 매년 2차례 발간, 전국 유관기관에 배포하며 경주가 국내 대표 고도라는 위상과 품격을 널리 알렸다. 또 고도육성 정책 및 제도에 대해 주민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세미나 개최와 주민지원사업의 원활한 수행을 위한 정기설명회를 개최하고 있다.

그는 2017년부터 주민들을 대상으로 매년 ‘고도육성아카데미’(마을해설사 양성과정)를 운영하고 있다. 2024년까지 200여 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최 교수는 “초창기엔 마을해설사 자격증이 장롱에 묻혔다”며 “2019년부터 수료생을 대상으로 마을 안내 및 지역문화자원 소개를 담당하는 마을해설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20여 명의 마을해설사들이 황리단길 내 2곳의 부스에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봉사하고 있다.

최 교수는 또 2018년부터 경주고도보존육성지역심의위 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보존육성지구 내 한옥 건축물 신축 및 경관구조물 조성을 통한 고도경관 보존과 관리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국가유산청 고도보존육성 중앙심의위원으로도 이름을 올려 2023년부터는 경주를 비롯해 충남 공주·부여, 전북 익산, 경북 고령 등 5개 고도의 역사문화환경 보존·육성도 하고 있다.

아울러 그는 지난해 7월부터 경주시 총괄건축가로 활동 중이다. 경주시는 2019년부터 총괄건축가 제도를 도입했다. 총괄건축가는 경주시 공간정책 수립 등에 대한 조언, 주요사업에 대한 총괄·조정 등 건축·도시디자인의 경쟁력 강화로 수준 높은 도시공간을 조성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즉 경주시에서 짓는 전시관, 박물관, 체육관, 도서관 등 공공건축물의 기획에서부터 설계, 시공까지 전 과정에 대해 조언한다. 이밖에 최 교수는 경북도 건축위원회 위원, 경북문화관광공사 설계심의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최 교수는 “모든 역할은 천년고도 경주가 신라의 정치 중심지임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며 “숨겨져 있는 문화자원을 꾸준히 발굴하고 의미를 활용해 역사적 정체성을 공고히 확립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박천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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