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방네 아이들 '들락날락' 그곳... 점점 영그는 부산만의 정책 실험
시내 전역에 어린이 무료 복합문화시설 조성
현재 85곳 운영, 2030년까지 500곳으로 확대
도서관, 체험·전시관, 영어 존, 아기 쉼터 등 갖춰
'아이 낳고 키우고 싶은 도시' 인프라 역할 '톡톡'
편집자주
지역 소멸 위기 극복 장면, '지역 소극장.' 기발한 아이디어와 정책으로 소멸 위기를 넘고 있는 우리 지역 이야기를 4주에 한 번씩 월요일 상영합니다.

지난 15일 오전 부산 연제구 부산시청 1층 로비에 자리 잡은 어린이 복합문화시설 '들락날락'의 공기는 시청 내 여타 공간과는 확실히 달랐다. 한 무리의 아이들은 자유롭게 이리저리 오가며 책을 읽고, 디지털 체험 등을 하느라 분주했다. 3차원(3D) 동화체험관과 미디어아트 전시관 등에 들어간 아이들은 벽면 전체에 화려한 영상이 펼쳐지자 "와, 신기하다"며 감탄을 연발했다.
프로그램실에서는 원어민 교사가 진행하는 영어 수업에 참여한 어린이 10명이 노래와 율동을 따라하고 있었다. 외손자 박다움(3)군과 함께 책을 읽던 장동원(64)씨는 "딸이 추천해 줘서 와봤는데 이렇게 시설이 좋은 줄 몰랐다"면서 "신발을 벗고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놀거나 책을 읽을 수 있어 아이들에게 정말 유익한 공간"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에서 첫손에 꼽히는 저출생 국가 대한민국에서 인구 감소는 모든 지자체의 공통된 고민이다.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 온갖 대책을 시도하고,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대한민국 2위 도시인 부산도 마찬가지다. 부산만의 들락날락은 지역 내 유휴 공간을 활용해 인프라를 재구성하고, 아이들과 가족을 위한 교육·놀이·돌봄 공간을 구축하는 동시에 정주 여건을 개선해 인구 소멸 위기에 대응하는 일종의 정책 실험이다. 처음에 목표했던 효과는 조금씩 가시화되고 있다.
0~18세 미만 인구 급감하는 부산

행정안전부와 부산시 등에 따르면 부산은 지난해 소멸위험지수 0.49로 전국 광역시 중 처음 '소멸위험지역'에 진입했다. 출산 적령기 여성(20~39세)의 수는 줄고, 고령인구(65세 이상)는 전체의 23%를 넘어섰다. 전국 광역시 가운데 유일한 초고령사회인 것이다.
행안부 주민등록 인구통계를 보더라도 부산의 아동 인구는 급감했다. 0~18세 미만 인구는 2016년 61만773명에서 2020년 50만4,370명, 지난해 44만4,588명으로 계속 줄었다. 2008년 76만1,140명과 비교하면 31만 명 넘게 감소했다. 5~9세 아동만 따져도 2008년에는 16만6,470명이었지만 지난해 11만 명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기초지방자치단체 단위로 봐도 부산은 16개 구·군 가운데 11개가 소멸위험지역이다.
이 같은 위기에 직면한 부산시는 기존의 인구 유입 정책이나 출산 장려금 중심 대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장기적으로 삶의 질 향상과 아동·가족 친화적 환경 조성에 초점을 맞춘 인구 정책을 모색해 인구 소멸을 막기 위해 나섰다. 부산의 어린이 복합문화공간인 들락날락이 나온 배경이다.
아이 키우기 좋은 기반 시설 구축 이유

들락날락은 지역 곳곳에 자리 잡은 놀이형 학습공간이다. 어린이를 위한 도서관에 과학·기술·직업·문화 예술 체험이 가능한 체험관, 미디어월 등을 갖춘 전시관, 잉글리시 존, 아기 쉼터가 있고 학부모 독서 동아리 모임 등이 가능한 커뮤니티 존, 다양한 교육을 할 수 있는 학습관 등 6개 공간을 시설 규모와 주민 요구 등에 맞게 꾸몄다. 특별한 형식과 절차 없이 어린이들이 언제든 편하게 와서 즐겁게 놀면서 배울 수 있는 공간, 시민 누구나 집 근처에서 아이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한다.
2021년 10월 '부산 어린이 복합문화공간 비전 선포식'을 통해 들락날락은 본궤도에 올랐다. 부산시는 2030년까지 총 7,124억 원을 투입해 500곳의 들락날락을 만들겠다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웠다. 차량 기준 15분 이내 접근 가능한 거점형(1,000㎡ 이상) 16곳, 도보 기준 15분 내 중형(330㎡ 이상) 62곳, 소형(150㎡ 이상) 422곳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비전 선포 이듬해 10곳이 운영에 들어간 들락날락은 올해 6월 말 기준 부산 전역에 거점형 15곳과 중형 43곳, 소형 49곳 등 모두 107곳으로 늘었다. 이 중 85곳이 이미 개관해 운영 중이고 나머지는 조만간 문을 열 예정이다. 대부분 도심 내 활용도가 낮은 도서관, 공공청사, 문화시설 등의 여유 공간을 활용해 설치했다.
이희정 부산시 창조교육과 어린이복합문화공간팀장은 "개별 시설로 어린이 복합문화공간을 추진하는 사례는 전국적으로 많지만 지역 전역에 복합문화공간을 촘촘하게 만드는 건 부산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만족도 높고 긍정적 평가 이어져

지난해까지 들락날락을 찾은 누적 방문자는 150만 명을 넘어섰다. 유치원생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과 부모 등이 압도적으로 많다. 특히 들락날락의 특화 프로그램 중 하나인 체험·놀이 중심 원어민 영어 교육프로그램 '영어랑 놀자'의 인기가 매우 높다. 부산에 사는 4~7세 어린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원어민과의 스토리텔링 등 다양한 놀이 활동을 통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영어를 접할 수 있어 학부모 반응은 만족도 97.7%, 재참여 의사 96.8%로 '만점'에 가깝다. 영어랑 놀자는 2023년 들락날락 11곳에서 시범운영을 거쳐 지난해 42곳으로 확대되며 누적 3만5,000명가량이 이용했다. 올해는 부산 전역 64곳으로 더 넓혀 운영 중이다. 지난 3월 올해 1기 수강생 모집은 대부분 5분 만에 마감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처음 도입한 유아나 초등학교 저학년 대상 창의융합형 프로그램 '꼬마메이커스'도 들락날락 25곳에 8,000명에 육박하는 아이들을 끌어모았다. 만족도도 97.3%로 높았다.
들락날락은 국제사회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11월 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이사회와 아시아태평양 도시협력네트워크가 공동 주관한 'SDG(지속가능발전목표) 시티 어워즈'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전 세계 70개 도시가 응모했는데, 부산시는 도시 포용성과 지속 가능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비슷한 시기 정책 명칭인 들락날락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좋은 우리말빛상'에도 선정됐다.
"출생아·혼인 증가 추세 지속에 도움 될 것"

최근 부산 인구 동향의 변화도 들락날락 확대에 긍정적 신호다. 지난 5월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동향 자료를 보면 올해 3월 부산 출생아 수는 1,151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5.3%(58명) 늘었다. 지난해 9월 이후 7개월 연속 증가세다. 올해 2월 부산에서 혼인 건수도 지난해 2월보다 21.1% 증가했고, 이런 추세는 3월(20.8%)과 4월(16.9%)에도 이어졌다. 특히 올해 4월 전국 혼인 증가율이 4.9%에 머무른 점을 감안하면 부산의 같은 달 증가율은 괄목할 만한 수준이다.
김귀옥 부산시 청년산학국장은 "부산의 출생아 수와 혼인 건수가 늘어나는 것이 부산시의 인구 정책과 직접적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매우 긍정적 현상"이라며 "들락날락과 같은 정책이 이런 추세를 이어 나가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부산시는 올해부터 '들락날락 시즌2'를 본격 추진하고 있다. 양적 확대와 더불어 콘텐츠 강화, 운영 체계 개선 등 내실을 다지는 것이다. 영어특화형 들락날락, 해양특화형 들락날락 등을 만들고 주 6일 운영체계 도입, 박람회 개최, 들락날락 간 네트워킹 강화 등이 포함돼 있다. 단체, 가족 단위 주말 프로그램도 확대하고 영어랑 놀자와 꼬마메이커스 두 종류였던 대표 프로그램을 문화나 예술 등의 영역으로 확장해 다양화할 예정이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아동 친화 인프라를 통해 '아이를 낳고 키우고 싶은 도시'를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지역 소멸 위험에 대응하는 지속 가능한 도시로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라며 "들락날락이 저출생 대응, 돌봄과 교육, 도시재생을 아우르는 통합정책이자 아이들과 가족이 함께 행복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계속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 권경훈 기자 werth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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