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은 어떻게 평범해져버렸나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징어 게임〉이 6월27일 세 번째이자 마지막 시즌으로 돌아왔다. 흥행은 성공하는 모양새다. 7월9일 기준 대부분 국가에서 드라마 부문 톱10 1위를 달리고 있다. 이전 두 시즌이 몰고 온 광풍을 떠올리면 어느 정도 예상된 바였다. 그런데 평단 분위기가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외신을 중심으로 ‘이전 시즌보다 퇴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적지 않은 국내외 시청자 역시 온라인상에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오징어 게임〉은 명실공히 한국 드라마의 역사를 새로 쓴 시리즈다. 국내에는 그 성공에 견줄 만한 작품조차 없다. 넷플릭스가 서비스되는 모든 나라에서 1위를 차지한 사상 최초의 작품이다. 후속 시즌에는 막대한 자본이 몰렸다. 시즌 2와 3을 합친 제작비는 1000억원. 시즌 1의 네 배에 가깝다. 대중이나 평단의 기대치 차이는 첫 시즌보다 훨씬 컸다. 그에 미치지 못했다고 졸작이 되는 건 아니다.
시즌 2를 혹평했던 비평가들은 대체로 이번 시즌이 낫다고 평한다. 시즌 2와 시즌 3은 방영 시기만 나누었을 뿐 사실상 한 시즌이다. 촬영 기간이 같고 서사도 이어진다. 시즌 2를 ‘미완성’으로 남겨둔 결정이 상업적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지난해 12월26일 〈타임〉은 시즌 2를 두고 “시즌 3의 초대형 티저를 7시간 동안 시청한 느낌”이라고 썼다. 같은 평론가가 쓴 6월27일 기사에서 〈타임〉은 시즌 3을 호평했다. “심오하고, 가슴 아프고, 짜릿한 반전으로 가득한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다”라고 적었다. 다만 여전히 “시즌 2와 시즌 3 에피소드 13개를 8부작 단일 시즌으로 압축할 수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평점 집계 웹사이트 ‘메타크리틱’에 모인 시즌 3에 대한 24개 언론 평점은 평균 66점이다(7월9일 기준). 시즌 2보다 4점 올랐다.
동의하지 않는 평론가도 있다. 시즌 1에 비해 새로운 게 없고, 오히려 ‘평범’하게 바뀌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캐릭터가 일차원적이고 예측 가능했다고 썼다. “두 번째, 세 번째 시즌을 만들 만큼 놀라운 무언가가 필요했다. (중략) 평소와 다름없는 ‘오징어 게임’이다”라고 적었다. 〈가디언〉은 “새 참가자의 반전에 공감할 수 있다면 마지막 두 에피소드는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낼 것이다. 하지만 이전보다 더 전통적인 액션 스릴러로 변했다는 인상이 든다”라고 썼다.
전 세계 시청자에게 ‘기괴하면서도 놀랍다’고 평가받았던 시리즈는 어째서 평범하고 전형적으로 변했을까? 〈할리우드 리포터〉는 ‘인간성’의 부재를 들었다. “시즌 3은 여전히 캐릭터를 고문하는 새롭고 창의적인 방법을 고안하는 데에는 능하다. 그러나 인간성을 파고들지 못한다. 후자가 없기에, 전자는 비참함을 위한 비참함으로 느껴진다.”
평면적 캐릭터, 공감 어려운 선택
국내 시청자가 〈오징어 게임〉의 가장 큰 특징으로 떠올리는 건 ‘잔혹함’이다. 게임 패배 한 번이 곧 죽음이라는 규칙, 피가 분출하고 장기가 튀어나오는 장면은 한국 드라마로서 낯선 묘사다. 그런데 그게 세계에 통한 유일한 요인일 수는 없다. 더 극단적이고 잔인한 표현도 할리우드 드라마에는 흔하다. 서구권에서 〈오징어 게임〉과 ‘K드라마’가 대유행을 하고 분석 대상이 되기까지 이른 비결은 ‘집요한 인간성 탐구’였다. 후속 시즌은 이 강점을 살리지 못했다.
시즌 1에서 시청자 평가가 가장 높았던 에피소드는 ‘구슬치기’ 게임이었다(제6화 ‘깐부’). 주인공 성기훈은 정신이 온전치 않은 노인 오일남을 속여 게임에 이기다가도, 그의 순수한 모습에 안타까워하며 오열한다. 하지만 직후 오일남에게 ‘불공평한 게임’을 제안받자 정색하고 “말이 안 된다”라며 화를 낸다. 마침내 오일남의 ‘연기’를 알게 되고, 그 호의 덕에 탈락을 면하는 상황에 눈물을 흘리며 자리를 떠난다. 복잡미묘하면서도 이입하기 쉬운, 평범한 사람들의 윤리적 고뇌가 매 순간 제시된다.

시즌 2와 3의 등장인물은 분명 첫 시즌보다 다채롭다. 임신부, 트랜스젠더, 유튜버, 래퍼 등 직업과 배경이 다양한 참가자가 경합한다. 그러나 캐릭터 대부분은 평면적이다. 게임 하나가 끝날 때마다 참가자들은 오징어 게임을 지속할지 끝낼지 OX로 나눠 투표한다. O를 택한 이는 대개 탐욕스럽고 이기적이다. X에 투표하는 이는 온순하거나 배려심이 깊다. ‘상금을 더 번다’ ‘아이를 지킨다’ ‘살아남는다’와 같은 단일한 목표만 보고 각자 달려 나간다. 시즌을 거듭하며 잔인한 장면은 늘었으나, 극적 효과는 오히려 떨어진다. 첫 시즌에서 죽음은 내적 고뇌를 절실하게 만드는 장치였다. 시즌 2와 3에서는 서로 다른 목표의식이 대결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라는 질문은 사라지고, “게임이 점점 흥미진진해지는데요?”라는 구경꾼 ‘VIP’들의 추임새만 남았다.
시즌 2, 3에서 아들과 함께 참가한 노인 장금자의 선택은 온라인상에서 가장 큰 논란거리다. 이것은 ‘선한 인물은 최대한 선한 행동만 한다’는 새로운 법칙의 대표 사례다. 게임 속 역할에 따라 아들이 갓 출산한 산모를 죽이려 하자 그는 ‘차라리 나를 찌르라’고 호소한다. 말이 통하지 않자 생면부지의 산모를 살리기 위해 제 아들을 찔러 죽인다. 타인을 위해 가족을 희생하는 모습은 숭고하게 느껴지지만 인간적이지는 않다. ‘죄 없는 아이를 살려야 한다’는 이후의 넋두리만으로 시청자가 공감하기는 어려운 행동이다. 아내 대신 살아남길 ‘선택’했으나, 후회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시즌 1 캐릭터의 모습과 대조된다.
많은 이들이 2021년 〈오징어 게임〉의 강점으로 ‘자본주의의 모순 비판’을 꼽았다. 시즌 3에서 이 주제 의식은 더 직접적으로 제시된다. “우리는 말이 아니야. 사람이야”라는 성기훈의 대사는 시리즈 전체를 꿰뚫는 문장이다. 그런데 그 속뜻은 달리 느껴진다. 첫 시즌에서 ‘사람’은 어리석은 실수를 거듭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에 흔들리는 입체적 존재다. 후속 시즌에서는 선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특징이라고 강변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개별 캐릭터는 주체적 인간이 아니라 제각기 맡은 ‘역할’을 수행하는 말처럼 여겨진다. ‘반전’이 있어도 시즌 1만큼 놀랍지는 않다. 모두의 예상대로 좋은 사람은 결국 착한 선택을 하고 나쁜 사람은 악한 선택을 한다.
〈오징어 게임〉이 신드롬으로 이어진 비결은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자문하게 하는 과정이다. 해외에서는 이 선택을 더 생생하게 맛보기 위해 직접 서바이벌 게임을 하는 이벤트까지 열렸다. ‘탈락하면 죽는다’는 규칙이 없는 게임은 원작만큼 재미를 주지 못했다. 그런데 시즌 2와 3 역시, 등장인물들의 선택은 그리 절박한 고민에 기반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배우들의 연기는 나무랄 데 없이 빛난다. 그러나 카메라가 꺼진 뒤 피 묻은 옷을 벗어던지고, 밝게 웃으며 일어나는 그들의 모습 역시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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