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0주년 특집] 보수대혁신 (1) “보수의 가치, 창의성 마저 진보에 빼앗겨…아이디어 가진 자가 세상을 바꾼다”

대구일보는 창사 80주년을 기념하여 내공이 깊은 학자, 정치인, 시민사회, 교수 등의 인터뷰를 통해 제대로된 정치력을 발휘하고, 대한민국의 중심을 잡아가기를 바라는 대구경북 시도민의 염원을 반영한 정치기획 시리즈 '보수대혁신'을 시작한다. (편집자 주)

▲5.18 당시 군인들과 격렬하게 대치하고 있던 시민들을 평화적인 시위로 이끌어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지 않도록 했다고 자부한다. 10여만 명의 시민들을 이끌며 시위를 주도한 것도 생명 자유와 같은 보수적 가치를 중시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20~30대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그러나 기존 진보 진영의 내로남불과 위선, 서민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포퓰리즘에 실망했다. 물론 보수 진영의 현실 정치에도 실망한 적이 많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에 기반한 자율과 창의를 중시하고 이념이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에서 더 나은 곳을 향해 가려는 '보수적 가치'는 중요한 것이다.

▲정치권력이 한쪽으로 기울어질 때 필연적으로 권력이 남용되어 국민의 삶이 피폐하게 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정치에 있어서 견제와 균형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를 잇는 좌파 정권의 재탄생은 막아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선거운동 막판에 윤석열,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하지 않으면 보수의 대선 승리가 힘들 것 같았다. 단일화 명분을 줄 아이디어가 떠올라 안철수 의원을 강력하게 설득했더니 고맙게도 단일화에 나서주었다. 참여연대를 이끌던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낙천낙선 운동할때 조선일보에 낙천낙선의 문제점을 칼럼으로 기고해 물꼬를 달리 틀었던 경험도 있다. 현실적인 정치 자산이 전혀 없는 한 개인도 좋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국면을 전환시킬 수 있다는 것을 체험했다.

▲좌파 진영은 사람들의 약한 고리를 찾아내 선동의 프레임을 만드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 보수 진영은 그에 대처하는 아이디어가 없어 늘 우왕좌왕만 하다 정권을 넘겨준다. 이명박 정부 당시 효순·미선이 사건 때만 해도 우발적인 비극적 사고를 좌파는 반미, 반정부 운동으로 전환시켰다. 어린 학생의 안타까운 죽음을 주한미군에 대한 불만과 연결시켜 한순간에 사회 전체의 분노로 확산시키는 전략을 썼다. 광우병 파동 역시 마찬가지였다. 박근혜 정권의 문제도 '국정농단'이라는 딱지를 붙인 것부터가 기발한 아이디어 아닌가. 그 프레임을 연료로 무당굿, 남자 문제 등 괴담을 뒤섞어 이슈화했다. 세월이 흘러 이제야 두 대통령 시절 성과도 적잖았고, 사법처리에 억울한 점도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

▲ 윤 전 대통령이 계엄을 하자마자 좌파 진영은 곧장 '내란 음모', '친위 쿠데타' 프레임을 씌워버렸다. 정치적 공세와 동시에 법적 심판의 흐름까지 만들어버렸다. 진보가 검찰 수사권 언론기관 통제력을 갖고 했던 것이 아니라 프레임을 씌우는 아이디어 하나로 보수를 박살 낸 것 아닌가. 그런데 보수 진영은 대처할 그 어떤 아이디어도 내지 못해 내란동조 정당으로 포박당하고 말았다. 보수 진영이 고민하고 또 고민하면서 보수 가치를 지켜낼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보수로 변화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무기력하게 끌려다니다 파멸하는 모습만 보여줄 것이다.

▲원래 인간의 창의적인 정신을 중시하는 게 보수인데, 거꾸로 진보가 보수의 가장 귀중한 가치를 이용하여 진보를 키워가고 있으니 얼마나 아이러니한가.좌파는 민노총 등 외곽 단체, 전문가, 언론 등 사안별로 전략적 아이디어 동원 능력이 탁월하다. 보수의 약한 고리를 빠르게 찾아 이를 전국적 집회로 언론 플레이로 확장시킨다.
반면 보수는 현상 분석, 위기관리, 대응 매뉴얼 등에서 늘 뒤처졌다. 토론을 통한 아이디어 부재이다. 핵심 이슈가 터질 때마다 현상의 본질을 파악해서 더 우위의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데 내부에서 서로를 공격하거나 극단주의 딱지만 씌우는 데 골몰하니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흰물결은 순수를 지향한다. 우리가 낮은 가치를 낮게, 높은 가치를 높게 볼 때 순수해진다.
세상이 혼탁해지는 것은 높은 가치를 낮게, 낮은 가치를 높게 뒤바뀌어가기 때문이다.

-'가치'에 집중하면 국민의 힘이 수권 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보수는 더 이상 방어적 태세에 머물지 말고 새로운 대안을 주도하는 세력으로 거듭나야 한다. 단순히 상대의 포퓰리즘을 공격하는 데만 멈추지 말고 진보를 압도할 대안을 제시하며 '플러스'를 만들어 내야 한다. 집값 잡기 위한 '대출 6억 제한' 정책이나 '신도시 개발' 정책에 대해서는 '도심 초고층 아파트' 건설을 주장하여 집값도 잡고 더 편한 주거환경 제공이라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덧붙여 뉴욕이나 도쿄처럼 도심 초고층 아파트를 건축하면 직주근접 주거환경으로 출퇴근 시간이 단축되어 하루하루 삶의 질과 건강이 좋아지는 이점을 국민들에게 잘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한다. 당권 다툼이나 좌우진영투쟁에서 벗어나 진보와 선의의 경쟁을 하며 진보보다 더 나은 대안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데 당력을 집중하길 바란다.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 토대, 어떻게 마련할 수 있나.
▲ 소그룹 토론이 그 시작이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특별한 아이디어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런 인간의 속성이 발휘되도록 토론의 규칙을 잘 만들어 운영하면 엄청나게 좋은 아이디어가 쏟아질 것이다.
-보수 진영은 인재 수혈도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나.
▲좌파 진영에는 민변 등 다양한 외곽 조직이 잘 활성화되어 있고, 그곳에서 경쟁력 있는 인재와 아이디어를 수혈받아 활용한다. 공천도 많이 주고. 그러나 보수는 수혈 문화가 거의 없고, 서로 자기 몫 지키기에만 급급한 것 같다. 보수가 가장 못하고 있는 부분이다.
-정치 아카데미·학교가 필요하겠다.
▲보수 가치를 실현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정책에 접목하려면 실무진이 강해야 한다. 당 사무직, 보좌진 그룹에 좋은 인재가 많이 유입될 수 있도록 공천 우대 등 방안을 마련한다. 또한 정치 학교, 정치 아카데미 같은 걸 만들어 젊은 친구들이 창의적으로 도전해 보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윤학변호사는 1957년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나 신안의 한 작은 섬에서 자랐다. 광주 살레시오고를 거쳐 서울대 법대에서 수학했다. 1983년 사법고시 합격(사법연수원15기). 『가톨릭다이제스트』·『월간독자 Reader』·「흰물결신문」 발행인, 흰물결아트센터 대표, 흰물결 갤러리 대표
이영란 기자 yrlee31@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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