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바둑연대기] 바둑의 역사 새로 정립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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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통일뉴스> 에 '북, 평양 림흥동 일대서 19줄 고구려 바둑판 나왔다'는 제목의 기사가 나왔다. 통일뉴스>
또한 그해 <조선중앙통신> 은 "김일성종합대학 역사학부 학술연구집단이 평양 림흥동 일대에서 지금까지 발굴된 유물 유적들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1세기에서 5세기 초까지 고구려 역사를 해명하는 데서 큰 의의를 가지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고 보도하며 '19줄 바둑판' 사진을 공개했다. 조선중앙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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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주체사관으로 기술하는데

2021년 <통일뉴스>에 '북, 평양 림흥동 일대서 19줄 고구려 바둑판 나왔다'는 제목의 기사가 나왔다. 또한 그해 <조선중앙통신>은 "김일성종합대학 역사학부 학술연구집단이 평양 림흥동 일대에서 지금까지 발굴된 유물 유적들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1세기에서 5세기 초까지 고구려 역사를 해명하는 데서 큰 의의를 가지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고 보도하며 '19줄 바둑판' 사진을 공개했다. 연구집단은 1호 우물에서 처음으로 발굴된 돌 바둑판 조각이 고구려의 바둑판으로서 세계에서 제일 이른 시기에 속하는 19줄짜리 바둑판이라는 사실, 그리고 한 줄에 5개의 화점이 있는 고구려의 바둑판이 고려를 거쳐 조선왕조 말까지 이어져 왔다는 것도 밝혔다.
사진을 살펴보니 한 줄에 다섯 개의 화점이 있는 우리 고유의 순장바둑판이었다. 순장바둑판은 총 17개의 화점이 존재한다. 흑과 백 각 8개의 돌을 화점에 배치한 후, 백이 먼저 가운데 천원(어복)에 두는 것으로 대국을 시작한다. 중국이 좌우대칭으로 4개의 돌을 둔 후, 백이 먼저 두는 방식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계가하는 방식도 중국과 확연히 다르다. 중국이 돌의 개수와 집의 개수를 합산하여 계가를 하는데 순장바둑은 집의 개수만 헤아린다. 사석은 필요가 없다. 일본식처럼 사석으로 상대의 집을 메우지 않기 때문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475년 고구려 장수왕 때 백제의 개로왕을 살해한 기사가 있다. 요약하자면 장수왕은 백제를 도모하기 전 첩자를 보내는데 도림이라는 승려가 나선다. 당시 개로왕은 바둑을 좋아했는데 도림은 백제 대궐 문에 이르러서 "신이 어려서부터 바둑을 배워 자못 신묘한 경지에 들었으니 바라건대 대왕의 곁에서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라고 했다. 왕이 도림과 두어보니 국수(國手)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상객으로 삼아 나라 안팎의 일을 상의했으나 도림은 백제의 국력을 소진하도록 간언해 마침내 나라가 망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대륙과 붙어 있는 고구려가 만일 중국으로부터 바둑을 들여왔다면 중국의 규칙이 보편화했을 것이다. 백제는 의자왕이 왜에 보낸 바둑판(목화자단기국)과 같이 17개의 화점이 있는 순장바둑을 두었다. 2021년 평양에서 발굴된 유물에서 고구려도 순장바둑을 두었음이 밝혀졌다. 같은 바둑 규칙이었기에 승려 도림은 개로왕에게 국수 칭호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얼마 전 일본 경매사이트에서 <고대위기(古代圍碁)의 세계(世界)>라는 책을 구입했다. '제12장 조선에의 전래', 고대중조관계(古代中朝關係) 편에 놀라운 내용이 있다. 전한시대(前漢時代)의 조선사군(朝鮮四郡)이 지도로 그려져 있는데 고조선을 멸망시킨 한나라가 경상도를 제외한 한반도 대부분을 차지해 사군(四郡)을 설치한 것으로 되어 있다.
소위 한사군(漢四郡)에 의해서 바둑이 중국에서 전래했다는 설을 마치 사실인 양 써놓은 것이다. 우리나라 바둑의 전래가 기원전 108년경 한사군에서 비롯되었다는 식이다. 하지만, 중국의 바둑과 우리의 바둑이 다른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또한, 인도의 '시킴왕국'의 바둑규칙과 우리 순장바둑의 규칙이 비슷한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바둑'이라는 말의 어원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자주적인 바둑 역사 연구가 절실하다. 북한은 주체사관으로 역사를 기술하는데 우리나라는 어떤 사관으로 역사를 해석하고 있는가. 바둑과 역사, 이를 풀어낼 학자에게 이 글을 보낸다.
/조용성 ㈔진주스포츠클럽 바둑지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