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의 집중호우 예보에도 불구하고 대한축구협회가 주최하고 경남축구협회가 경기 진행과 운영 전반을 맡은 '2025 추계 전국고등축구대회'가 무리하게 강행돼, 대회는 첫날부터 중도 취소 사태로 얼룩졌다.
합천 전역에 호우경보가 내려지고 경기장이 물바다로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주관처인 경남축구협회는 사전 대비책이나 예비 일정조차 마련하지 않은 채 수백 명의 고등학생 선수들을 위험한 인조잔디 구장으로 내몰았다. 선수 안전은 뒷전으로 밀린 채 졸속 운영에만 급급한 경남축구협회의 무책임한 대회 진행 방식에 학부모와 지역사회는 거센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번 대회는 지난 18일부터 오는 8월 2일까지 16일간 합천군민체육공원 등 지역 내 7개 인조잔디 구장에서 진행된다. 고학년부 39개 팀과 저학년(U17)부 37개 팀, 총 76개 팀이 참가하는 전국 규모의 대회다. 그러나 대회 개막일인 18일, 합천 전역에는 기상청 호우경보가 발령돼 심각한 폭우 상황이 예고된 상태였다.
하루 전인 17일에는 평균 강우량 200㎜, 최고 294㎜에 달하는 폭우가 쏟아져 각종 시설의 침수 및 안전 문제 우려가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남축구협회는 별다른 일정 조정이나 안전 대책 없이 경기를 그대로 강행했다. 대회 첫 경기는 오후 5시 30분에 시작됐으나, 폭우가 심해지면서 2개 경기장에서는 전반전만 치르고 후반전 경기가 취소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이어 주최 측은 첫 경기 종료 직후에야 전면 경기 취소 결정을 내리며, 무리한 개막 강행에 따른 현장 혼란만 키웠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특히 이번 대회 경기장이 모두 인조잔디로 조성돼 폭우 시 물이 빠지지 않고 고이는 현상이 심각했다. 인조잔디는 천연 잔디에 비해 배수 기능이 떨어져, 비가 오면 표면에 물이 고이고 미끄러움이 심해진다. 이는 경기력 저하는 물론 선수들의 부상 위험을 크게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 학부모는 "아이들이 마치 물 위를 달리는 듯한 상태에서 경기를 했다. 진흙탕은 없었지만, 물이 고여 오히려 더 위험한 환경이었다"며 불안한 심경을 토로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위험 상황이 충분히 예견 가능했음에도 경남축구협회가 사전 대비에 소홀했다는 점이다. 기상청은 대회 개막 전부터 18일을 포함한 주간 내내 집중호우 예보와 함께 일부 지역에 시간당 30㎜ 이상의 강한 폭우 경보를 반복해 발표했다. 하지만 협회는 경기장 배수 점검, 임시 우천 대피소 마련, 선수 및 관계자 안전 교육, 예비 일정 조정 계획 등 기본적인 대비책을 전혀 마련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경남지역 한 고등학교 지도자는 "여름철 대회는 기상 변수에 매우 민감한 만큼 우천 대비 예비 일정은 필수적이다. 선수들을 진흙 대신 물바다 인조잔디 위에서 뛰게 한 것은 경기력 저하는 물론 부상 위험을 극단적으로 높이는 위험천만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경남축구협회 김종석 전무이사는 "대회 개막 전날(17일)부터 기상청에서 강한 비 예보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경기 시작 전까지는 운동에 큰 지장이 없을 정도로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수준이었다"며 "비가 더 쏟아질 가능성이 있긴 했지만, 갑작스럽게 일정을 취소하면 팀별 숙박·식사·운송 등 이미 준비된 비용과 운영비에 큰 손실이 생기고, 팀들이 낸 제재비(참가비)도 반환이 어려워 협회나 학교 모두에 재정적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부 지도자들이 안전 문제로 경기 중단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당시 상황만으로는 즉각적인 취소를 결정할 만큼 급박하다고 보지 않았다"며 "현장에서 상황을 지켜보다가 갑자기 빗줄기가 거세져 뒤늦게 전면 취소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해명했다.
한편, 폭우가 절정에 달해 합천군 전역에 비상 대피령이 내려진 19일에는 결국 주관처인 경남축구협회가 전 일정을 취소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학부모들과 현장 관계자들은 "기상 상황을 무시한 채 선수 안전을 소홀히 하는 이번 사태는 절대 용납돼서는 안 된다"며 "앞으로 대회 운영 주체가 선수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철저한 재검토와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상홍기자
지난 18일 합천군민체육공원 인조잔디구장에서 '2025 추계 전국고등축구대회' 개막전을 앞두고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선수들과 대회 관계자들이 빗속에서 대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