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라노] ‘보호출산’ 시행 1년…107명이 선택했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고, 있지만 없는 아이들. 우리 사회의 가장 깊고 어두운 곳에 방치된 ‘유령 아동’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2023년 여름이 막 시작될 무렵이었습니다.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을 시작으로 전국 곳곳에서 유령 아동 사망 사건이 잇따랐고요. 정부가 허둥지둥 전수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유령 아동이 2000여 명에 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에 정부는 유령 아동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를 시행했는데요.

그렇게 벌써 1년이 흘렀습니다. 지난 17일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7월 19일 보호출산제가 시행된 후부터 올해 6월 말까지 1882명이 7317건 보호출산 관련 상담을 진행했다고 알렸습니다. 그중 126명이 보호출산을 신청했고, 19명이 철회 의사를 밝히면서 최종 107명이 보호출산을 한 것으로 나타났죠.
과거에도 유령 아동 관련 사건이 다수 발생했고, 그때마다 출생통보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습니다. 하지만 제도 도입은 지지부진하기만 했죠. 그러던 2023년 6월 출생 미신고 사례 조사 중 경기 수원시 한 아파트 냉장고에서 출생 기록조차 없는 영아 시신이 발견되면서 정부가 대대적으로 전수 실태조사를 벌였습니다. 조사 대상은 병원에서 임시신생아번호를 부여받았으나 출생신고는 되지 않은 일명 유령 아동. 이후 전국 곳곳에서 감춰졌던 영아살해·학대치사 사건이 봇물 터지듯 쏟아집니다. 여러 이유로 아이를 키울 수 없거나, 출산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는 부모가 극단적 형태로 아이를 방임·살해한 결과였죠.
출생신고는 단순히 아이가 태어났다는 사실을 국가에 신고하는 행정 절차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아동의 존재를 공적으로 증명하고, 국가의 보호 체계 안에 들어가 기본적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게 한다는 의미를 지니죠. 유엔아동권리협약 제7조 2항은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돼야 하며, 출생 때부터 성명권과 국적 취득권을 가진다’고 규정할 만큼 출생신고는 아동 권리 보장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는 부모에게만 출생신고 의무를 맡겨 부모가 신고하지 않으면 국가가 아동의 출생 여부를 파악할 방법이 전무했습니다. 이에 기존 제도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왔고요. 정부는 의료기관이 아동 출생을 지자체에 자동으로 통보하도록 강제하는 출생통보제를 시행합니다.
출생통보제로 출산 사실을 드러내길 꺼리는 위기 임산부가 병원 밖에서 아이를 낳은 뒤 유기할 우려가 제기되자, 보호출산제도 함께 도입하기로 결정하는데요. 보호출산제는 사회·경제적으로 자녀를 양육하기 어려운 임산부가 가명으로 의료기관에서 출산하는 제도입니다. 출산한 산모가 신원을 숨겨도 지자체가 아동의 출생신고를 대신할 수 있죠.
그런데 출생통보제는 대부분 찬성한 반면, 보호출산제는 반대가 심했습니다. 보호출산으로 태어난 아동이 부모의 정보를 알 수 없다는 점이 문제가 된 것인데요. 일부 전문가는 아동이 자신의 ‘뿌리’에 관해 알 수 있는 방법을 없애는 것은 아동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때문에 아동이 정체성 형성에 혼란을 느낄 수 있다고 우려했죠.
아동권리보장원은 이 문제가 ‘출생증서’를 통해 일정 부분 해소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출생증서에는 부모의 인적 정보, 출생 배경·일시·장소 등이 담기는데요. 출생증서는 정보 유출을 방지하고자 지역 상담기관에서 임시 보관하고, 아동의 성본(姓本) 창설이 끝나는 시점에 아동권리보장원의 보존서고로 이관됩니다. 이관된 출생증서는 향후 아동이 성인이 돼 증서 공개 청구를 신청하면 볼 수 있죠. 아동권리보장원 관계자는 “아동의 알 권리 문제는 출생증서를 통해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다”며 “지난해 보호출산제 시행 이후 지역 상담기관에서 만든 2024년생 아동의 출생증서 51건의 이관을 마쳤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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