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면 마음도 건강해질까? 정신과 의사의 대답은

한겨레 2025. 7. 2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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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color: rgb(0, 184, 177);">[마라톤 하는 정신과 의사 김세희의 ‘마인드 업’]</span> 4회
클립아트코리아

여름 장마 한가운데, 보슬비가 내리는 새벽 서울 남산 국립극장 앞에 90명 쯤 사람들이 모였다. 남산 북측 순환로에서 ‘목동 마라톤 교실’ 러너들이 언덕 훈련을 겸한 장거리 훈련을 하였다. 시작부터 섭씨 25도로 달리기에는 기온도 높고 습도는 100%에 가까운데, 새벽 나무 숲길은 상쾌하여 달릴 만하다. 서울 도심에서 여름철 이만한 운동 장소가 흔치 않아 같은 마음의 사람들이 동트기 전부터 남산 둘레길을 걷거나 달리고 있다.

오르막 내리막 반복되는 남산 달리기 코스

남산 둘레길 국립극장 초입에서 시작하여 남산 케이블카 방향으로 3km를 달리고 되돌아오면 6km가 된다. 왕복 5회전, 30km를 달리기로 하였는데 200~600m가량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코스이다. 가을 마라톤 대회를 앞두고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하기 전, 30km 거리주로 통을 키우는 훈련이다. 만만한 훈련은 아니지만, 덥고 습한 날씨에 장거리를 달리기에는 새벽 남산 북측순환로가 제격이었다. 오르막을 마라톤 대회 페이스 수준으로 달려 오르고 내리막에서는 보폭을 좁혀 무릎, 발목 등 관절에 실리는 부하를 줄여 달린다.

마라톤 2시간 39분 이내 완주를 목표로 달리는 S조, 2시간 49분 이내 목표 A조, 3시간 이내 목표 B조, 3시간 10분 이내 목표 C조, 3시간 30분 이내 목표 D조 각각 수준은 다르지만, 그룹별로 최선을 다하여 달리고 있다. 같은 주로를 왕복하여 달리면서, 앞선 러너들을 추월할 때, 맞은편에서 다른 사람들이 달려올 때, 화이팅을 외치며 서로를 격려하였다. 목동 마라톤 교실 외에도 오픈케어, 런위드주디, NSRC, 러닝 아카데미 등 수많은 러너들이 각각의 훈련 계획에 맞추어 달리고 있었다. 누군가 지켜본다는 것에 자세를 가다듬고 달리는 서로를 보며 교감하고 자극도 받는다.

“뭘 보자고 죽자고 뛰어 올라갑니까?”

비가 잠시 멈추었고 한 무리의 시각장애인들이 언덕을 오르고 있다. 길 가운데 노란 점자보도블록을 지팡이로 확인하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다. “쓰읍 흐읍 흐윽” 숨이 차서 곧 넘어갈 듯 거친 소리를 내며 언덕을 뛰어 올라가는 나에게 한 사람이 농담을 건넨다. “뭘 보자고 그렇게 죽자고 뛰어 올라갑니까?” 대답할 겨를은 없어도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3회전에 접어들고 나서 비가 꽤 강하게 내리는데 우거진 나무숲이 어느 정도 빗줄기를 막아주어 달리기에 지장은 없다. 그렇지만 훈련 중반부, 누적 거리가 16km에 이르니 집중하고 있지만 다리가 무겁고, 달리는 템포가 초반보다 늘어진다. 경사가 높은 오르막이 400m 이상 이어지는 구간에서는 달리다가 멈춰 서거나 걷기로 전환하는 사람들도 꽤 보인다.

나도 훈련그룹에 뒤처져서 홀로 숨 가쁘게 언덕을 달려 오르는 중이었다. 한 러너가 사람들이 달리는 모습을 촬영하다가 말을 건넨다. “비 오는데 달리면 정신 건강에 좋아요?”

숨차고 다리가 무겁고 언덕은 끝이 보이지 않고, 힘들다고 하는 느낌을 관찰하며 내면에 더욱 집중하던 중에 문득 생각이 멈춘다. ‘비 오는데 달린다, 정신 건강에 좋을까? 그런데 정신 건강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지?’ ‘어떤 상태를 마음이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 남은 거리를 달리는 동안 화두를 삼았다.

스트레스는 비자발적 압박으로부터

정신 건강, 마음 건강은 어떻게 정의하고 말할 수 있을까?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하면서, 진단서나 소견서를 발급하는 일도 의사가 맡은 주요 업무 중 하나이다. 주요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조현병, 적응장애,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공황장애, 수면장애, 충동조절장애, 지적장애, 양극성 정동장애...... 정신건강의학과 질환을 진단하는 서류는 수없이 작성한다. 그런데, ‘상기인은 정신이 건강합니다, 마음 건강에 이상이 없습니다.’라는 진단서를 작성한 적은 없다.

심리적인 건강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소위 스트레스가 높으면 정신 건강이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내면의 스트레스가 없다면 마음이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다. 우울증, 불안장애, 수면장애, ADHD 등을 진단받았더라도 마음을 다스리고 관리하여 심리적인 스트레스가 없다면 정신이 건강한 것이다. 스트레스는 비자발적인 압박에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상에서의 스트레스는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해야 할 때’ 느끼게 된다. 강제와 압박 속에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 스트레스라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자발적으로 힘들기로 마음먹고, 고통을 이겨내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발적 고통 넘어서면 해방감과 자신감

스스로 주말 새벽에 일어나 남산까지 가서 비가 오는데도 오르막 내리막길을 30km를 자청해서 달리고 있다. 누가 시킨 것이 아니며, 자발적으로 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훈련 내용은 30km를 달리는 동안 오르막길에서도 밀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근지구력, 심폐 능력을 다지는 것이다. 그리고 보여지는 외형의 훈련 프로그램 이면에는 힘든 고비가 올 때 감당하고 이겨내자고 마음에서 결정하는 훈련이 포함되어 있다. 달리기는 신나고 즐겁기만 한 행위는 아니다. 달리다보면 숨이 차고 다리가 무겁고, 그만두고 싶은 순간들이 찾아온다. 그러나 고통스럽다는 느낌을 이겨내리라 자발적으로 결정하고, 집중해서 달리는 동안에는 마음의 다른 잡념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고통스럽다고 여겨지는 느낌을 이겨내고 넘어서는 과정을 통해 성취감과 쾌감을 맛본다. 스스로 선택한 고통을 자발적으로 시작했다가 마치고 나서는 ‘드디어 끝났다.’ 해방감을 경험하고 ‘힘들었지만 이겨 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이렇게 내면에 경험한 자신감과 해방감은 일상의 다른 영역에서도 ‘해낼 수 있다.’ ‘해볼 수 있겠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한다. 훈련 과정 중 어렵다고 느껴진 느낌을 마주하고 극복했던 내면의 과정을 적용할 수 있다. 일상에서 고통스럽다고 느껴질 때도 ‘내가 그렇게 힘든 것을 이겨냈었지, 처음에는 못할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극복했었지’를 기억하고 재현하는 것이다. 직장 업무, 집안일,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만한 것은 내가 이겨낼 수 있다.’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보듬을 수 있고 스스로 믿음을 가지게 된다. 자신에 대한 믿음, 스스로 격려를 할 수 있는 마음의 근간을 자존감이라 할 수 있는데, 궁극적으로 자존감이 향상된다. 달리기는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을까? 각자 질문하고 답을 찾을 수 있겠는데, 나는 그렇다고 경험한다.

# 마라톤 하는 정신과 의사 김세희의 ‘마인드 업’은?

세계 6대 메이저 베를린·보스턴·도쿄·시카고·런던 마라톤을 포함해 50여 차례 국내외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한 김세희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임상교수가 연재하는 ‘마라톤 하는 정신과 의사 김세희의 마인드 업’ 전문은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코너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김 교수가 20년간 달리기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통해 깨달은 마음에 대한 이야기가 ‘마음의 회복’을 원하는 독자분들께 큰 도움이 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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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전문 읽기
‘그만두고 싶은 마음’ 일으켜 세우는, 달리기의 힘
▶https://www.hani.co.kr/arti/society/health/1199311.html?h=s

2화 전문 읽기
아무도 나에게 ‘그것밖에 못 하냐’ 하지 않는데
▶https://www.hani.co.kr/arti/society/health/1201693.html?h=s

3화 전문 읽기
단번에 되는 건 없다…축적도 회복도 ‘시간’이 필요하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health/1204120.html?h=s

김세희 |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임상교수·‘마음의 힘이 필요할 때 나는 달린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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