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에서 사회까지…대한민국의 망가진 소통을 파헤치다

최명진 기자 2025. 7. 20.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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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 오찬호 ‘납작한 말들’ 출간
사이다·참교육 뒤 숨은 차별과 폭력 비판
불평등한 한국사회 민낯, 혐오 언어 해부
우리는 언제부터 타인의 복잡한 삶을 간단한 언어로 재단하게 됐을까. ‘사이다’, ‘참교육’, ‘긁혔냐’ 같은 자극적 표현이 난무하는 공론장의 망가진 풍경 속에서, 우리 대화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책이 발간됐다.

베스트셀러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이후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집요하게 파헤쳐온 사회학자 오찬호가 신작 ‘납작한 말들’(어크로스刊)을 통해 다시금 질문을 던진다.

‘납작한 말들’은 복잡한 맥락을 지우고 단순화된 언어로 타인을 찌그러뜨리는 대한민국 사회의 언어 구조를 비판한다.

빈부격차를 언급하면 돌아오는 ‘북한에 가라’는 조롱, 비정규직 문제를 꺼내면 되돌아오는 ‘그 일 하라고 누가 칼 들었냐’는 빈정거림이 대표적이다. 이는 생각과 말의 간편함이 타인의 삶을 왜곡하고 폭력으로 작동하는 사례들이다.

책은 ‘젠더’, ‘인권’, ‘일상’, ‘자기계발’, ‘사회’라는 다섯 주제를 통해 능력주의와 생존주의가 어떻게 일상의 말에 침투해 차별을 공고히 하는지를 짚는다. ‘건강도 실력이다’, ‘사회 탓하지 마라’는 식의 말들이 어떻게 구조적 문제를 사적 책임으로 치환하며 논쟁을 봉쇄하는지를 보여준다.

유튜브나 SNS에 퍼진 유명 강사의 ‘팩트 폭격’은 대표적 사례다. 그들은 ‘모든 조건은 같다’는 평등론을 앞세워 실패한 이들을 조롱하고, 능력 부족을 납득할 유일한 설명으로 만든다.

저자는 이같은 납작한 언어가 평등, 공정, 자유 같은 단어의 의미까지 왜곡하고 있다고 말한다.

‘공정’은 무조건 성적에 승복하라는 뜻으로, ‘자유’는 ‘혐오할 자유’로, ‘국민저항권’은 민주주의에 대한 테러까지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오용된다. 이는 말의 본래 의미를 잃게 하고, 건강한 논쟁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책 속에는 또 다른 ‘납작한 말’의 피해자들도 등장한다. 회사에서 늘 ‘착한 장애인’으로만 소비돼야 했던 홍길동 씨의 사례는 일상에 스며든 차별의 얼굴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회사가 홍보에 활용할 만큼의 ‘모범적 장애인’이 되기를 요구받았고, 결국 ‘감사의 언어’를 강요당하는 구조 속에서 퇴사를 결심한다. 또한 ‘여자도 군대 가라’는 주장을 분석하며, 차별에 대한 불만이 평등의 논리를 왜곡해 오히려 논쟁 자체를 납작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이 책은 언어가 얼마나 쉽게 폭력의 도구가 될 수 있는지를 경고하며 타인의 삶을 상상하는 언어, 입체적인 논쟁의 가능성을 회복하자고 제안한다.

저자는 ‘늘 그래왔기 때문에 문제없다’는 사고방식을 멈추고, 자연스럽게 여겨온 말들의 방향을 되짚어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 사회의 말과 생각이 놓인 자리, 그 거칠고 납작한 풍경을 함께 들여다볼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다.

/최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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