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의 외주화' 밀폐공간 질식 사고는 구조적 문제

안지산 기자 2025. 7. 20.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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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2025년 사망 사례 보면 매해 비슷한 방식으로 숨져
위험 작업인 데다 단기작업이라 일용직 위주 단기간 고용
하청의 재하청 등으로 안전 지침 없이 무방비 상태 노출
“원청의 철저한 감독 이뤄져야...수사기관 처벌 강화 필요”
 2023년 5월 18일 김해시 주촌면 오수관 준설작업 현장이 보이는 곳에 사망 노동자를 추모하는 소주병과 종이컵이 놓여있다.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
소방당국이 2023년 9월 26일 김해시 진영읍 좌곤리에서 맨홀 작업자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 /경남소방본부

밀폐공간 질식 재해가 매해 비슷한 양상으로 발생하고 있다. 전문가·노동계는 안전 지침만으로는 사고 발생 환경을 바꿀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원청 감독 강화·안전수칙 준수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2023년 5월 김해시 주촌면에서 2명의 노동자가 맨홀 작업 중 유해 가스에 질식해 사망했다. 4개월 뒤인 그해 9월 김해시 진영읍에서도 맨홀 작업 중 노동자 2명이 숨졌다. 2024년 12월에는 창원시 마산합포구에서 노동자 2명이 하수예비처리장을 청소하던 중 사망했다. 이달 6일에는 인천광역시 계양구 맨홀에서 사고가 발생해 2명이 숨졌다.

밀폐공간 작업 사고는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됐다. 현장 노동자들은 모두 밀폐 공간에서 유해가스를 흡입했고, 사고 당시 현장에는 관리감독자가 없었다. 또한 사고를 당한 이들은 모두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였고, 현장에서 제대로 된 장비를 갖추거나 안전 교육을 이수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 밀폐공간 질식재해 예방 안전작업 가이드를 보면, 최근 10년간 338명이 다치거나 숨졌다. 질식재해 사상자는 2021년 61명, 2022년 49명, 2023년 31명이다. 2020년 들어 질식 재해 발생 건수·사상자는 늘고 있다.

밀폐공간 작업은 고위험 환경에 속한다. 공기가 희박하고, 밀폐공간 내 유독가스 탓에 숨 쉬기 어렵다. 더불어 밀폐공간 작업은 대부분 단기간 간헐적으로 이뤄져 안전 교육 등 사고 예방을 소홀히 하는 분위기도 있다. 이는 하청 노동자들에게 떠넘겨지는 대표적인 '위험의 외주화'에 해당한다.

창원 40대 일용직 노동자 ㄱ 씨는 "특히 여름철이면 밀폐공간 내부 부패가 더 심해져 호흡하기 더욱 어렵다"며 "밀폐공간 작업 때 방독 마스크 정도만 지급하고 조심하라는 말만 하지, 상세 안전교육을 따로 받은 적 없다"고 전했다.

작업 현장에 투입되면 시간은 곧 돈이다. 안전은 뒷전이 되고, 작업을 빨리 마무리하는 데 혈안이 된다. ㄱ 씨는 "일 맡기는 사람들은 비용을 아끼려 하기에 현장에서는 최소한의 작업 장비만 지니고 투입되는 게 반복된다"고 말했다.

한국안전보건공단·고용노동부는 매해 밀폐공간 질식재해 예방 안전작업 가이드를 제작하고 있다. 가장 최근 제작된 가이드를 보면 △밀폐공간의 정의 △밀폐공간 재해 사례 △재해 예방책 △재해자 구조법 등이 상세하게 담겨있다. 그럼에도 지난해 12월, 올해 7월 밀폐공간 질식 재해가 잇따르는 등 달라지지 않고 있다.

노동계는 안내서를 제작해도 작업현장에서 유의미한 개선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견해다. 결국에는 작업현장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병훈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 노동안전국장은 "원청이 밀폐공간 작업 등 힘든 작업을 하청에 넘기면서 관리 감독 부실, 안전 교육 미이수 등으로 사고를 부르는 게 현재 구조"이라며 "하청업체가 일감을 받고 또 재하청하는 위험의 외주화가 만연한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안전을 이야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하현철 창원대 환경에너지공학부 겸임교수 또한 밀폐공간 인명사고 원인으로 △원청의 감독 부재 △위험의 외주화에 따른 안전 예산 부족 △현장 안전의식 결여 △밀폐공간 인식 부족 등을 꼽았다.

하 교수는 "우리나라 밀폐공간 작업 안전 가이드는 복잡해서 일일이 지키지 못할 정도로 세밀하게 잘 짜여있다"며 "하지만 밀폐공간 인명사고는 여러 현실적인 이유때문에 벌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원청이 밀폐공간 작업을 하청업체에 지시할 때 가이드 제공·장비 지급 등을 하더라도, 하청업체가 재하청할 때 주의사항을 전달하지 않을 수 있다"며 "게다가 하청업체들이 재하청하면서 중간에서 수수료를 떼가면, 안전 장비 지급 비용·관리자 인건비 등이 깎여나가기에 위험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상시 관리자 1명, 장비를 갖춘 작업자 2명이 밀폐공간 작업을 해야 하는데, 여건상 관리자 없이 작업자만 투입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는 설명이다.

결국 '위험의 외주화'가 인명 사고 발생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하 교수는 "원청이 밀폐공간 작업 의뢰 때 안전 지침을 하청업체에 전하고 현장관리 감독을 철저히 하는 게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노동계는 인명 사고 발생 때 원청에 책임을 무겁게 물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김 국장은 "원청이 사고 발생 때 하청업체에 책임을 전가해선 안 된다"며 "수사기관이 원청 처벌 수위를 높이는 등 원청의 확실한 감독 아래 작업하게끔 해야 한다"고 밝혔다.

/안지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