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지역정치와 닥터헬기
소음 민원에 14년째 계류장·격납고 미확보
월례공원 부지 추진도 사업절차 중단 상황
민원 취약 지역정치 한계 책임전가성 행정
해법 어려워… 내일 구의회 심의 운명 결정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에게 집단민원 발생을 무릅쓰며 일해야 한다고 다그치는 건 가혹하다. 특히 민원의 최전선에 서 있는 지방의원들일수록 그렇다. ‘여의도 정치’는 막전 막후에서 늘 치고받고 갈등하며 복잡해 보이지만 한 발 떨어져 보면 그 구도는 비교적 간명하다. 여야 정치인이 각 정파의 입장에서 여론 추이를 보며 행동한다면 적어도 표를 깎아먹지는 않는다. 반면 지방정치는 여의도 정치가 온전히 수용할 수 없는, 여러 유권자 계층의 욕망을 무시할 수 없다. 과거 문재인 정부가 수도권 공공임대주택 공급 구상을 추진했을 때 해당 지역의 더불어민주당 소속 시장·구청장과 지방의원 다수가 주민들과 함께 ‘내집 앞 공공임대주택 반대’ 물결에 동참한 것이 그 대표적 사례다. 어찌 보면 지역 정치인들에게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지도 모른다.
최근 인천에서 ‘하늘을 나는 응급실’로 불리는 닥터헬기가 정치적 쟁점으로 떠오르는 것을 보면서 민원에 취약한 지역정치의 한계를 생각해 본다. 인천은 전국에서 가장 빠른 2011년 닥터헬기를 도입했지만 1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용 계류장과 격납고를 갖추지 못했다. 인천 닥터헬기는 군부대, 공항, 경기장 등 이곳저곳을 다니며 더부살이로 얹혀 지내는 처지다. 닥터헬기 계류장 위치를 정하지 못한 이유는 ‘주민 수용성 부족’이다. 계류장 인근 주민의 소음 민원을 극복하지 못해 떠돌이 신세를 면치 못했다. 어렵게 계류장 위치를 정했고 부지 매매 계약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남동구의회가 제동을 걸면서 그 절차가 멈춰섰다.
인천시가 입안해 인천시의회(광역의회) 심의·의결을 거친 사안이지만 남동구의회(기초의회)가 재조정할 기회가 남아 있다. 정치적 공방 발생 이전에 인천시의 소극적 대응이 화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남동구 고잔동 월례공원에 닥터헬기 계류장을 신축하는 의안이 구의회에 제출되고 이 안건을 처음 심의한 지난달 13일까지 인천시 소관 부처는 남동구의회에 사전 설명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구의회에 남동구 재무과장이 나왔지만 공유재산 담당 부서장인 그는 구의회의 지적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남동구 고위 관계자는 “인천시가 남동구에 안건만 던져 놓고 구의회를 찾아와 설득하는 작업도 하지 않았으니 구의회의 부정적 반응도 이해가 간다”고 말할 정도였다. 인천시 주무 부서가 집단민원을 우려한 나머지 정면대응하지 않고 구의회로 책임을 떠넘겼다는 지적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경기도지사 재임 시절인 2019년 6월 아주대병원과 ‘응급의료 전용헬기 이착륙장 구축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긴급재난 시 헬기 착륙으로 발생되는 모든 문제는 경기도가 책임질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협약에 따라 경기도는 닥터헬기가 경기도 2천420개소에서 이착륙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했다. 경기도는 2018년 닥터헬기 24시간 운영 결정에 이어 2019년 인계점(이착륙장) 확대로 닥터헬기 운영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았다. 민원을 우려하기보다 ‘생명의 가치’를 우선시한 도정 방침을 세웠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인계점은커녕 정식 계류장조차 마련하지 못한 인천시가 배우고 참고할 만한 사례다.
인천 닥터헬기 계류장 공방은 국민의힘이 찬성하고 민주당은 반대하는 구도로 형성돼 있어 해법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계류장 사업 추진 과정에서 잘잘못을 가리기에는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닥터헬기를 운영하는 길병원과 반경 5~10㎞ 거리에 민원 없는 계류장을 찾는 건 불가능하고, 그건 중증외상센터가 길병원이 아닌 다른 병원으로 변경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이번에도 닥터헬기 계류장을 확정하지 못한다면 다음을 기약할 수 없다. 닥터헬기 계류장 논의 결과 ‘대안 없는 반대’로 결정된다면, 인천시는 또 다른 계류장을 찾는 데 수년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남동구의회 총무위원회는 22일 ‘2025년 수시분 공유재산관리계획안’과 ‘공유재산 영구시설물 축조 동의안’을 심의한다. 남동구의회의 결정에 닥터헬기의 운명이 달렸다.
/김명래 인천본사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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