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종칼럼] 어미 잃은 새끼 고양이들

현종 2025. 7. 20.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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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덕사에 갑자기 식구가 넷이나 늘었다. 포행 길에 만난 네 마리 새끼고양이 때문이다. 절에 들어온 지 두 달이 다 되어간다. 템플스테이에 온 친구들과 포행을 갔다가 숲속에서 예쁜 고양이 새끼 네 마리를 만났다. 다들 귀엽다고 사진 찍고 잠깐 놀다 헤어졌다. 옹기종기 앉아 천진난만한 눈망울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는 눈이 예뻤다.

그 다음날도 산책길에 그 아이들을 만났다. 전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자세히 보고 만질 수도 있었다. 아주 작아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했다. 그날은 그 고양이들이 나를 따라 오기에, 차마 외면할 수 없어 잠깐 놀아 주게 되었다. 다행히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젊은 친구가 고양이를 잘 알아 쓰다듬어 주고 같이 놀아주기도 했다.

그동안 어미는 통 보이지 않았다. 이건 분명 잘못됐음을 느낌으로 알았다. 털도 엉성하고 좀 야위어 보였다. 며칠 간 어미젖을 못 먹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어미는 며칠 전에 교통사고로 젖도 떼지 않은 새끼를 두고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동네 사람들이 말했다. 난감한 일이다. 이 새끼들을 그냥 둘 수 없어 우선 뭐라도 먹여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절에 전화해서 새끼들이 먹을 만한 것을 챙겨오게 하였다. 우유와 부드러운 먹이를 주니 맛있게 잘 먹었다. 그 모습을 보니 먹이만 갖다 주면 죽지 않고 살 거란 생각이 들었다.

포행 할 때마다 먹이를 갖다 주기로 했다. 그런데 먹이를 가져온 사무장이 이대로 두면 못 살고 죽는다고 절로 데려 가자고 하는 게 아닌가. 난 사실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냥 보면 귀엽고 예쁘다는 생각만 했지 내가 키워야지 하는 마음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사람들은 쳐다보고 있고, 만물을 좋아하고 사랑하며 자비행을 실천해야 하는 처지에, 그냥 두고 올 수 없어 데리고 왔다.

사무실 옆에 강아지 집을 가져다 놓고 고양이를 살게 하였다. 그런데 상추와 여러 채소를 심어 놓은 밭을 엉망으로 만들어 놨다. 밟고 뭉개고 파헤쳐 채소밭을 못 쓰게 만들어버렸다. 매정하게 뿌리치지 못해 데려온 것을 후회했다. 그래서 채소밭과 떨어진 요사채 옆으로 옮겨주었다. 채소밭은 멀어서 괜찮은데 쓰레기 봉지를 뒤집어 놓고 박스를 찢거나 헤집어 놓는 등 난리법석이었다. 이제는 제법 커서 어찌나 빠른지 달려가 잡을 수도 없다. 나무를 잘 타고 마당에 있는 탑에도 마구 올라가 놀이터처럼 놀고 있다. 참으로 민망한 것은 포대상의 어깨 위에, 머리 위에 올라가 뛰어노는 것이다.

강아지들은 하던 짓도 못하게 하면 안 하는데 고양이들은 죽기 살기로 한다. 역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낮잠을 자거나 쉬고 있을 때는 세상에 둘도 없는 천사다. 선한 표정과 호기심어린 눈망울을 보면 마음이 녹아내린다. 현덕사 방문한 사람들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고양이하고만 논다. 안고, 쓰다듬고 좋아한다. 그 고양이가 온 후로 나이 많은 흰둥이는 찬밥 신세가 되었다. 다들 고양이만 좋아해서인지 항상 시무룩해서 그 아이들을 근처에도 못 오게 으르릉거리며 싫어한다. 나라도 그랬을 거란 생각이 들 만큼 사람들이 고양이를 편애한다.

다행히 며칠 전에, 잘 키우기로 약속한 가까이 사는 비구니 스님이 한 아이를 데려 갔다. 또 신도가 한 아이를 데려 가기로 하였다. 처음에는 전부 보내려고 했는데 두 아이는 같이 살기로 하였다. 일을 저지를 때는 밉고 화도 나지만 즐겁게 온 도량을 쫓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즐겁고 행복한 미소가 지어진다.

어미 잃은 고양이들을 보면서, 시골길 다닐 때 천천히 조심 운전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어느 곳에든 동물들이 뛰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길을 가다 보면 무수히 많은 사체를 보게 되는데, 그렇게 죽은 동물들이 누구의 어미이고 새끼지 않은가. 그들도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런데 사람들의 무분별한 개발과 파괴로 무수한 생명들이 죽어가고 있다.

어찌 보면 그 동물이나 식물들이 우리 인간들보다 먼저 이 땅에서 살아온 주인들이다.굴러 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고 하듯 지금이 꼭 그런 형국이다.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다면 본래의 주인과 더불어 그들을 예우하며 함께 잘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 자연이 살아야 우리 인간도 살 수 있으므로.

현종 강릉 현덕사 주지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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