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조인간 차승우 [한경록의 캡틴락 항해일지]


한경록 | 밴드 ‘크라잉넛’ 베이시스트
기타리스트 차승우를 처음 기억하게 된 건 1990년대 중반, 소란 페스티벌에서였다. 그전에도 스친 적은 있지만, 기타리스트로서 강렬하게 각인된 순간은 고교생 차승우가 짧은 머리에 머스타드색 깁슨 에스지(SG) 기타를 들고 지미 헨드릭스의 ‘퍼플 헤이즈’를 기가 막히게 연주하던 그날이다. 게다가 공연 전의 짧은 멘트가 충격적이었다. “안녕하세요. 사실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오늘 공연 오는 길에 보컬이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그 말에 수많은 관객이 갑자기 숙연해졌다. 그는 태연히 이어 말했다. “농담입니다. 아무튼 제가 한곡 부르겠습니다.”
어이없는 멘트 후 헨드릭스의 느낌을 제대로 구현하는 연주를 보고 생각했다. ‘이 괴물은 뭐지? 사람들을 들었다 놨다 하네.’ 뒤이어 그가 연주하는 섹스피스톨스의 ‘노 필링’에 크라잉넛과 라이브클럽 드럭의 친구들은 모두 무대로 난입해 떼창하며 친구가 되었다.
그러니까 내게 차승우는, 크라잉넛과 노브레인 이성우 다음으로 홍대 음악신에서 가장 오래된 친구다. 또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기도 했다. 크라잉넛이 ‘말달리자’를 발표하고 한창 주가를 올리던 1996년께, 마산에서 무작정 펑크록 한다고 상경한 ‘불머리’ 이성우와 차승우가 만난 노브레인이라는 팀이 혜성처럼 등장했다.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은 한주씩 번갈아 마지막 팀으로 무대를 장악하며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했다. 그렇다고 사이가 나빴던 게 아니라 공연을 못 나오는 멤버가 있으면 서로 품앗이 연주를 해주며 서로의 음악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좋은 자극을 받았다.
크라잉넛이 ‘말달리자’를 만들면 노브레인은 ‘바다사나이’를 내놨고, 노브레인이 ‘청춘98’을 발표하면 크라잉넛은 ‘서커스매직유랑단’으로 응수했다. 노브레인이 ‘서울로 간 삼룡이’를 만들면 크라잉넛은 ‘양귀비’, ‘밤이 깊었네’로 답했다. 그래선지 아직도 사람들은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을 헷갈린다. 괜찮다. 이제는 헷갈릴 팀이 남아 있는 것이 고맙다.
1990년대 후반, 차승우와 특히 가까워졌다. 둘 다 인생의 격랑 속에서 방황했고, 올드팝과 록을 좋아했으며, 고민도 비슷했던 것 같다. 당시 드럭에서 공연하고 받은 밥값 3000원으로 산 소주와 과자에, 꽁초를 주워 피우며 청춘과 영화, 음악 얘기로 밤을 지새웠다. 그렇게 수많은 밤이 흘러갔고, 따로 또 같이 각자의 삶을 살아갔다. 돌이켜보니 차승우의 삶엔 파도가 참 많이도 쳤던 것 같다. 노브레인 탈퇴 후 일본 유학길에 오르더니, 귀국 후 여러 팀을 거쳤다. 배우 조승우와 영화 ‘고고70’ 주인공으로 출연해 황금촬영상 신인상까지 수상했으니, 나자레 파도 같은 서사의 록스타라 할 수 있겠다. 우리 둘 다 실수도 많이 했고 시련도 많았다. 수많은 인연이 스쳐 지나갔고, 시간이 많이 흘렀다.
차승우는 최근 몇년간 서울 연남동의 하이볼바에서 바텐더로 성실하게 일하고 있다. 기타리스트 차승우로만 보다가 바텐더로 일하는 모습을 보니 낯설기도 했다. 하지만 연차가 쌓이며 프로답게 일하는 모습을 보니 그 공간도 차승우의 또 다른 무대처럼 보였다. 어쩌면 우리는 꼭 화려한 공연장이 아니더라도 제각각 삶이라는 무대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편의점 계산대든, 사무실 책상이든, 식당 주방이든, 우리에겐 각자만의 무대가 있다. 삶이란 한편의 긴 영화 같다. 매번 불꽃처럼 타오를 수만은 없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반짝이는 순간들만이 전부는 아니다. 일상의 우리는 은은하게 빛나는 별일지도 모른다.
오래전 크라잉넛 쌍둥이 중 하나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처럼 귀에 코르크 마개를 한 차승우 그림을 그리곤 ‘개조인간 차승우’라고 써놓았다. 이유를 물으니, “개조인간이니까 개조인간이지”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차승우는 얼마 전부터 절에 다니며 불교에 귀의하여 이제는 술·담배도 끊고 명상을 하며 지낸다. 술·담배를 끊으면 로큰롤 연주할 때 좀 밋밋한 기분이지 않으냐고 물으니 맑은 정신과 육체로 쾌락을 즐겨야 진짜 ‘오방가는’(즐겁고 흥겨운) 거란다. 아무래도 차승우는 개조인간이 맞는 것 같다.
3주 전, 서울 한남동에서 6년 만에 기타리스트 차승우의 컴백 공연이 열렸다. 내게 베이스 연주 제의가 들어왔고, 나는 흔쾌히 이 흥분되는 공연에 참여했다. 8년 전 내 솔로 ‘캡틴락’ 공연에서 그가 기타 연주에 참여해 주었으니 우리의 품앗이는 계속되고 있다고나 할까.
그날 공연은 1990년대 드럭을 옮겨 놓은 듯했고 그 시절 10대였던 관객들이 이제 불혹의 노익장을 과시하며 슬램과 다이빙을 즐겼다. 말 그대로 즐거운 난장판이었다. 나도, 차승우도, 알코올의 도움 없이 무아의 세계를 경험했다. 그리고 공연 후 이날을 기념하며 흠뻑 마시고 잔뜩 취했다. 모든 게 공으로 돌아가 버렸다. 다시 시작해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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