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국 대표 동물 ‘고라니 생추어리’ 만듭시다”

한국의 야생동물은 한국 사람과 비슷한 점이 꽤 많다. 겨울잠을 자지 않는 너구리는 야근에 시달리는 직장인 같고, 성격이 급해서 포획이 어려운 고라니는 ‘빨리빨리’ 정신으로 유명한 한국인 정서와 닮은꼴이다. 과학작가이자 공학박사로, 에스에프(SF)소설과 인문과학서를 써온 곽재식 교수(숭실사이버대 환경안전공학과)가 관찰한 결과다.
‘곽재식의 아파트 생물학’,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등의 책에서 우리 주변 환경과 동물에 관해 이야기 했던 곽 교수가 이번에는 수천년 전부터 한반도의 물과 땅, 공기를 공유했던 야생의 존재들을 호명하는 책 ‘팔도 동물 열전’을 펴냈다. 환경·역사·미스터리까지 여러 주제를 종횡무진 누비던 그가 한국의 야생동물을 다룬 이유는 뭘까.
예부터 우리와 함께한 야생동물 다뤄
겨울잠 없는 너구리·성격 급한 고라니
야생동물도 ‘빨리빨리’ 한국인 비슷해
“사람·동물이 잘 사는 길 다르지 않아”
지난 11일 서울 양천구 한 회의실에서 만난 곽 교수는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일상 속 공간에도 야생이 펼쳐져 있다는 것을 밝혀보고 싶었다”고 했다. 태평양의 고래, 알래스카의 북극곰 등 자연 다큐멘터리로 접한 야생동물에 익숙해져 ‘한국에 무슨 야생이 있겠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작심하고 보면 그에 못지않게 특이하고 신기한 점이 많다”는 것이다.
책을 보면, 그의 말마따나 고대부터 현재까지 우리 곁에 야생동물이 함께하지 않은 적은 단 한순간도 없다. 예컨대 백제가 멸망한 서기 660년 ‘삼국사기’는 백제 도성 근처에 괴물이 나타났다고 적고 있는데 그 모습을 ‘들 사슴을 닮은 개’라고 묘사했다. 이 괴물은 사실 송곳니가 길게 자라난 고라니일 수 있다(20쪽). 신라의 승려 원광에게 중국으로 떠날 것을 조언한 신비한 목소리의 정체는 나중에 작은 산짐승의 것으로 밝혀졌는데, ‘해동고승전’은 이 산짐승을 ‘머리카락 빠진 검은 살쾡이’라고 적고 있다(132쪽). 곽 교수는 이 동물이 너구리일 거라 봤다. 너구리는 어릴 때 온몸이 새카맣다.

이처럼 그의 책은 충남(고라니), 경남(멧돼지), 경북(여우), 강원(청설모), 경기(너구리), 충북(붉은박쥐), 전북(담비), 전남(반달곰) 등 전국 각 지역에 주로 깃들어 살았던 동물들의 옛이야기로부터 흥미를 견인해 오늘날 동물들이 처해 있는 현실에까지 관심을 이어 붙인다.
그 가운데 곽 교수가 가장 애착을 느낀 동물은 멧돼지였다. “조사도 제일 많이 하고 실제로 보러 간 적도 있는데 그러면서 여러 고민이 많이 들었던 동물이 멧돼지입니다.” 멧돼지는 신라 시대 문인 최치원의 탄생 설화에 등장하고, 삼국시대에는 귀한 제물로 여겨질 정도로 성스러운 동물이었지만, 지금은 농작물을 해치고 시내에 출몰하는 ‘악당’처럼 그려진다.
“야생 멧돼지와 가축 돼지는 사실상 같은 종입니다. 멧돼지는 10년을 사는 반면, 농장에서 돼지는 6개월 남짓 살아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못 본다고 생각하면 좀 불쌍하다고 할까요.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그런 동물이에요.” 과학적으로도 돼지는 사람과 비슷해, 장기 이식이나 호르몬 연구에 쓰이기도 하는 등 접점이 많지만, 연구도 적고 관심도 덜하다는 것이다. 조선 이전에 살던 토종 돼지와 현재 한반도의 멧돼지가 다른 유전자를 지녔다는 사실도 밝혀진 것이 20년 남짓이라고 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대체로 동물은 과거보다 지금이 더 살기 어려울 거라 여기기 쉽지만, 곽 작가는 꼭 그렇지도 않다고 했다. “조선 말기 기록을 보면, 당시 산에 나무가 부족했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1950년부터 산림 보호를 위해 노력했고, 이후 숲이 회복되면서 번성한 동물들이 있습니다. 요즘 흔하게 볼 수 있는 청설모도 그 예죠.”
그는 외려 ‘과학 기술과 경제가 발전하면, 자연이 파괴된다’는 식의 단편적인 접근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곽 교수는 “사람이 잘 사는 길과 야생동물이 잘 사는 길은 무조건 반대가 아니”라면서 “우리가 충분한 관심을 갖고 신경 써서 연구하고 투자한다면 기술·과학이 야생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한반도에서 한번 멸종됐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복원된 여우, 반달가슴곰의 사례는 책에서도 주요하게 다뤄진다.
멸종 뒤 복원 여우·반달가슴곰 주목
“한국에 무슨 야생이 있겠냐 하지만
멧돼지 등 너무 흔해서 가치 모를 뿐”
특히 그는 기후변화로 생태계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인간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연구·투자가 우리 삶과 밀접한 문제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자연이나 환경의 가치를 경제적으로 환산하는 것 자체를 불편하게 여기는 시선이 있지만, “결국 자연을 보전하는 정부 예산과 관심이 더 꾸준히, 더 튼튼히, 더 오래 이어지게 할 수 있는 길”은 “(자연을 보호해서 얻게 되는) 이익이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돌아가는지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하기”(247쪽) 때문이다.
곽 교수는 지리산 반달가슴곰 복원이 가져올 수 있는 생태관광 효과나 지역 명소화가 미국 샌프란시스코 부둣가에 바다사자를 보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의 심리와 맞닿아 있다고 봤다. 또 하나의 묘안이 있다면, 국제적 멸종위기종이지만 한반도에만 개체 수가 늘어 유해동물이 된 고라니 생추어리(보금자리)를 짓는 것이다. “너무 흔해서 가치를 모르죠. 그런데 막상 고라니를 관찰하긴 너무 어렵습니다. 다치거나 야생성을 상실해 더는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는 고라니를 보호하면 어떨까요. 과거 한국을 상징하는 동물이 호랑이라면, 21세기 한국을 대표하는 동물이라면 단연 고라니 아니겠습니까.”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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