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걸어온 나눔의 길, 代 이어 아들도 이어갑니다

황지환기자 2025. 7. 20.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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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지간 20여년간 대 잇는 온정

이상우 상이군경회 경주시지회장
25여년간 복무 후 다리 다쳐 전역
이후 상이군경 자녀·후손들 위한
충의장학금 조성… 매년 6월 전달
보훈가족들 위문 등 봉사도 이어와

그의 아들인 이성호 포스코 직원도
입사 후 첫 월급부터 15년째 ‘동행’
STS제강부 직원들과도 나눔 실천
“마음만 있으면 봉사 시작할 수 있어
주변 사람과 봉사 기쁨 함께 나누길”
나눔의 파도 봉사단체에서 활동 중인 이성호 씨(왼쪽 두 번째).
지난해 이성호씨가 국가보훈부 장관 표창장을 전수 받고 있다.
지난 2010년부터 주위의 어려운 이들을 위해 기꺼이 월급의 일부를 장학금으로 기부하고 있는 이성호 씨
지난 6월 2025년 충의장학금 수여식에 참석한 이성호 씨가 장학금을 전달하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물방울 하나가 모여 바다를 이루듯, 한 사람의 따뜻한 마음은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된다. 선행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실천에서 시작되는 '선한 운동'이다. 경주의 한 부자(父子)가 20년 넘게 이어온 이 운동은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지역 사회를 감동시키고 있다. 이상우(70) 상이군경회 경주시지회장과 그의 아들 이성호(41) 씨 이야기다.

이성호 씨가 첫 첫 충의장학금을 기탁했던 때는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0년 5월, 포스코 입사 후 첫 월급을 타서 아버지께 전달했고, 아버지는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게 좋겠다고 말씀 하셨다.

그의 부친인 이상우 상이군경회 경주시지회장은 해병대 직업군인으로 25년 7개월간 복무하다 2001년 7월, 오른쪽 다리 등을 다쳐 전역했다. 이후 상이군경 자녀와 후손을 위해 충의장학금을 조성해 매년 6월 호국보훈의 달에 전달하며, 보훈가족 위문 등 다양한 사회봉사활동을 이어왔다.

이 씨는 아버지 권유로 해마다 충의장학금 기금조성에 참여하고 있다. 장학금 전달 외 주변의 몸이 불편한 사람들, 생활고, 저소득층 학생들의 생활을 직접 알게 돼 나름의 보람도 느꼈고 아버지와 별개로 개인 활동 뿐아니라 회사 동료들과 봉사단체 '나눔의 파도'를 통해 기부활동도 이어오는 중이다.

그는 15년째 충의장학금을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에 대해 "늘 어려운 주변 사람들을 돕는데 애쓰셨던 아버지와 가족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10살 딸 아이를 키우고 있다"며 "이 아이가 커서 저와 같은 마음으로 좋은 일을 했으면, 그래서 3대가 함께 뜻깊은 일에 동참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이라고 했다.

이성호 씨는 현재 포스코 STS 제강부에서 근무하며 스테인리스 철을 만들고 있다. 직업 특성상 여름에 매우 취약해 요즘 매우 힘들지만, 15년째 건강하게 회사 생활중에 있다. 이 씨가 속한 부서에도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어린이 재단부터 시작해서 무료급식소, 자매마을 봉사 등 선한 일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이 씨는 장학금을 월급에서 일부 떼어내 마련하고 있다. 그는 대기업에 종사 중이지만 월급 받는 입장이고 한 가족의 가장이라 큰 돈을 기부하고 싶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현재 1년 단위 적금을 만들어서 장학금 기부에 힘쓰고 있다. 그는 기부 대상자 선정에 대해 "나라를 위해 희생한 유공자 당사자 분들이라고 생각을 한다"며 "처음 기부 취지 목적과 방향도 그랬고 현재도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이성호 씨는 충의장학금 수여식에 직접 참여해 수상자들을 만났다. 이 씨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장학생으로 "몇 년도 인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장학금 비로 수학여행을 간다는 학생이 있었다"며"그 학생의 얘기를 들은 후 자신의 기부활동이 뿌듯했고, 지속적으로 이어 나가야겠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답했다.

이성호 씨는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느냐는 질문에 "아버지께 들은 말 중에서 '빛과 소금'이라는 말을 좋아한다"며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그런 역할을 하라는 뜻에서 해주셨던 말로 기억한다 학생들이 그런 신념으로 세상을 살아가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 씨는 "15년째 기부활동을 이어오는 동안 있었던 많은 일들 중 한겨울에 연탄 봉사활동을 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주변에 자신도 어려운 처지에 놓인 분들임에도 봉사활동에 참여해 일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는 분들이 있어 매우 보람됐었다"고 말했다.

이성호 씨는 끝으로 "제가 걸어다닐 수 있을 때까지 충의 장학금 기부를 이어나가고 싶다"고 말하며 "비록 큰 금액은 아니지만, 제가 받은 은혜를 조금이나마 되돌려 드린다는 마음으로 장학금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추후에는 저 혼자만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직장 동료들과도 뜻을 모아 보다 의미 있는 나눔 활동을 이어가고 싶다"며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처럼 아이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에 맞춰 매년 보육원이나 소외된 아동시설에 후원이나 선물 나눔을 실천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이 씨는 현재도 다양한 봉사활동에 참여하며, 지역 내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을 위해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해오고 있다.

특히 그는 "기부는 크고 작은 것을 떠나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지속적인 관심과 행동이야말로 진정한 나눔의 시작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누구나 마음만 있다면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이 봉사이고, 혼자보다 함께할 때 더 큰 힘을 낼 수 있다"며 "주변의 친구, 동료들과도 나눔과 봉사의 기쁨을 함께 나눠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성호 씨는 앞으로도 지역사회와 이웃을 위한 따뜻한 손길을 이어가겠다는 다짐과 함께, 자신의 삶에서 받아온 사랑을 다시 사회에 환원하며 그 의미를 넓혀가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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