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의 울산여지도] 옥현과 신화리에서 드러난 선사의 기적

김진영 편집국장 2025. 7. 20.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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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드러난 신석기인들의 땅
동북아 논농사의 원형 옥현유적
파묻어버린 선사문화의 핵심유적
김진영 편집국장·이사

# 석기제작소가 세번째 기적

 지난 한주동안 울산이 전국의 거의 모든 미디어 매체들의 주목을 받았다. 공업이나 산업과 관련된 뉴스가 아닌데도 이번처럼 뉴스의 중심에 울산이 있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반구천의 암각화가 그 주인공이다. 울산여지도에서 첫번째 기적으로 몇차례나 언급한 울산의 보물이다. 울산에는 반구천의 암각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두번째 기적으로 소개한 신암의 신석기 유적 말고도 울산의 기적은 이어진다. 모든 기적은 물길과 연관된다. 태화강의 허리로 올라가 보자. 지금은 육중한 KTX 울산역이 들어선 땅, 울주군 삼남 신화리다. 

  신화는 오래전부터 쌍수정리(雙水亭里)로 불렸다. 선사인의 땅이 대부분 그렇듯 물길이 이어지고 비옥한 땅에 삶의 터전을 열었다. 신화가 그렇다. 신불산을 굽이친 작괘천과 가천의 굴곡을 휘감은 두개의 물줄기가 하나로 합수하는 땅이다. 이런 땅을 두물머리라고 부른다. 실제로 울산의 고지도를 펼치면 지금의 신화리는 쌍수정으로 표기돼 있다.

 여기서 지난 2010년 기적같은 발굴이 이뤄졌다. 시기를 달리하는 3개의 구석기 문화층이 확인된 이 땅은 놀랍게도 선사인의 석기제작소였다. 세번째 기적이다. 한반도에서 최초로 발견된 석기제작 공장이 울산에 있다고 주장하면 '울산뽕'으로 치부하겠지만 사실이다. 대규모 석기제작소가 발견된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바로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땅은 예사롭지 않은 비밀이 숨어 있음을 말해준다. 어디 그 뿐이가. 울산에서 유일하게 발견된 세형동검부터 온돌주거지와 대형 건물지는 신비로움을 더한다. 건물 끝이 둥근 모양으로 연결돼 열쇠구멍처럼 생겼는데, 도대체 무엇을 하던 건물인지 여전히 미스터리다. 세형동검과 함께 발견된 인골 중 치아를 분석해 보니 20대 건장한 사내로 밝혀졌다. 아마도 이 사내는 오래전, 이 땅에서 막강한 힘을 가진 부족의 수장으로 영남알프스 아홉 봉우리를 호령했으리라 추측된다. 

 지금은 모든 뉴스의 중심이 반구천의 암각화에 모여져 있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반구천의 암각화를 만나기 위해 울산에 온 세계인들은 울산의 진면목을 바라보는 순간, 자신들이 알고 있던 울산에 대한 지식이 너무나 얇고 피상적인 수준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그 순간 사람들은 울산을 다시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잘못 알고 있었던 울산의 과거와 만나 그 문화의 뿌리가 한반도 인류의 원형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고 나아가 그 뿌리가 한반도를 넘어 인류사의 원형과 닿아 있다는 사실에 무릎팍을 치게 된다는 이야기다.

 필자는 오래 전부터 반구천의 암각화가 세게유산으로 지정되면 지금까지의 울산과 완전히 다른 울산이 된다고 이야기 해왔다. 바로 이 부분 때문이다. 적어도 울산에 대한 관심을 갖게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면 울산은 현대사의 반세기로 만들어진 굴뚝과 공업도시의 이미지를 벗고 인류사의 뿌리를 이야기하는 역사문화도시로 새롭게 조명된다는 이야기였다. 울산은 이미 자연사와 지질사에서 독특한 원형을 가진 보물창고로 재발견 되는 중이다. 여기에 도시 곳곳에 공룡발자국이 발견되고 공룡에게 울산이라는 이름의 학술명이 만들어지면서 자연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가지게 됐다. 자연스럽게 울산인들은 우리가 사는 이 땅을 문화유산으로 바라보고 이를 체계적으로 보호하고 관리를 하기 위한 작업에 팔을 걷기 시작했다. 울산의 재발견이 시작된 셈이다.

  

  # 네번째 기적은 논농사의 원형

 울산이 가진 자연사의 보물은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바닷가에 켜켜히 층위를 이룬 주상절리부터 타포니 해안의 기암괴석까지는 맛보기 정도다. 바다에서 육지로 눈을 돌리면 지질의 보물창고와 마주한다. 가지산 정상부에 장군이 칼을 꽂아 놓은듯한 비석 같은 바위가 우뚝하다. 주변에는 핵석들을 모아 놓은 바위 군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 바위 위에서 해가 뜰 때나 석양이 바위에 걸린 모습들은 출사작가들의 으뜸 포인트다. 토르(tor)는 영국 다트무어(Dartmoor) 지방의 화강암 암괴를 지칭하는 지방어로, '똑바로 서 있는 석탑'이라는 의미한다. 가지산 토르와 핵석이 있는 곳은 중생대 백악기 흑운모 화강암이 분포하는 곳으로 '언양 화강암'이라 불리는 큰 암반이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이 부분이 울산에서 만나는 네 번째 기적은 아니다. 울산이 웅변하는 네 번쩨 기적은 놀랍게도 땅 속에서 수천년 동안 파묻혀 있었다.

 지난 1998년의 일이다. 울산대학교 앞 황량한 논밭이 개발의 삽질로 요란했다. 무거동 옥현 지구 택지개발 사업 현장이었다. 불도저가 요란하게 땅을 파헤치자 동북아 논농사의 뚜렷한 흔적이 지문처럼 드러났다. 한반도 고고학계의 기적이었다. 불도저의 육중한 삽질 아래에는 동북아에서 볼 수 없었던 고대 수경 논농사 흔적이 나타났다. 안타깝게도 이 어마어마한 발견은 잠시 요란했지만 금새 뉴스에서 사라졌다. 개발논리에 밀린 뼈아픈 행정의 만행이었지만 제대로 보존하지 않은채 묻어버렸다. 대충 수습하고 보고서 하나 남기면 그뿐이라는 만행이 울산 땅 곳곳에서 벌어지던 시기였다. 네 번째 기적의 땅 옥현유적의 현실이다. 당시 유적 보존의 결정권을 가진 문화재 당국은 그래도 양심은 있었던지 '유적전시관'을 지어 체면치레를 했지만 그마저도 몇해 뒤 인건비가 든다며 폐쇄해버렸다.

 옥현 유적은 청동기 시대 집자리와 논이 처음으로 확인된 고대사의 중요한 유적이다. 이 곳에서는 청동기시대의 집자리가 여러 채 드러났고 독특한 모양도 여럿이었다. 가장자리에는 벽을 세운 기둥의 흔적과 물을 빼기 위한 배수구 등도 뚜렷했다. 벽은 홈을 파고 판자를 세우는데, 배수구 내에 작은 기둥을 촘촘히 박아 보강한 흔적은 선사인의 솜씨라고 하기엔 놀라울 뿐이었다. 이런 집자리가 있는 언덕 사이에서부터 골짜기를 따라 도랑도 보였다. 논과 논 사이의 수로였다. 기계식 수리기술이 없던 시절에는 빗물을 이용하는 천수답 농법이 필요했고 인공의 힘으로 물을 모아 상시급수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런 희귀한 흔적을 문화재 당국은 무슨 영문인지 덮어버렸다. 경을 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