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전남 할퀸 극한호우…남겨진 자리엔 농부들 한숨만

박정석 기자 2025. 7. 20.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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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지중지 기운 토마토·오이 등 낙과
수확 적기 덮친 폭우에 발만 ‘동동’
침수로 작물 오염…재배 설비는 먹통
대민 지원·피해 보전 등 도움 절실
역대급 폭우로 전국 곳곳에서 인명·재산 피해가 속출한 가운데 20일 전남 나주시 동강면의 한 비닐하우스에서 농민이 침수 피해를 입은 방울토마토를 살펴보고 있다. 지난 17일부터 사흘간 광주·전남에는 400∼600㎜의 극한호우가 쏟아져 주택, 상가, 농경지, 도로 곳곳이 침수됐다. 나주/임문철 기자 35mm@namdonews.com

"피해가 너무 커 농사를 접고 싶은 마음까지 듭니다."

20일 오전 전라남도 나주시 동강면 대지리에서 방울토마토 농가를 운영하고 있는 윤상근(50) 씨는 하우스 내부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출하를 위해 수확에 한창 열을 올려야 할 시기에 찾아온 극한호우로 농장이 아수라장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지난 17일부터 19일까지 사흘간 내린 기록적인 폭우로 밭고랑은 여전히 흥건하게 젖어 있었고, 발을 내딛기도 어려워 복구작업에 나서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농기계엔 흙탕물이 입혀져 있었으며, 가재도구들은 빗물에 떠밀려 여기저기에 널부러져 있었다.

물 웅덩이 위로 떨어진 방울토마토엔 벌써부터 곰팡이가 생겨나기 시작해 악취를 풍겼고, 이파리는 점점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특히나 윤 씨의 농장은 스마트팜 형태로 조성돼 있어 농작물 피해에 더해 전기 설비가 먹통이 되는 등 시설물 피해도 만만치 않게 발생했다.

오염된 물을 통해 세균에 감염될 경우 시들음병이라고 알려진 '청고병'에 걸리게 되는데, 하우스 안으로 들어찬 빗물로 인해 모든 방울토마토 나무가 세균에 감염됐을 것이라는 게 윤 씨의 설명이다. 기상 상황과 작물의 생육에 맞춰 물과 영양제 등을 공급해주는 설비 또한 오염된 빗물에 노출돼 더 이상 사용하기 어렵다고 한다.

딸기를 재배했던 지난해 겨울, 윤 씨는 3주간 해가 뜨지 않아 일조량 부족을 겪으며 큰 피해를 입었다. 이후 딸기 농사를 접고 방울토마토를 통해 장밋빛 미래를 그렸지만 올해도 수포로 돌아갈 처지에 놓이게 됐다.

윤 씨는 "비 예보를 접하고 아침 일찍부터 침수에 대비했지만 자연에 맞서기엔 역부족이었다"며 "이미 벌어진 일은 그렇다 쳐도 다음 작기를 위해 농장을 수습해야 하는데 인력도, 비용도 만만치 않아 걱정이 크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절반은 오기로, 절반은 가능성으로 버티는데 사람 힘으로만 될 일은 아닌 것 같다"며 "시쳇말로 어느 정도 값을 쳐준다고 한다면 팔고 떠나고 싶은 마음도 굴뚝 같다"고 말했다.
 
역대급 폭우로 전국 곳곳에서 인명·재산 피해가 속출한 가운데 20일 전남 나주시 동강면 한 오이 비닐하우스에서 농민이 물에 잠긴 하우스를 살펴보고 있다. 지난 17일부터 사흘간 광주·전남에는 400∼600㎜의 극한호우가 쏟아져 주택, 상가, 농경지, 도로 곳곳이 침수됐다. 나주/임문철 기자 35mm@namdonews.com

윤 씨의 농장 인근에서 오이와 애호박을 재배하고 있는 정모 씨 역시 이번 폭우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비가 내리던 당시 농장으로 달려가 빗물이라도 퍼낼 생각으로 집을 나섰으나, 농장으로 가는 농로가 모두 침수돼 애지중지 키운 작물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비가 잦아든 뒤 농장으로 황급히 달려가봤지만 그때는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었다고 한다. 몇 개라도 건져볼 마음에 끼니까지 거르며 수습에 나섰지만 상품성 있는 것들을 찾기 어려웠다.

정 씨는 "마음은 아프지만 일단 눈 앞에 벌어진 상황을 수습하는 게 우선"이라며 "일손이 부족해 대민 지원이나 자원봉사라도 많이 와주면 조금 힘이 날 것 같다"며 피해 농가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희망했다.

한편, 전남에는 17일부터 19일까지 광양 백운산 601㎜, 담양 봉산 540.5㎜, 구례 성삼재 516㎜, 곡성 옥과 503.5㎜, 곡성 445.3㎜, 구례 425.5㎜, 나주 410.8㎜, 화순 380.6㎜ 등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박정석 기자 pjs@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