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주년-다시 평화] 민간인 학살 역사 파고든 시선

이서후 기자 2025. 7. 20.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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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구자환 감독이 본 전쟁과 평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다큐 영화 제작
"전쟁 현장은 피해자 관점 먼저 설명돼야"
학살 역사 여전히 반복 "고리 끊으려면 화해부터"

전쟁은 살아남은 자에 의해 기록된다. 그리고 대부분 국가의 시선에서 쓰인 역사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던 수많은 개인의 이야기가 있다. 그들 중 일부는 가해자가, 또 다른 일부는 피해자가 되었다. 한국 전쟁과 베트남전 그리고 이들 전쟁에 존재했던 민간인 학살이 있다. 아직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이 사건들은 여전히 응어리로 남아 있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을 다룬 연작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구자환(58) 감독은 이런 비극을 넘어 평화로 나아가려면 진실 규명과 국가적 사과 그리고 치유의 과정으로 이어지는 화해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책임 없는 화해는 없다. 기억 없는 평화도 없다. 구 감독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전쟁을 어떻게 기억할지 그리고 어떤 미래를 만들지 고민해 본다.

전쟁과 학살, 화해와 평화에 관해 이야기하는 구자환 감독. /이서후 기자 
오직 살아남으려는 발버둥 = 구 감독만큼 민간인 학살 피해자를 많이 만난 이는 드물 것이다. 한국전쟁 상황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 내용을 자세히 조사하고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든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전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전쟁은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어요. 우선은 특정 권력·소수 집단의 이익입니다. 다른 하나는 전쟁 현장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사람들의 몸부림이죠. 실제 전투 현장은 군인이든 민간인이든 각자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이뤄집니다. 이건 모든 전쟁에 공통으로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따지고 보면 민간인 학살도 피해자든 가해자든 모두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 결과입니다. 양쪽 모두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됩니다. 전쟁은 국가와 이념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 전쟁 현장은 묻힙니다. 보통 전쟁 관련 보도는 누가 이기고 지는지, 누가 누구랑 편을 먹는지 등 마치 게임처럼 보도하고 있어요. 영화를 만들 때도 전쟁 영화엔 온갖 미화가 더해집니다. 자본·국가 권력이 전쟁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죠. 하지만, 중요한 건 결국 사람의 생명이 아니겠어요? 전쟁터 안에 있는 사람이 중요한 거죠. "

그의 이야기는 결국 전쟁의 참상을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계속 만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이유가 아니라면 내가 이걸 할 이유가 없어요. 예를 들어 인민군 점령지에서는 군인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30대까지는 다 징집을 했어요. 인민군에 징집당한 이들이 탈출했다가 국군에 잡혀서 다시 국군으로 입대한 일도 많았어요. 이런 사람들이 과연 조국을 위해서 싸운 걸까요? 저는 살아남기 위해서 싸웠다고 봅니다.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친 거죠."

구 감독이 말하는 '전투 현장에서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이 베트남 전쟁에서 민간인을 잔인하게 죽였다는 한국군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그는 생명, 인권의 관점으로 보면 한국전쟁과 다름이 없다고 강조한다.

"전투 현장에서 정파적인 관점이나 진영은 필요 없습니다. 베트남에서 한국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의 잔혹성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기의 학살이 용인되던 분위기 속에서 자라났을 겁니다. 한국인의 용맹성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 상황에선 인간성이 무너지고 잔인해질 수 밖에 없었던 거라고 볼 수도 있어요. 전우가 죽어버리면 그 순간 눈이 뒤집히고 잔인해지는 심리라고 할까요. 하지만, 베트남 전쟁 역시 피해자들의 관점이 먼저 들어가야 합니다. 그다음 가해자의 관점, 정치적인 원인 등이 설명돼야 하겠죠. 피해자들이 당했던 고통은 하나도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사람들이 무얼 느낄 수 있을까요?  "

한국전쟁 전후 충남 태안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태안〉중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며 울먹이는 희생자 유족./구자환
한국전쟁 전후 충남 태안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태안〉중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며 울먹이는 희생자 유족./구자환
한국전쟁 전후 전남 장흥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장흥: 1950〉 한 장면. /구자환 
계속되는 학살의 역사 = 그는 학살의 역사가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중동 전쟁뿐 아니라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난다는 설명이다.

"과거와 형태가 달라졌지만, 학살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어요. 한국전쟁 때는 전쟁 때니까 정치적 이유로 학살을 했었고, 이후에도 법이라는 제도를 통하긴 했어도 사형 등으로 정치적으로 반대편인 이들의 목숨을 뺏었죠. 저는 우리나라가 민주화가 많이 되어서 이제 사회적 생명은 뺏을 수 있을지 몰라도 직접적으로 생명을 빼앗진 못할 것으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판단조차도 틀렸다는 걸 이번에 느꼈어요. 작년에 있었던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 때 실제로 사람을 죽이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깜짝 놀랐죠. 나는 정말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었다고, 민주주의가 자리 잡았다고 생각했었거든. 근데 안 그런 거야. 만약 12월 3일 계엄이 성공했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여전히 변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어요. 이 문제를 국가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학살은 또 일어날 수 있습니다."

구 감독은 학살의 고리를 끊으려면 화해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했다. 과거 학살 사건들이 화해라는 형태로 정리가 되어야 다시는 그런 비극을 일으킬 생각조차 못 하는 사회를 만들 토대가 마련된다는 뜻이다.

지난해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자정께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본관으로 계엄군이 진입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화해를 하는 단계를 간추리면, 일단은 진실 규명이 돼야 합니다. 다음에 가해자 처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고는 피해자에 대한 국가적인 차원의 보상이 있어야 해요. 하지만, 지금 우리 역사를 보면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빠져 있어요. 이미 많이들 죽어버려서 현실적으로 처벌 자체가 불가능하죠. 후손들이 자기 선대의 그 잘못에 대해서 대신 사과를 하고 그러면 위로는 되겠는데, 그런 사람들도 거의 없어요." 

그렇다면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빠져 있는 상태에서 어떻게 화해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구 감독은 결국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학자들이라든지 유족들하고 논의를 거쳐서 1년에 한 번 현충일에 추모하듯이 국군이든, 적대세력이든, 미군이든 개별 학살 사건들을 다 포함해서 '공동 추모일'을 만드는 거죠. '과거에 이런 괴로운 역사가 있었고, 국가가 국민을 지키지 못했고 보호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앞으로 이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도록 국가가 약속을 하겠다.' 매년 이런 취지의 추모 행사만 하더라도 충분할 것 같아요. 우리가 민간인 학살 사건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결국 화해잖아요. 이 질곡의 역사를 미래 세대한테 더 이상 물려주지 말자는 거죠."

/이서후 백솔빈 기자 

※ 이 기사는 지원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