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차트 사로잡은 AI 밴드?…‘진짜 음악’의 의미를 묻다
글로벌 창작자들, 무분별한 AI 활용에 강력 반발
(시사저널=하재근 국제사이버대 특임교수)
지난 6월에 데뷔한 신인 인디 록밴드 '벨벳 선다운(The Velvet Sundown)'이 화제다. 6월5일 데뷔 앨범 '플로팅 온 에코스(Floating on Echoes)'를 발표했는데, 한 달 만에 스포티파이 월간 청취자 수 110만 명을 돌파했다. 1970년대 히트곡 《더스트 인 더 윈드(Dust in the Wind)》와 매우 흡사한 제목인 이들의 대표곡 《더스트 온 더 윈드(Dust on the Wind)》는 영국, 노르웨이, 스웨덴 스포티파이 '바이럴 50' 차트 1위에 올랐다. 이 노래는 스포티파이 '베트남 전쟁 음악' 플레이리스트에서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CCR)의 명곡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기업적 홍보나 소셜미디어 화제 같은 특별한 이벤트 없이 순수하게 노래만으로 이룬 성과라서 더욱 놀랍다. 이들은 최신 전자 음악 스타일이 아닌 1970년대 올드록 분위기를 재현한 복고풍 음악을 들려줬다. 옛 추억을 떠올리거나, 따뜻한 아날로그 분위기에 편안함을 느낀 청자가 많았을 것이다.

스포티파이 1위 음악, 사실은 인공지능 작품
그러던 이들의 행보에 의혹이 제기됐다. 멤버 누구도 실제 무대에 나선 적이 없다는 것이다. SNS 사진 속 멤버들의 모습도 어딘가 부자연스럽다는 지적이 나왔다. 6월에 앨범을 발표했는데, 7월 신곡 발표를 예고한 점도 의아함을 자아냈다. 사람이라면 이런 속도로 연달아 곡을 발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공개한 사진 속에서 인공지능(AI) 스타일이 발견되자 밴드가 AI라는 소문이 급속도로 퍼졌다. 특히 스포티파이의 맞춤형 서비스를 통해 벨벳 선다운의 노래가 자주 노출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미국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인 레딧의 네티즌 수사대가 밴드의 정체를 캐기 시작했다.
그러자 벨벳 선다운은 공식 계정을 통해 "증거도 없이 'AI가 만든 밴드'라고 근거 없는 이론을 퍼뜨리는 건 정말 미친 짓"이라며 "캘리포니아의 비좁은 방갈로에서 땀 흘리며 긴 밤을 보내며 진짜 악기, 진짜 마음, 진짜 영혼으로 쓴 우리 음악이다. 모든 코드와 가사, 실수까지 모두 인간적"이라고 했다. "우리는 완전히 진짜 같은 밴드에 속한 진짜 사람들로 구성된 그룹이다. 우리는 AI를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7월2일 밴드를 대변한다고 주장한 가명의 인물이 이 프로젝트가 인공지능 사기극이었다고 주장했고, 결국 7월6일 밴드 측은 프로필을 통해 이를 공식 인정했다. "인간의 창작 지도하에 AI로 만들어진 음악"이며 "이 밴드는 인간의 창의적 지휘에 따라 작곡, 보컬, 시각화 등 과정을 AI의 지원을 받아 진행하는 합성 음악 프로젝트"라고 말이다. 이어 "이것은 속임수가 아니다. 거울과 같다. AI 시대에 음악의 창작성, 정체성, 그리고 미래의 경계에 도전하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되는 예술적 도전"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7월14일 신곡 공개에 앞서 "우리를 진짜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너희는 진짜일까?"라는 메시지를 내놓기도 했다.
밴드가 인공지능의 산물이라고 밝혀졌음에도 반응은 여전히 뜨겁다. 스포티파이 청취자 수는 소폭 늘어 7월12일 기준 128만 명을 기록했다. 많은 누리꾼은 '음악이 좋으냐 나쁘냐가 중요하지, 사람이냐 인공지능이냐는 알 바 아니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업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AI가 히트곡은 물론 인기 가수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됐기 때문이다. 파비안 스테파니 옥스퍼드대 AI 및 노동 분야 교수는 뉴스위크에 "벨벳 선다운 같은 밴드가 월간 청취자 수 100만 명을 확보하게 되면서 감동적인 노래는 인간만이 쓸 수 있다는 오랜 믿음에 균열이 생겼다"며 "알고리즘이 사람 감정까지도 자극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인간과 기계의 창의성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음악 시장에서 AI가 인간의 영역 침범"
그런데 사실 감동적인 노래는 인간만이 쓸 수 있다는 오랜 믿음은 꽤 오래전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대중이 좋아하는 노래에는 어떤 법칙이 있다. 그걸 명확히 도식화할 수는 없지만 감이 좋은 소수의 사람은 그런 법칙을 체화해 많은 히트곡을 만들어냈다. 과거 이세돌과의 바둑 대결을 통해 AI의 머신러닝 기술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은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지금까지의 히트곡을 다 학습해 그 패턴을 파악하면 히트곡 창작도 가능하겠네?'였다. 바둑 기보를 학습했다면 히트곡 악보도, 히트 영화 대본도 학습할 수 있을 것이다.
벨벳 선다운 사건은 마침내 AI가 정규 음원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준다. 워싱턴포스트는 이 사건에 대해 "음악 시장에서 AI가 인간의 영역을 대거 침범할 것을 보여주는 신호탄"이라고 했다. 음악 창작자들은 실질적인 위협을 느낄 것이다. 지금도 많은 창작자가 AI를 창작의 보조기구로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앞으로는 AI가 일부 창작자의 일을 아예 대체하는 수준까지 갈 수 있다.
서구에선 지난해 정책 개입 없이 AI 도입이 가속화될 경우, 음악산업 종사자들의 소득이 향후 4년간 20% 이상 감소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반면, AI 음악 시장 규모는 2023년 1000만 유로(약 160억원)에서 2027년 40억 유로(약 6조원)로 고성장할 것으로 예측됐다.
위기를 느낀 세계적 음악가들은 자신의 음악이 AI 머신러닝에 사용되는 것을 반대한다는 서한을 발표했다. 영국의 팝스타들은 상원 의원들과 함께 "영국 정부가 AI 기업의 음악 도용을 합법화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음원을 공개할 때 AI 활용 여부를 밝히도록 하거나, 사람의 창작물과 기계의 음악을 분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프랑스의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 디저(Deezer)는 "AI 생성 음원은 허용하지 않는다"며 벨벳 선다운의 음악 제공을 중단했다. 하지만 스포티파이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앞에서 이 밴드의 노래가 스포티파이의 맞춤형 서비스를 통해 자주 노출된 것이 레딧 이용자들이 밴드의 정체를 파헤치게 된 계기 중 하나라고 언급했다. 지난해 말, 하퍼스 매거진은 스포티파이가 로열티 지출을 줄이기 위해 '고스트 아티스트'의 음악을 자사 플레이리스트에 삽입한다는 의혹을 제기했었다. 플랫폼이 의도적으로 AI 음악을 밀어줘 인간의 입지 축소를 가속한 것일까.
너무나 급격하고 무분별한 변화는 문제가 될 수 있다. 다만 AI 기술의 발전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앞으로도 여러 논란이 있겠지만 결국 기술 발전은 필연이다. 음악 업계도 AI 활용법을 연구해야 할 시점이고, 관련 기관은 그 과정에서 부작용이 최소화되도록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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