쿰다 정신, 제주가 말하는 포용의 방식

만일 바다를 표류하는 다른 무언가가 왔을 때, 이를 내치는 것과 받아들이는 일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는 분명하다. 섬이라는 지형적 특성상, 제주에서의 이런 문제는 역사적으로 훨씬 더 근거가 깊을 수도 있다. 반면에 육지 그리고 산촌의 경우, 이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산이란 찾아서 들어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섬이란 굳이 먼저 원해서 찾아 들어가는 곳이라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표류민들에게 있어 섬은 단순한 섬이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육지이며, 땅이고 생존이기 때문이다. 다른 선택지가 없는 셈이다. 하지만 그 주인인 제주는 선택할 수 있다. 아니 제주를 고향으로 삼고 살아온 사람들은 판단의 권리를 가진다. 내칠 것인가, 받아들일 것인가? 배려와 관용의 아름다움을 통해 생명의 은혜를 베풀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김준표는 정체성의 이해라는 관점을 동원한다.
"제주의 쿰다 문화는 이질성을 불편해하지 않으면서 이질적인 이주자들을 '드르쌍 내분다'(간섭하지 않고 내버려둔다). '드르쌍 내불멍'(건드리지 않고 내버려두면서) '질루 질썩'(각자 자기 방식대로 자기 몫을) 살아가는 과정을 통해 벗이 되고 궨당이 되어 '드르쿰는다'(품어간다)."
제주의 정체성에 관한 정리이다.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가르침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받아들여질지는 참으로 의심스럽다. 하지만 증오와 미움을 바꾸어 정신적 승화를 이뤄내며 차원을 달리하는 정신세계를 확장하는 일이야말로 참되다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마음의 상태를 과연 어떻게 부를 수 있을까? 사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쿰다'는 아리랑과 결부된 한국적 한(恨)의 심리와도 만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들이 얼마나 가까울지 지금으로서는 정확히 판단하긴 어렵다.
다만 '쿰다와' 관련하여 일련의 가치 실천이란 부분을 생각해 볼 수는 있다. 그 핵심은 공동체와 개인 또는 부분과 전체의 상호 작용에 관한 문제다. 여기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언급은 '弘益人間 在世理化'요, '包含三敎 接化群生'이다. 한국적 '화(化)'라는 '됨과 이루어짐'의 가르침이다. 어쩌면 '화(化)'의 정신이란, 일상의 생활문화 속에서 구현된 ᄒᆞᆫ의 철학과 같다. '나와 네가 다르지 않고, 우리로 만나는 문화', '어울림과 어우러짐의 지혜'라는 통화(通化)의 세계인 것이다. 이는 일정한 개인주의적 요소를 넘어 전체 공동체의 의미를 포함하는데, 이로부터 쿰다의 이중적 사유 또한 이해해 볼 수 있다.
한(恨)의 정서란 결국 한국적 정신의 차원적 승화라 할 것인데, 이를 제주 방언 '드르쿰다'에서 찾는다고 하면 너무 앞서 나간 셈일까? 아니다. ᄒᆞᆫ[韓]과 한(恨)은 자기 자신에 관한 것이며, 우리[즉, 一]이라는 개념에 따른 공동체의 원리가 된다. 현실에서는 삭히고 함께하는 어울림 곧 어우러짐의 의미를 생성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경우, 한(恨)은 어느 한순간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과거를 청산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끌어안는 것이다. '나를 버리고 가신 임도 끌어안는'다. 함께 가야 할 공동체 내에서 약자에 대한 배척과 배제가 당연시된다면, 이는 유지해 나가야 할 공동체의 도(道)로서는 적절하지 못하다.
여기에 홍익인간과 재세이화를 말한 신화적 세계관의 놀라움이 있다. 화(化)함의 철학을 말하기 때문이다. 신화와 철학은 사실상 민족의 출발에서부터 지녀 내려왔던 한국적 집단의식 또는 민족적 DNA를 말한다. 이는 상호 관계의 원리이기도 한데, 화(化)라는 글자 속에 그 이치가 담겨있다. 이러한 화(化)의 의미는 중국의 화(華)나 일본의 화(和)와는 그 내용과 양상이 서로 다르다. 때로 이는 한국 문화가 중국·일본의 그것과는 다른 이유를 설명해주는 중요한 개념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화(化)의 상형이 강자와 약자가 서로 기대고 의지하며 보호하는 뜻을 포함하고 있음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우리로 하나 되는' 한철학적 가치 실천의 해결책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만약 '쿰다'의 의미에서 품어 삭힘이란 해석이 가능하다면, 이는 내면적으로는 다름에 대한 저항의 감정을 가지면서도, 외면적으로는 감싸 안는 이중적인 상태를 지칭하는 것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는 제주의 생활문화로, 비록 싫어도 내색하지 않으면서 끌어안고 함께 가는 제주의 살림살이라는 사회 현상을 기초하게 된다. 그리고 개인화 개별화 파편화된 사회 속에서 이것이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고 나면, 개인적으로는 비록 혐오의 마음이 있다고 할지라도 이를 대놓고 드러낸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결국, 함께 그리고 같이 가기 위한 최고의 선택은 마침내 '쿰다의 문화'가 승인하고 인정하는 방식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침내 쿰다란, 나와 다른 타자를 그대로 감싸 안음의 철학이자, 다름의 인식이며, 관용의 가치가 된다. 이로써 '나와 네가 아니라, 우리'라는 만남으로, 부정의 변증법을 초월하는 것이다. 이로부터 '우리'를 이루면, 품어 안은 공동체의 질서 또한 제자리를 갖추게 된다.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제주의 쿰다는 나름의 한철학적인 '제주 살림살이의 문화'를 형성해 왔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쿰다'는 실로 제주만의 '어우러지는 삶'의 태도와 문화를 정초하고 있으며, 이런 사실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 이는 타지인을 타인으로써만 보지 않고 자화(自化)함으로써 제주의 포용력을 드러낸 것이며, 동시에 자신을 타자화함으로써 어울림의 영역을 확대해 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주 문화의 저변에는 일정한 정신 즉 철학이 자리하고 있음 또한 알려준다. 그 정신이란 결국 세계의 존재와 이해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된 실천이라는 체계를 갖춘바, 곧 올바름에 대한 가치관을 토대로 한 것이다.
이제 이로부터 쿰다의 사회 문화학적 함의를 확대 재생산해 나간다면, 이는 곧 세계인과 함께하는 '한류(韓流)의 정신'이라는 보편적 특징을 지역적으로 밝혀내는 글로칼리티의 중요한 동기가 될 것이 틀림없다. 비록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너와 나가 만나 우리'로 승화하는 한사상 그리고 제주 '쿰다'의 지혜가 필요한 오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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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 학술지 '탐라문화'(제68호, 2021. 11.)에 '쿰다와 ㅎㆍㄴ, 그리고 21세기'이라는 제목으로 실은 논문을 '제주의 소리'에 싣기 위해 일부 수정, 요약, 정리한 것이다.
중원(中垣) 민영현(閔泳炫)
경상남도 사천 출생, 철학박사.
부산대, 한국해양대, 동명대, 대구한의대 출강.
ONN닥터TV <명리학개론 실전사주풀이> 담당 진행.
<천부삼일원> - 양자·기학 연구소 心柱(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