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지가 택지로, 거친 강이 도시의 숨이 되는 ‘구리 왕숙천’ 이야기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수해 많았던 구리
수택동, 1989년엔 이재민 8천명 발생하기도
도시 두 면 강으로 둘러싸여 ‘치수’ 중요 행정
수해 잔해 역이용해 조성한 습지 맹꽁이 서식
왕숙천 낚시 ‘인기’ 수력발전소 인근에선 참게
관동사람들이 서울 가던 길이라는 점도 주목

일주일째 내린 호우로 전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구리시는 이번 비를 큰 탈 없이 넘어가고 있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구리시는 여름이 무서운 도시였다. 도시 남쪽이 한강과 맞닿고, 동쪽 경계에 왕숙천이 흘러 큰 비가 내리면 도시가 물에 잠기기 십상이었다.
지난 18일 잠깐 비가 그친 틈을 타 구리한강시민공원에서 출발해 왕숙천을 따라 왕숙철교까지 하천길을 따라 대략 8㎞를 걸었다.
그 사이 만난 습지가 세 곳. 그 중 ‘수택지’를 소개하는 글에서, 시는 “수택리 주변은 예로부터 물이 많고 늪으로 둘러쌓여 수택(水澤)이란 이름이 붙여졌다”면서 “주변의 범람원과 배후 습지로 인해 수택리 인근에는 취락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했는데, 일제강점기 이례적인 홍수 이후로 촌락이 더욱 축소됐다”고 안내했다. 심지어 현재 수택2동 행정복지센터가 있는 원수택은 ‘수누피’로 불리는데, 그 어원이 ‘수늪이’이니 사람이 살기 어려웠을 것을 유추하긴 어렵지 않다.


‘디지털구리문화대전’은 1925년 7월9일부터 18일사이 2차례 태풍으로 한강유역에서 20세기 최대 홍수가 났고, 한강 지류인 왕숙천 물도 넘쳐 퇴계원에까지 덮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일로 토평 벌말 돌섬 지역의 취락인구가 크게 줄고 수택리 너머로 이주를 했다고 한다.
그 이후에도 수택동은 사나운 비의 먹잇감이 되곤 했다. 1989년 8월 집중호우로 8천명 이재민 발생, 그 이듬해 9월 집중호우로 8천136명이 피해를 입었다. 새 천년이 되어 규모는 줄었지만 피해는 여전했다. 2001년 2명의 인명 피해 및 주택 수십채 침수, 2010년 토평지구 원룸 200여채가 침수됐다는 기록이 있다.
도시 두 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구리시에겐 ‘치수’가 매우 중요한 행정일 수밖에 없다. 같은 글은, “구리시는 홍수 이외의 원인에 의한 자연 재해 발생 빈도가 높지 않은 지역”이라며 “구리에서 발생한 자연 재해 가운데 가장 취약한 부분은 수해와 관련된 것”이라고 적었다.
이날 기자를 안내한 한철수 구지옛생활연구소장은 수택빗물펌프장과 제방을 여러차례 강조했다. 홍수를 막는 두 시설로 인해 구리시민의 삶의 질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수해방지대책이 효과를 발휘한 이후 2011년 7월 3일간 475㎜의 비가 내렸으나 인명피해가 없었다. 앞서 인명피해를 냈던 때 350㎜ 내외가 내렸던 것을 생각하면 2011년쯤 되어서야 구리시가 여름철 물난리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있다.

‘치수’에 성공하면서 왕숙천은 친수구역으로서 생활의 질을 높이는데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과거 수해의 잔해를 역이용해 조성한 습지에서는 맹꽁이 울음소리를 들었다. 맹꽁이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된 보호종이다.
제방길은 자전거, 산책로, 차도 등으로 각각 구분해 쓰고 있다. 그라운드골프장 개수가 다섯손가락을 벗어나고, 유아를 위한 물놀이장, 교각 밑 무대 등 다양한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왕숙천 둔치가 상당히 넓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특히 재미난 것은 왕숙천이 인기있는 낚시터라는 점이다. ‘왕숙천 낚시’·‘왕숙천 배스’ 등의 검색어가 인기 있을 정도로 왕숙천에서는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연간 100여 가구가 쓸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하는 ‘수력발전소’ (토평소수력 발전소) 인근에서는 낙차가 심한 물길에 정신을 놓은 참게를 잡는 사람들도 볼 수 있다. 아침 일찍 발품을 판 한 낚시꾼은 상당한 양의 참게를 잡아 경동시장에 1㎏당 1만6천원에 판매했다는 전언도 들을 수 있었다.


이 하천길이 예로부터 관동사람들이 서울(한양)가기 위해 쓰던 길이었음도 주목할만 하다. 경북 울진의 평해읍에서 올라와 양평과 남양주 구리를 거쳐 한양에 당도하는 ‘평해길’의 거의 마지막 지점이 왕숙천길이다. 이 하천 합수머리 부근에 있는 미음나루에서 구리역까지 하천을 따라 이어진다.
왕숙천 이름은 태조 이성계가 여러 날을 이 하천 인근에서 묶어 붙여졌다 하는데, 그 장소는 왕숙천 하구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습지에서 묵었을리도 없을려니와, 태조와 얽힌 이 하천과 일대 땅의 역사는 지명에 고스란히 새겨 있는데, 그 중 ‘팔야리’가 있다. 팔야리 지명의 뜻이 임금이 여덟밤을 묵었다고 해서 ‘팔야리’라고 한다. 팔야리는 남양주시 진접읍에 속하고 그곳의 물줄기는 왕숙천으로 합류한다.
한편 지난 19일 경기북부 포천 가평 등에 쏟아진 호우로 평소 2m이던 왕숙천 구리부근 수위가 6m(20일 오전 5시)로 높아져 차량 4대가 침수되고 둔치의 시민 편익 시설이 물에 잠기는 등의 피해를 입었다.
구리/권순정 기자 s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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