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5000, 기업지배구조 개선만으로는 명확한 한계 [이정환의 경제시대]
단기적 기업지배구조 개선만으로는 한계
일본도 '세 개의 화살' 맞물려 개혁 성공
편집자주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과 교수가 다양한 경제 현안을 깊이 있는 분석과 참신한 시각을 담아 전해드리는 '이정환의 경제시대'를 연재합니다.

일본의 아베 신조 전 총리는 2012년 재취임 직후 '아베노믹스'라는 새로운 경제정책을 제시한다. 아베노믹스는 일본이 겪어온 '잃어버린 20년'의 장기 경제침체를 벗어나기 위한 전략으로 세 가지 핵심적인 정책을 추진했다. 2007년 9월 건강문제로 일본 총리직에서 갑작스럽게 사퇴했던 아베는 2012년 자민당을 이끌고 압승을 거뒀다. 강력하고 장기적인 리더십을 바탕으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환경 속에 20년간의 경기침체와 10년간의 양적완화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경제적 리더십을 발휘하려고 했다.
아베노믹스의 경제정책은 이른바 '세 개의 화살'에 근간을 둔다. 이는 '대담한 금융정책', '기동성 있는 재정정책', '민간투자를 이끄는 성장전략'을 의미한다. 옛날 일본 무사가 아들들에게 "화살 한 개는 쉽게 부러뜨릴 수 있지만 세 개를 함께 묶으면 부러뜨리기 어렵다"고 강조한 일화에서 유래했다. 이 비유는 개별 정책을 따로 시행하는 것보다 세 가지 정책을 동시에 추진할 때 더욱 큰 효과와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개혁 전략이었다.
첫 번째 화살인 금융정책은 시장에 풍부한 자금을 공급해 디플레이션이라는 표적을 맞추려 했다. 상당 기간 걸렸지만 최근 일본이 장기 디플레이션을 벗어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가 있다. 두 번째 화살인 재정정책은 정부의 적극적 지출을 통해 유효수요를 늘리고 경제활력을 높이려는 것이었다. 마지막 화살인 성장전략은 민간투자 촉진과 기업의 생산성 향상, 규제 완화, 기업지배구조 개혁 등을 통해 장기적 성장기반을 마련하는 데 목표가 있었다. 아베는 이들 정책이 서로 결합해 작용할 때 일본 경제가 장기 침체라는 견고한 벽을 넘어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베노믹스, 자본효율화 관점서 기업지배구조 개혁 집중

왜 10년도 더 지난 아베노믹스를 다시 꺼내는가? 그것은 현재 한국 주식시장 활성화 정책의 현실적인 벤치마킹 모델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제도적 경험이 한국에도 의미 있게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문제는 이러한 정책이 전체적인 경제정책의 틀에서 분리된 채 개별적으로만 취사 선택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이는 마치 주식시장만 부양되면 기업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일종의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우리 정부가 주목하는 정책은 아베노믹스의 세 번째 화살인 성장전략 중 '기업지배구조 개선'이다. 일본은 기업 경영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2014년 기관 투자자의 책임 있는 투자를 유도하는 일본판 스튜어드십 코드, 2015년 기업 경영의 투명성 강화를 목표로 하는 기업지배구조 코드를 잇달아 도입했다. 이를 통해 독립 사외이사의 의무적 선임과 이사회 운영 현황의 정기적 공시, 경영진 평가 지표 마련 등을 제도화해 기업의 책임경영을 명확히 했다. 글로벌 금융시장 수준에서 벗어나 해외 투자자 유치가 힘든 일본 기업지배구조의 표준을 변경시키는 작업이었다.
또한 일본 정부는 자본 효율성 향상을 위해 주주의 투자자본에 대한 기업의 수익성 지표인 자기자본이익률(ROE) 목표를 명시하고, 기업들이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확대해 적극적으로 주주에게 이익을 환원하도록 장려했다. 그 결과 일본 기업의 평균 ROE는 2012년 5.7%에서 2014년 8.5%로 급상승했다. 일본거래소(JPX)는 JPX니케이400이라는 새로운 주가지수를 만들어 ROE, 영업이익 등 성과 지표를 충족하는 우수 기업을 집중 육성했으며, 일본 공적 연금이 이를 벤치마크(기준지표)로 채택하면서 국내외 투자자 신뢰가 증가했다. 결과적으로 일본 주식시장 내 외국인 투자자의 지분율은 10%대에서 약 30% 수준까지 확대되는 성과를 거뒀다.
현재 한국의 자본시장 개혁과 상법 개정의 주요 방향은 이런 아베노믹스의 기업지배구조 개혁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일본이 스튜어드십 코드와 기업지배구조 코드를 통해 독립 사외이사 선임 강화, 이사회 운영 투명화, 배당 및 자사주 매입 확대를 추진해 해외투자자의 신뢰를 회복했던 것처럼, 한국 역시 사외이사를 독립이사로 변경, 자사주 매입 후 소각 의무화, 감사위원 선임 시 의결권 제한(3% 룰) 등을 도입해 기업 경영의 투명성과 주주 권익 보호를 높이고 있다. 이를 통해 개인소액주주를 보호한다는 측면은 글로벌 금융기관 등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일본 기업지배구조 개혁의 핵심인 '자본의 효율적 활용', 즉 기업을 근본적으로 육성하고 성장을 촉진하자는 취지는 우리에게 충분히 강조되지 못하고 있다. 당시 일본 기업의 현금 유보수준은 역사상 최고치였으며, 현재도 여타 선진국과 비교해 높은 수준이다. 장기침체 속에서 일본 기업들이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자금을 운용하면서 막대한 자본이 기업 내부에 축적되는 문제가 있었다. 이에 따라 아베 정부는 단순한 배당 촉진책이 아닌 배당과 투자를 통해 자본을 효과적으로 순환시키는 자본효율화 관점에서 기업지배구조 개혁에 접근했다. 실제 아베노믹스 이후 일본 기업들의 설비투자와 연구개발 투자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일본 정부가 목표로 삼았던 자기자본수익률 개선의 근본적 기반을 마련했다.
한국, 자본 효율 현저히 낮아…"기업 성장성 촉진 더해져야"

사실 한국 기업의 영업 성과는 글로벌 주요국 기업들과 비교했을 때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기업들의 지난 10여 년간 평균 ROE는 8.0% 수준에 불과하여, 미국(14.9%), 일본(8.3%), 영국(9.6%), 중국(9.3%) 등과 비교할 때 현저히 낮은 편이다. ROE는 기업이 자기자본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해 이익을 창출하는지 보여주는 핵심 지표인 만큼, 한국 기업들의 낮은 ROE는 결국 생산성이 낮고 경영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기업들이 투자한 만큼 제대로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더욱이 201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 기업들의 평균 ROE는 13%가 넘었음을 고려할 때, 최근의 지속적인 수익성 저하는 기업 경영의 위기이며, 한국 경제 성장률 저하의 근본 원인이라고까지 진단할 수 있다.
아베노믹스의 '세 번째 화살'이 기업지배구조 개선에만 초점을 맞추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도 다시금 환기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 화살로 제시된 성장전략은 민간 부문의 투자 촉진과 생산성 향상이라는 보다 광범위한 목표 아래 구성됐다. 구체적으로 해외 전문인력 채용 완화, 비정규직 규제 완화 등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였으며, 2016년 법인세 실효세율 인하와 생산성 향상을 위한 시설투자 세제 지원 등 기업의 혁신 환경을 적극적으로 조성했다. 또한 신사업의 규제 불확실성을 사전에 해소하는 '그레이존 해소제도'와 신규 사업의 실증 과정에서 규제 예외를 허용하는 '기업실증 특례제도' 도입 등 적극적인 규제 완화 조치도 이루어졌다. 즉, 아베노믹스는 경제성장 촉진을 위한 종합적 전략을 추진했으며, 주가부양과 기업지배구조 개선은 그중 하나의 수단이었을 뿐 단독적인 목표는 아니었던 것이다.
최근 코스피 5,000 돌파에 대한 기대감이 높지만, 기업지배구조 개선만으로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 이는 현 논의가 주주환원과 투명성 제고에 집중된 나머지 자본의 효율적 활용이라는 근본적인 관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처럼 기업의 수익성이 낮은 상황에서는 이 같은 한계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단기적 주가부양책도 중요하지만, 규제 완화와 혁신 환경 조성, 더 나아가 초고령화 인구구조에 맞는 노동시장 개혁 등 기업의 장기적 성장과 수익성 개선을 촉진할 수 있는 보다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정책 설계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기업의 수익성 개선과 성장이 없이는 배당도 늘 수 없다는 교과서적인 원칙을 다시 한번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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