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2부작] ② 비슈케크에서 만난 우리, 잊히지 않은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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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한복을 입고 부채를 펼친 소녀들의 춤사위는 어릴 적 추억을 소환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봄볕 아래 운동장에서 부채를 흔들며 조회대 위 선생님의 '오케이' 사인을 기다리던 그 순간이 불쑥, 기억 저 편에서 불려 나왔습니다.
누가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그 자리를 지켜온 이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날 이곳에서 "안녕하세요"라는 인사가 먼저 들려오는지도 모릅니다.
비슈케크 고려인협회는 그 '섬'에 다리를 놓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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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곳이 한국에서 4000km나 떨어진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고운 한복을 입고 부채를 펼친 소녀들의 춤사위는 어릴 적 추억을 소환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봄볕 아래 운동장에서 부채를 흔들며 조회대 위 선생님의 ‘오케이’ 사인을 기다리던 그 순간이 불쑥, 기억 저 편에서 불려 나왔습니다.
한민족의 정서, 그 무엇이 전해졌달까요.
충북교육청의 키르기스스탄 방문 일정 중 비슈케크 고려인협회를 찾았던 이야기를 전해봅니다.
■ “안녕하세요” 먼저 인사를 건네는 나라
외국에 나가면 한국이 얼마나 ‘핫’한 나라인지 실감하게 된다더니, 그 말이 맞았습니다.
거리를 지나다 보면 한국어를 듣고 “안녕하세요!” 하고 먼저 인사하는 이들이 있었고, 트와이스의 노래를 들으며 자랐다는 대학생은 한국 이름을 ‘나연’으로 지었다며 수줍게 웃어 보였습니다.

키르기스스탄에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대학이 15곳이나 있고, 한국어 교실은 개강과 동시에 정원이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비슈케크 한국교육원 서가 한켠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대표작들이 꽂혀 있는 걸 보니 반가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서 한국이 사랑받는 이유가 단지 K-컬처의 힘 때문만은 아닙니다.
한국에서 온 손님들을 위해 준비한 공연을 감상하면서 알 수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이 땅에서 한국의 멋과 흥을 전해 온 고려인들의 수고와 헌신이, 지금의 자연스러운 친근함을 만들었다는 걸.

고려인들은 공식 행사나 축제에서 부채춤을 추고, 사물놀이와 난타 공연을 펼치며 ‘한국인’이라는 이름을 낯설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누가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그 자리를 지켜온 이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날 이곳에서 “안녕하세요”라는 인사가 먼저 들려오는지도 모릅니다.
■ 외딴섬처럼… 고려인의 현실

‘고려인’. 1937년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중앙아시아로 흩어진 한민족의 이름입니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에 뿌리내린 지 벌써 4세대를 넘어가죠.
이곳 키르기스스탄에도 약 6천여 명의 고려인이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젊은 고려인은 많지 않습니다.
러시아어가 모국어인 이들은 한국어는 거의 배우지 못했고, 키르기스어 구사에도 능숙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 등과 비교하면 고려인 수가 적고 커뮤니티도 약해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한국인도 아니고 키르기스스탄 사람도 아닌 이들은 여전히 ‘외딴섬’입니다.
■ “우리는 고려인”... 멀리 있지만, 우리는 하나입니다
비슈케크 고려인협회는 그 ‘섬’에 다리를 놓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을 잊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죠.
“우리는 고려인이니까요. 우리의 뿌리를 잊지 말아야죠.”
그 말은 자부심이라기보단, 사명감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고단합니다.
협회 운영은 회장 개인의 재정에 의존하고 있고, 새 악기 하나, 교재 한 권 구하는 것조차 버거운 상황입니다.
있는 자원을 아끼고, 필요한 건 손수 만들며 예술단은 활동을 이어나가고, 한국어 학당 교사들은 대가 없이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칩니다.
“우리의 힘만으론 부족합니다. 한국과 연결된 어떤 끈이라도 좀 더 단단했으면 좋겠어요.”

이날 충북교육청은 따뜻한 환대에 감사를 전하며, '마음 글 필사책' 200권, 'K-문구' 100세트를 전달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 ‘잊지 않고 있다’는 작고 선명한 신호였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우리는 하나라는 걸.
다시 만나는 날까지 모쪼록 뿌리가 더 단단해지길.
#충청 #충북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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