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아빠는 대전형무소 행방불명” 78세 딸의 애달픈 사부곡
양성홍 회장 “행불인 유해발굴, 신원확인 정부 추진해야”

"이번에 대전 골령골 가서 아빠한테 말했어. 이제 못 옴직 허우다, 걷기가 힘들어 부난."
폭우가 쏟아진 19일, 제주4.3평화공원 행방불명희생자 진혼제에서 만난 제주도민 78세 오옥순 씨는 어김없이 준비한 음식을 차리고 '오을수' 아버지 이름 석 자가 적힌 표석 앞에 섰다.
故 오을수 씨는 제주읍 아라리(현 아라동 구산마을) 출신으로 1925년생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옥순이가 태어난 지 한 달 정도 지난 1949년 10월, 그는 토벌대에 붙잡혀 대전형무소로 끌려갔다. 그 순간이 두 사람의 영원한 이별이었다.

그는 "매년 진혼제에도 참여하고 또 대전 골령골도 찾아 아버지를 만나고 온다"며 "어머니와 워낙 어렵게 살아서 아버지 사진 한 장 남겨진 것이 없다. 얼굴만이라도 알면 좋을텐데,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 앞에 와서 이렇게 눈물만 흘린다"고 밝혔다.
제주도민 강형택(65) 씨는 15년째 4.3 행방불명인 숙부 故 강경추 씨를 챙기고 있다. 4월 3일 추념식과 진혼제 때마다 표석을 찾아 음식을 올린다.
1925년생인 강경추 씨는 대전형무소로 끌려가 1950년 7월 초순경 대전 지역에서 행방불명됐다. 강형택 씨의 아버지는 동생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도 각별하게 챙겼고, 그 뜻을 아들인 강형택 씨가 이어받고 있다.
그는 "결혼도 못하시고 20대 초반에 돌아가신 숙부님의 사연을 항상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저는 자식도 아니고 조카일 뿐이지만, 매해 때마다 찾아뵙고 있다"며 "사상이나 이념은 모르겠다. 4.3 당시에 어떤 상황이었는지도 모르지만, 그저 살기 위해 도망친 선량한 사람들을 향해 '이적 행위'라고 규정하고 군사재판에서 단심제로 처리하는 것도 모자라, 집단 학살까지 저지르는 그런 상황을 상상해보면 분명 잘못된 일이었다. 숙부님이 참 안타깝다"고 밝혔다.





제24회 제주4.3행방불명희생자 진혼제가 19일 오전 10시 행방불명인 표석 앞 위령제단에서 열렸다. 제주4.3행방불명인유족회(현 유족협의회)는 2000년 3월 13일 창립했다. 유족회는 경인, 대전, 영남, 호남, 제주, 예비검속위원회로 구성돼 있다. 현재 추가희생결정자를 포함해 총 4078기의 행방불명인 표석이 4.3평화공원에 설치돼 있다.
2006년부터 4.3행방불명인에 대한 유해발굴사업을 진행하며 현재까지 총 421구의 유해가 발굴됐다. 그 중 유전자 감식을 통해 총 147구의 신원이 확인돼 유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4.3 당시 두 차례의 군법회의에 회부돼 억울한 옥살이를 한 수형인은 2530명이다. 제주도는 4.3 군법회의 수형인의 명예회복을 위한 직권재심 청구를 추진하기 위해, 수형인명부에 기록된 희생자를 상시 찾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