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해진다면 된 것, 사티가 붙든 시간 속에서 [.txt]

한겨레 2025. 7. 19.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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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color: rgb(0, 184, 177);"><strong>안인모의 미락(美樂)클</strong></span>
<span style="color: rgb(0, 184, 177);"><strong>같이 들을 클래식</strong> 에리크 사티, 짐노페디 1번</span>
파리 몽마르트르 카페 피아노로 지은
20대 무명 에리크 사티의 ‘모더니즘 전설’
드뷔시 덕에 유명해지나 관계는 파국으로
프랑스 출신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에리크 사티(1866-1925)의 1909년 모습. 위키미디어 코먼스

집에 돌아와 오래된 다이어리를 펼쳐보았다. 그날따라 기분이 그랬다. 대학 시절 추억에 젖어, 다시 현재로 바로 돌아올 수는 없었다. 2025년 올해, 모교 음악대학 창립 100주년을 맞았고, 졸업생인 나는 특별 음악회의 진행자로 서게 되어 오랜만에 모교를 찾았다.

캠퍼스를 바라보며 남다른 감회가 밀려왔다. 정문에서부터 무용대학, 미술대학을 거쳐야 비로소 음악대학이 나온다. 그리고 음악대학 바로 옆 건물은 중앙도서관이다. ‘중도’로 불리는 곳. 청춘의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음악대학 2층에 있는 음악도서관(음도)은 당시 내로라하는 방대한 자료를 소장해, 타교에서도 방문하는 곳이었다. 나는 교양수업 자료를 찾으러 중앙도서관에 갔다가 문학작품들, 그것도 프랑스 문학 구역에서 발길을 멈췄고, 틈만 나면 여기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843G199’, 작은 책들이 빼곡한 책장. 여기가 내 자리다. 오래전 내가 사랑한 곳. 나는 얼마나 많은 책을 빌렸던 걸까? 로맹 가리와 파트리크 쥐스킨트, 그리고 프랑수아즈 사강을 만났다. 그리고 점차 확장돼 밀란 쿤데라와 서머싯 몸도. 도서관을 보자마자 그 시절 추억 속으로 바로 달려들어갔지만, 내가 읽은 책이 다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날 공연이 끝난 후, 불 켜진 도서관 창을 들여다보았다. 창문을 열면 바로 20대 초로 달려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참을 바라보다 서둘렀다. 빨리 그 시절 나의 시선을 따라가고 싶었다. 다이어리에 적힌 책들이 많기도 하다. 도서관을 나올 때마다 큰 가방에 책을 한가득 대출해 나왔으니, 뭐가 그리 좋았을까 싶다. 다이어리에 적힌 날짜들은 주로 방학 기간이다. 독서의 경험이 내 음악에 영감이 되었을 수도 있고, 다양한 인생을 경험하며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다. 특히 프랑스 문학에서 그토록 솔직하고 섬세한 필체로 한 인간의 시선을 느리게 따라가는 것은 정말이지 즐겁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근래 문학과 그림에 음악을 연계한 인문학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연주를 잘하는 피아니스트가 꿈이었던 내가 문학과 그림이라니! 내용을 준비하며 고전 명작이 주는 힘과 메시지를 알아가는 것, 그리고 그 앎이 내 삶에 주는 위대한 힘을 느끼고 있다. 지칠 때 힘이 되고, 좌절했을 때 일어서게 하는 힘을 고전에서 빌리는 그 습관이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을까? 책 속에서 만나는 다른 세상! 그 주인공이 되어 사랑에 울며 한탄하고 나른한 꿈을 꾸며 환희에 가득했던 나날들. 프랑스어를 공부해볼 생각을 못 한 게 못내 아쉽다.

에리크 사티(1866∼1925)의 1890년대 후반 모습. 위키미디어 코먼스

프랑스 문학 특유의 나른함은 나를 그 세상 속으로 잡아 이끌었다. 나른함의 대명사는 바로 프랑스의 작곡가 에리크 사티다. 그는 몽마르트르의 괴짜 피아니스트로, 20대 중반부터 그의 자리는 몽마르트르의 카페 한구석이었다. 그리고 카페의 피아노로 연주할 곡을 직접 썼다. 사티가 그 시절 작곡해 자신의 대표곡이 된 ‘짐노페디’(Gymnopedie)는 이름부터 짐스럽다. 그리스어로 ‘나체의 젊은이들이 추는 춤’을 의미하는 이 단어를 대체 누가 일상에서 쓰겠는가. 사티의 절친한 괴짜 친구인 콩타민 드 라투르의 시구에도 ‘짐노페디’가 등장한다. 콩타민은 어디에서 이 단어를 접한 걸까?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소설 ‘살람보’를 읽다가 ‘짐노페디’를 만난 것이다. 아마도 ‘살람보’를 읽은 두 괴짜 친구 중 한명은 음악을, 한명은 시를 쓴 것이 아닐까? 20대 시절 같은 관심사를 지닌 친구가 있었다는 점이 부럽다.

특히 사티의 ‘짐노페디’는 상당히 나른해서, 듣고 있으면 잠이 온다거나 지루해지기 딱이다. 그의 음악은 집중해서 듣기보다는 공간에서 울려 나오는 배경음악으로 기능한다. 그러니 지루해진다면 된 것이다. 이 잔잔한 피아노곡이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인기 있는 건 당연하다.

‘짐노페디’ 1번은 3박자로 느리게 두번째 박을 강조하며 흐른다. 이 곡이 굉장한 이유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음악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머무르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음을 진동해서 울려 내고, 그 소리와 소리 사이의 여백을 느끼게 하는 음악. 바로 이것으로, 사티는 음악을 형식과 구조, 주제와 전개, 해결의 격자에 따박따박 맞추는 전통에서 완전히 벗어나버린다. 그는 이처럼 반항하듯 모더니즘의 문을 활짝 열었다. 단지, 알아주는 이가 별로 없었을 뿐.

드뷔시는 네살 어린 사티가 잘될 것을 예견하지 못했다. 서른살이 다 된 사티는 빚에 허덕이고 벽장같이 좁은 집으로 이사한다. 드뷔시는 사티를 돕기 위해, ‘짐노페디’ 1번과 3번을 관현악곡으로 편곡해 발표한다. 3번과 1번으로 순서를 뒤집은 건, 사티의 원곡에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 게 아닐까? 선배 작곡가의 아량 덕분에 다행히 사티의 이름이 조금 알려진다. 게다가 자신보다 한참 어린 라벨까지 나서서 ‘짐노페디’를 협회 창립음악회에서 직접 연주한 후로, 이제 사티가 드뷔시를 앞지르게 된다. ‘짐노페디’를 시작으로, 우정은 결국 갈기갈기 찢어지게 되지만, 당시에는 모두가 진심이었다.

그 시절 843 책장 앞에 같이 간 친구는 단 한명도 없었다. 그래서 더 좋았을까? 다른 세상으로 가는 나만의 비밀 통로였고, 나만의 비밀 아지트였다. 날 그 시절로 끌고 간 건, 기록해둔 종이 위 글자들 덕분이다. 나만의 다이어리를 열고 한참을 그렇게 들여다본다.

안인모 피아니스트

드뷔시의 관현악 편곡은 사티의 피아노 원곡보다도 더 나른하다. 다채로운 음색이 더해지니, 조금 더 집중해서 듣게 되긴 하지만. 그래서 피아노 원곡과 관현악 편곡을 비교해서 들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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